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통해 정부 발표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건물에 대한안전 진단이 그저 형식적이었으며 사고가 난 뒤에 보여 준비상 구조 체제의 난잡함도 또한 그러하다. 무고한 시민을 몰사한 책임자에 대한 조치도 결국 축소되고 있으며 붕괴원인에 대해서도 무리한 설계 변경이나 구조 변경 등에 국한하여 모든 원인을 ‘삼풍’ 측에 돌리려는 그야말로 호도책에 불과하다.
이런 정부의 면책성 짙은 행태는 지난 수차례의 참사에서도 그대로 보여 주었던 바 있다. 여객선 침몰은 무리하게 정원을 초파하여 승객을 태운 원인으로, 열차 전복은 인근 작업장의 굴착 탓으로, 여객기 추락은 기상조건을 무시한 운항을 사고 원인으로 내세웠으며, 성수대교 역시 설계 변경이라는 따위의 언제나 남의 탓 민을 강조했다. 그런 정부의 태도에 답하기라도 하듯 가스 폭발 등 참사는 유례없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안전사고의 전형
모름지기 한국전쟁 이후 단일 사건으로 최대의 사상자를 기록한 이번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는 정부의 무능력으로 만연한 부정과 부패가 결국에는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음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먼저,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름 좋은 ꡐ문민정부ꡑ 가 들어선 이후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수십 건이나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확실한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은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한다. 현 정부 초기에 사정 바람이 불자 가장 유행한 말은 ‘복지부동ꡑ 이었다. 곧 일단 몰아치는 사정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잠시 몸을 낮추기만 하면 된다는 공직사회의 풍토를 지적하는 말이었다. ‘정권의 교체’가 아닌 ‘인물의 교체’ 에서 오는 ‘개혁ꡑ 의 한계를 누구보다 공직자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짐작대로 사정과 개혁은 몇몇 감정적 대상에 머물렀고 그것도 시일이 지나면서ꡐ화합적 차원ꡑ 의 조치로 사면과 복권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바로 이런 한계는 공직자의 무사안일만 조장한 것이며 대형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부산한 움직임만 있게 한 근본 원인이다.
굳이 책임질 일은 피해 가면서 그럴 듯한 정책만을 내세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보자는 공직자의 태도야말로 앞으로 똑같은 참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정부는 남의 탓으로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무능력부터 철저하게 반성하고 대책을 세
워야한다.
‘사자 몸의 벌레ꡑ 처럼 국가를 갉아 먹는 것는 공직자와 부정과 부패임은 만고의 진리이다. 건물 한 채를 지으려면 수백 종의 서류와 수십 군데의 관계 부처를 거쳐야하며 각종 까다로운 심사를 마쳐야 ‘준공ꡑ이 된다. 준공이 된 뒤에도 현행법상으로는 각종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지은 지 불과 오년 남짓 된 대형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은 기업주의 탐욕과 결탁한 공직자의 부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다. 더욱이 그 기업주가 과거 일제치하의 정보요원이었고 군사독재의 핵심 권력 부서였던 정보기관의 관료였으니 누구보다 든든한 배경을 이용한 부정은 용이했을 것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였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난하고 배경 없는 서민의 몫일 뿐 힘 있는 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적당한 뒷거래로 국가를 매수하는 검은 손을 베어 내지 못하는 한 국민은 현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
이번 사건의 책임자 처벌을 보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의 경우처럼 하위직 공무원과 기업의 일선 책임자만을 처벌하고 말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직 구청장이자 현 민선 구청장에 대한 검찰의 조사는 그저 형식적이었으니 책임자 처벌을 통한 사회 기강의 확립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가 서울에서 단 두명만 뽑힌 여당의 구청장이라는 점은 ‘봐 주기 수사’ 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거액의 뒷돈이 오고갔을 부정에 지역 행정 책임자가 무혐의라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의 국가 공권력이라면 다른 참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심한 사후조치
현대의 도시는 늘 대형 사고의 위험을 갖고 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대단위의 집단시설과 고충 건물, 그리고 지하에 매설된 각종 가스와 전선망 등등 안전사고의 개연성은 곳곳에 존재한다. 그런 위험성을 사전에 철저한 점검과 관리로 예방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한편 만에 하나 안전사고가 났을 경우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비상 긴급 구호 체제가
확립되어 있어야한다. 그러나 사고의 예방도 하지 못했을 뿐더러 사후 조치 역시 한 나라의 수도에서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장갑이 부족하다, 담요가 없다, 절단기가 없으니 시민의 지원을 바란다는 방송을 듣는 국민의 심정은 어떠한지 정부는 절실하게 반성해야한다.
전쟁 둥 유사시를 대비해 사유재산인 승용차까지 동원번호를 부여하는 이 나라의 비상 동원 체제가 기껏 간단한 절단 공구마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 모두 심한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자원 봉사를 자청하고 달려간 시민들이 지휘 본부가 없어 발을 돌렸고 장비와 약품, 식량 등을 지원하려간 사람도 허탕을 쳤다는 보도를 보며 ‘시거든 떫지나 말았으면’ 하는 야속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실종자 파악도 중구난방이었다. 사고 이후 보름동안 관계 당국의 발표는 내내 이백여 명이었다가 국정 조사를 한다니까 불과 하루만에 배로 늘어 사백여 명으로 뒤집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장에서 실종자의 수색이나 구조 작업
이 제대로 진척될 리 없음은 자명하다. 사후처리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은 이 나라의 행정이 얼마나 무능력과 불성실, 안일 위주의 관료성에 젖어 있는지 능히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세금을 내고 사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 하는 ‘무능한 국가’로 규정하여도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가는 자기 자신을 지양하지 않고서는 한편에서의 행정의 시명과 선의善意, 다른 한편에서의 행정의 수단과 능력 사이의 모순을 지양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이 힘있고 배경 든든한 자들만 이 권력을 이루는 국가는 특수적인 이해에 얽힌 기능만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정은 다만 소극적 활동에만 국한된다. 정작시민 생활과 그의 활동이 있어야 할 곳에서는 행정이 무능하게 나타난다.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행정은 단지 구호에 불과하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현재 도시가 갖고 있는 위험의 개연성을 얼마나 제어하는지에 따라 정부의 능력이 평가된다. 그 척도는 다름 아니라 행정이 누구에 의한 것이냐에 달려 있다. 소수 재벌과 부패한 관료가 장악하고 있는 행정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다.
지자제 선거에 참패하고 대참사를 겪은 뒤 정부가 ‘민생개혁ꡑ 을 천명하였으나 과연 그것이 얼마나 실천될지 의문이다. 정녕 진정한 ‘민생개혁ꡑ 은 행정의 수단이 시민의 손에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임기의 나머지 반 동안 정부가 책임지고 안전한 시민생활을 확립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