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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쌍계사(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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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글씨를 찾아서 - 조수현 1995년 08월 162호
칠월 들어 전국이 장마권으로 접어들어 가끔 장대비와 소나기가 내리는 정경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호남 지역은 아직도 비가 좀 더 많이 내려 주어야 할 형편이다. 며칠 전부터 쌍계사에 다녀올 생각으로 총무 각관스님에게 전화를 올리고 강주 덕민 큰스님을 뵙고자 청했다.
순창 강천사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서 몇몇 일행과 함께 순창읍과 곡성, 구례를 거쳐 쌍계사에 다달았다.
먼저 총무 스님을 법고 지난달에 빌려 본 진감선사 비문 목각본 자료를 돌려드렸다. 강주 스님을 법고자 하였으나 출타중이라 뵙지 못하여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진감선사와 최치원 선생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총총히 사찰을 떠나온 것이 안타까웠다.

쌍계사에 들어가는 입구에 큰 바위 두 개가 우뚝하니 솟아 있고 그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들 바위 위에는 저마다 “쌍계雙磎” 와 “석문石門ꡓ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 곳 쌍계사에 들어오다가 지팡이 끝으로 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서체의 기풍이 당나라 초기의 명필 저수량 楮遂良의 글씨맛이 엿보이는
것을 보니, 선생의 필치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대웅전에서 반야실로 가는 길 중간에는 천연 암석에다 마애불을 부조로 조각해 놓은 조형물이 하나 있다. 그 마애불의 위켠으로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弼陀佛이라는 주문이 해서체로 단아하게 새겨져 있다. 이것은 조선 후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앞에 있는 이 비는 \"유당신라국 고지리산 쌍계사 교시 진감 선사례有庸新羅國故智異山雙磎寺 敎誼 眞鑑 輝師陣ꡓ라고 하는데, 진감 선사 혜소(774 ~850)이의 탑비이다.

신라말 진성여왕 원년(887)에 건립한 이 탑비는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직접 지어서 썼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데,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운최치원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듬해에 스물 아홉의 나이로 왕명에 의하여 짓고 쓴 것으로, 최상급의 글씨와 문장을 자랑한다.
글씨에 조예가 깊지 않은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 尋春巡禮」에서 구양순 격에 양진경 풍이라 하였는데, 실제로는 구양순 격에 저수량 풍이 가며된 글씨체이다. 다시 말해, 구골저육歐骨橫肉으료서 양 대가의 정수와 신운을 얻은 이상적인 서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단정하면서도 상쾌한 필치가 크게 돋보인다. 흔히들 단정하면 경쾌하기 어렵고, 상쾌하면 단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고운은 이 양면을 모두 겸하여 독자적인 훌륭한 서풍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비문의 내용 또한 그 무렵에 크게 유행한 사륙 변려문 四六辨儷文으로서, 일자 일구의 직조 경위와 일운 일률의 고저 장단이 서로 화려하게 조화를 이루어, 마치 화엄세계의 장엄무비 함을 선지묘리輝릅妙理로 압축하여 나타내는 듯하다.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서의 추앙은 예사로운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의 글씨는 진감 선사비의 제액으로서, 금문金文 풍의 회화적인 이미지를 주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로는 제액은 흔히 전서로 쓰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진감 선사의 법휘는 혜소慧昭이고, 속성은 최씨이며 익산 금마 사람이다.
신라 혜공왕 10년η74)에 태어나서 문성왕 12년(850)이에 일흔 일곱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읜 뒤에 구법求法의 뜻이 간절하여 애장왕 5년(804) 당나라에 들어가서 득도하였다. 홍덕왕5년(830)에 중국에서부터 귀국하여 상주 장백사에 머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 화개 골짜기로 가셔 옛 절터에 선당을 다시 지었다. 왕이 사자를 보내 혜소라는 호를 내리고 왕도로서 나와 줄 것을 청했지만 끝끝내 응하지 않았으며, 뒤에 지리산의 남령에 옥천사와 육조 영당을 건립하였다. 진감 혜소는 우리나라 선종의 세력을 크게 일으킨 중흥조이다. 그가 입적한 뒤에 헌강왕은 옥천사의 이름을 쌍계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
다.
진감 선사 비문에는 불교 음악인 범패가 언제 이 땅에 들어와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어 사찰사와 국악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