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나 후회라는 것이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나 갖는 것이라면, 내게야 당치도 않은 이야기지만 잘 못살았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열심히 산 이들보다 더 후회가 큰지도 모른다. 가장 치열해야 할 구도 수행의 길에서 가장 큰 허물이 발견됨은 아픈 모순이다.
일곱 해 전 일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노부모님을 뒤로 하고 나는 ‘거침없이’ 산으로 들어왔다. 무녀독남의 몸인지라 그 때에 집안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출가의 뜻 사이에서 겪은 갈등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아직 이승에 계신지도 알 길이 없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입산뒤로도 지난至難한 문제로 남아 있음이 사실이다.
갈등은 또 있었다. 바로 입산 동기였다. 육신을 멸시하는 것이 육체의 쾌락을 바라는 것 이상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귀동냥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그 때에 이미 출가야말로 최선의 길임을 의심 없이 확신하였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주변에도 그렇고, 멀리서 듣고 보는 이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남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는 삶을 살려면 불교가 제시하는 각성覺醒 안에서라야 가능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사고에만 머물며 인간 삶과 사고의 바탕이 되는 물질 현상을 도외시하는 오류가 그 반대의 모순과 함께 불법이 극복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나서 나는 쓰디 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아직 철 모르던 시절이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외형적으로나마 획기적이고 새로운 전기가 필요할 만큼 사정이 절박했던 것도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숙제들을 언제가 될지 모를 뒷일로 미루게 된 까닭일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ꡐ전체의 성공을 위한 부분의 실패ꡑ를 수용한 것이다. 산하대지를 얻으려면 먼저 자기를 버리고 스스로 산하대지가 되어야 한다고 지눌스님이 누누이 일렀건만---
결국 선명한 답을 준비 못하고 입산을 결행했지만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나의 출가가 자기 만족에 빠진 허튼 회피나 변명이 아닌지의 여부와 또 출가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갈피 잡기가 몹시 힘들었으며 입산을 자꾸 주춤거리게 했다. 누가 뭐래도 한생각 이전의 소식을 깨닫자는 것이 출가의 첫 번째 사유라지만, 석가모니 붓다가 보여준 사회에 대한 이해와 실천, 윤리 제반에 대한문제 또한 출가 사유였으므로.
깨끗이 해결하고 입산하려던 절대의 문들을. 내 메마른 정신 능력과 허세에 힘입어, 뒷날을 담보로 하고 덮어둔 채 잊고 지내 왔다. 그지고하던 문제들이 이젠 마치 진하지 않은 녹차 맛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되지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얼마 전부터 해인사에 다시 돌아와 살게 된 것도 문제 의식의 빈 작용으로 나타난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승려로서의 고향인 이 곳에서 얼마쯤 지낼 것이다.
아직도 지난해 서울 하늘에 울려 퍼진 불자대중의 함성이 귓가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듯이 , 그 때에 재가와 출가를 망라한 전체 승가가 교단의 ‘바로서기ꡑ를 외치며 몸부림쳤다. 조계사에서의 3.29사건을 법난이라 이름하고 그렇게 광범위한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구종求宗의 사명 아래 단합의 모습을 보인 일은 한반도의 근대 불교사를 통틀어 없던 일이라 하여 세간에서도 관심이 컸다. 또 불자들에게는 그 동안 모르고 있던 교단 일부의 사정과 앞으로의 과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구종불사의 한구석을 지키다가 조계산으로 돌아가던 날-송광사에 머물던 때였다-이제 내가 돌아가서 있을 자리가 어딘지 곰곰히 되뇌어 보았다. 그 불사에 내 정신의 음지를 밝혀 줄 긍정적인 무엇이 있었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개혁 불사가 일 년 반 남짓 지난 지금은 교단이 차츰 안정되어 절 집의 본분을 회복할 기초가 얼마쯤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쏟아 부은 노력이 여법如法한것이었다면 매달려 걱정만 할 일은 아니거니와 그것을 넘어서 좁은 시야를 반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젠, 피해선 안 될 우리 차례인 것이다. 교단의 정화를 위해 바친 사부대중의 열기가 또 그4월의 법열이 결코 빈 껍데기가 되지 않게 하려면, 또한 오랜 뒤에도 사회 안에 살아 숨쉬는 불법을 보려고 한다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야 한다.
구종의 결사에 임하여 우리의 가장 어둡고 칙칙한 곳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과 같이 , 학인답지 않던 나의 만용을 내보이고 말하기를 꺼리지 말자.
행여나 초발심으로 다가서는 첫 발이 왜 그리 남사스럽냐고 한다면, 외람된 이야기지만, 그 말 역시 만용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초발심이 결국 깨달음을 이룬다는 케케묵은 말...
이 말을 우리는 소홀히 여겨 온 듯하다. 그냥 떠들기만 했을 뿐. 빠른 게 세월이라지만 요즈음 더욱더 그런 느낌이다. 여름 안거가 막바지로 접어들며 속뜰을 다듬는 일이 자꾸 관념화되는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도반 하나를 다른 곳으로 떠나보내야 했고, 가야산 한쪽에 들어선다는 골프장을 막는다고 한 철 내내 온 도량이 떠들썩했다.
그런 바깥정서 탓일까. 요즘 들어 초저녁에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저녁 하늘 쳐다보는 것으로 일삼는 날이 더러 있다. 이런 감상이 좁게 보면 출가본분에 흠이 되겠으나, 자연의 여운은 나 같은 변변치 않은 학인에게는 다양한 반조를 일으키며 끌어당기는 바가 있다.
말 한마디 하더라도 이기심利己心이 전제된 것들이었고 변형된 자기애일 뿐인 것을 두고 자비니 수행이니 해왔고 자잘한 보시에서도 하나에서 열까지 이해타산을 두어 왔음을 생각하면 앞길은 까마득하다. 어쩌면 입산 이전으로 돌아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경기도에 사는 한 재가불자가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보아도 입으로 넘어가는 밥숟가락이 아깝게 느껴지는 스님들이 많다’ 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 나도 예외가 아니다 싶어서 가슴이 뜨끔한 적이 있었다. 부끄러움을 아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말이야말로 내 인격과 공부의 현주소였으며 , 사실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또 어떤가. 모름지기 절호 시절이다. 배울 스승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배우러 가지 못할 곳도 없다. 부족한 것은 정작 나 하나뿐인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내가 진짜 그런지 살펴서 ,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줄 아는 적극적인 슬기가 필요하다. 썩어도 출가장부 아니더냐. 철 일 밤낮의 좌선 정진을 위해 선방에 올라간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안거철마다 끝머리에 산 내 대중이 두루 참여하는 가운데 치러지는 해인사 고유의 용맹정진, 모처럼 작렬하는 장군죽비 소리에 꼬이고 움츠렸던 것들 정신 번쩍 들 테고, 고단한 일정인 만큼 마음의 준비라도 굳게 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