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유의 종교(1) : 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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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유종교 산책 - 황선명
1995년 08월 162호
불교나 유교, 기독교는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믿는 종교인 만큼한국종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기원이 이웃나라 또는 먼 나라에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한국의 고유 종교’라고 볼 수 없다. 학술적으로도 기독교나 불교를 보편 종교, 또는 세계 종교라고 말한다. 특정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은 종교라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에는 자기네 나라의 국민 또는 민족만이 섬기는 독특한 종교가 있다. 보기를 들어 인도의 힌두교나 이스라엘의 유대교 같은 경우이다. 이러한 종교를 민족종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민족종교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종교가 없는 것일까. 아쉬운 일이기는 하나 그렇게 불러 마땅한 종교가 없다. 어떤 사람은 민간 전숭으로 내려오는 샤머니즘(巫敎)을 가리켜 우리의 민족종교라고 부르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육당 최남선,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런 주장을 했다. 아직도 샤머니즘을 가리켜 신선의 종교라는 뜻에서 선교仙敎라고 부르고 매우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와 제3대 임금인 남해 차차웅이 무당이라고적고 있다.
그런데 종교라고 하면 대체로 조직체를 갖추고 특정의 교리가 있어야 하며 창시자를 분명히 내세워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여러 사람의 회망과는 달리 샤머니즘이 우리의 고유한 민족종교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면 우리니라의 고유한 민족종교는 무엇일까. 최근까지는 대체로 동학에 뿌리를 둔 천도교 같은종교를 가리켜 민족종교라고 불러왔다. 또 홍엄 나철이 창시한 대종교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인정해 왔다. 이러한 종교들은 일제 때에 모진 풍상을 겪은 종교 단체들이다. 천도교는 본디 그 뿌리가 되는 동학 때부터 반외세의 주장을 펴 왔다. 그래서 이름도 동학이다. 1893년에 동학의 지도자들은 제2세 교조인 최시형을 주축으로 해서 교단의 간부와 수많은 신도들이 충청북도 보은에 모였다. 그리하여 혹세무민한다 해서 억울하게 처형을 당한 제1세 교조인 최제우의 원을 풀어 달라고 정부에 탄원을 한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교조 신원운동申寃運動이다.
이 교조 신원운동은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획기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발전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이듬해에는 동학 혁명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고 갑오경장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뒤따랐다. 나라의 운명은, 그러나, 동학의 지도부와 민중들이 척왜양챙의 斥倭洋昌義라는 구호 아래 자주의 깃발을 들었던 사정과는 정 반해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 이래로 구 대한제국은 이래저래 외세에 의해 농단 壟斷을 당하다가 1910년에는 드디어 일본에 병탐당하고
마는 국치의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러나 동학은 천도교로 명칭을 바꾼뒤에도 민족 자존의 굳센 정신을 굽히지 않다가, 1919년 3.1 독립운동 때에는 손병회 교주가 33인의 민족대표가 되고 교단 간부도 여기에 동참한다.
한편 나철이 창시한 대종교는 국조 단군을 숭배하는 신앙 단체로서 창립 당시부터 민족적인 색채가 뚜렷했다. 창시지인 나철은 나라를 빼앗긴 데 분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황해도 구월산에 들어가서 단식을 히던 끝에 자결하였다. 그를 쫓는 후계자들은 만주의 간도 일원에서 일제와 무장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청산리 전투의 승리와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정부의 법통을 부여한 상해의 임시정부의 요인 가운데 대종교 간부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 때문에 천도교나 대종교를 가리켜 한동안 민족종교라고 지칭해 왔으나 학문상의 규정은 아니다.
ꡐ증산교ꡑ는 동학보다는 훨씬 뒤늦게, 대종교와는 비슷한 시기에 창시되었다.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은 본디 동학 농민전쟁 때 종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에 득도해서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포교 활동을 펴는데,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의 제자인 차경석이 전라북도 정읍에 보천교라는 종교 단체의 간판을 내걸고 교세를 크게 확장하면서부터이다. 차경석의 보천교는 1930년 초에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켜 일제 총독부의 눈총을 받는다. 그
리하여 강권으로 교단을 해산당하고 교단 간부들도 검속당하였다. 해체된 건물의 일부를 서울로 가져와셔 지은 것이 오늘날 조계사 대웅보전이다.
이보다 조금 뒤늦게 소태산 박중빈이 창시한 것이 원불교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법성포 인근에서 간척사업으로 출발한 원불교는 처음에는 불법 연구회라고 불렀다.
일제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들 종교 단체들을 유사종교라고 불러서 몽매한 미신 신앙의 형태로 깎아내렸다. 그것은 일제가 일본 본토에서도 군국주의 사상의 전파에 앞장선 신사 신앙을 권장하는 대신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활동은 제한한 사정과도 일치한다. 그러한 종교의 신앙활동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자주 정신을 함양해서 독립 운동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것을 일제는 경계하였다.
또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3.1 운동 뒤 우리나라에 서구의 사조가 물밀듯이 밀려 닥치면서 지식인들 사이에는 반 봉건. 반 전통의 사조가 일대 유행을 한다. 또 서구에서 발달한 과학지식에 대한 경탄과 더불어 종교나 미신을 배척하는 경향이 지식사회를 풍미한다. 여기에다 마르크스의 통속적인 유물론이 대단한 영향을 발휘한다. 해방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사상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스며들어 그것만이 나라의 독립을 보장하고 미래를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맹신이 판을 쳤다.
이러한 경향은 해방 뒤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육이오의 혼란을 거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본디 남한에서는 기독교, 특히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 개신교의 세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 육이오를 겪으면서 기독교 신도들이 대량으로 남하했다. 이들 월남 실향민들이 처음에는 서울의 일원에 생활 근거를 잡았다가 다시 전국으로 퍼져 가면서 기독교 신앙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기독교 사상에는 서구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 이를테면 미신이라 하여 다른 종교의 존재를 부인하고 나아가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가치관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로 인해 최근세에 우리나라에서 종교간의 갈등이 비극적인 사회분쟁으로 발전한 사례는 없다. 우리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포교 당시부터 전통문화와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구교인 캐톨릭에서 제사 지내는 관습을 이해하고 신도들에게 그것을 허용한 것이 그 좋은 보기이다. 요즈음에는 지난날 유사종교라고 혹평하던, 우리나라 고유종교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간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지나친 서구화에 대한 각성에서라고 보는데, 어쨌든 우리의 신선도나 기氣사상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번져 가고 있다. 그리하여 명칭도 유사종교에서 ꡐ신흥종교ꡑ 또는 신종교로 바뀌더니 다시 민족종교로 격상하고, 요즈음에는 ꡐ고유 종교ꡑ 라고 부른다. 이들 ꡐ고유 종교ꡑ 에 대한 관심이 정신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예민한 대학생 세대에서 널리 번져 가고있다.
조금 의아스러운 일은, 젊은 세대들이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에서 시작하여 국권을 상실한 암흑기에 우리의 주체성을 고양한 천도교나 대종교 같은 종교에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구의 합리적 정신과 맞설 수 있는, 동양의 신비한 우주론을 담은 고유 사상에 심취하는 경향인 듯하다. 최근에 대학생들 사이에 열병처럼 번져 가는 증산도 동아리가 그런 보기이다. 또 민족종교라는 정치적 술어 대신 고유 종교라는 명칭이 자
연스레 등장한 것도그런 맥락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