그대여 단풍의 기미가 보입니다. 서둘러 산으로 향합니다. 어제는 가야산에 들어 모처럼 푹 잠들었다 깼습니다. 세상살이의 노독이 하룻밤 꿈과 같다면 노독을 풀어 본래의 마음으로 헹구어내는 데에도 실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지 모릅니다. 인간이 발명한 근대의 시간 단위는 언제나 한 발 늦습니다. 응혈이 맺히고 풀리는 그 모든 일어남과 사라짐의 순간들이 찰나임을 느낍니다. 찰나와 찰나 사이에 우리가 영원이라 부르는 멈춘 호흡의 순간들 가득합니다. 가득한 채 텅 빈 가을 산의 고요. 그 고요 속에 문득 눈물이 스미기도 하는 것을 오늘은 그저‘가을 탓’이라 하기로 합니다. 무엇이 슬퍼서도 기뻐서도 아니고,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하염없이 장하여 스미는 눈물이니 그대여 심려치 마십시오. 해인사 마당에 해인도가 놓여져 참 기뻤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해인도를 다만‘보는’것이 아니라‘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걸어도 좋고, 마음을 편안하게 비우고 슬렁슬렁 걸어도 좋고, 설치미술을 감상하듯 걸어도 좋겠습니다. 현대의 설치미술이 수동적인 감상의 주체를 능동적인 창조의 주체로 동참하게 하듯이, 보는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경험하는 창조자로 해인도를 걸을 때 세상에서 쌓인 노독이 새로운 상상력의 추임새를 얻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겹의 법안法眼이자 인드라의 그물. 내 속의 나들 사이의 틈을 연결하는 도안이면서 텅 빈 고요로 들어가는 문. 입구와 출구가 있으나 실은 들어가 머무는 곳도 나오는
곳도 분리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공간의 체험을 해인도를 걸으며 하였습니다. 당신이 나온 출구가 나의 입구임을, 내가 들어가는 입구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나의 출구임을 느닷없이 느끼는 가을입니다.
전혀 새로운 의미의 앙가주망. 해인도를 걷는 동안 내 몸을 지나간 것들이 가야산 능선마다 법석을 펼쳐둔 가을이니, 그대여 해인도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꽃지는 계절에 해인도속으로 꽃들 분분 떨어지면 꽃의 얼굴로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단풍 드는 계절에 해인도 속으로 점점홍 단풍 들면 단풍의 얼굴로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한다 말할 때 참으로 그러함을, 그 마음 고요할 때 참으로 그러함을 알게 되실 겁니다. 해인도속으로 단풍이 들어와 꽃으로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