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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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5년 08월 162호
깨달은 자는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알기 때문에 결코 그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 없고, 그
렇기 때문에 고통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석가모니가 깨달은 내용은 무엇일까. 도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진리이기에 힘든 삶의 고통까지도 없앨 수 있다는 것일까.
‘세상이 무상하다는것ꡑ , 이것이 석가모니가 깨달은 내용이다. 가끔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
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이고, 또한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전에도 세상은 무상했는데 어떻게 이것이 불교의 진리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같이 만고에 불변하고 언제 누구에게나 타당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석가모니도 임종 때 제자들에게 ꡒ무상의 진리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든 태어나지 않았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잊고있던 것을 단지 새롭게 지각시켜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평범한 무상의 진리가 육년 동안 각고의 수행 끝에 간신히 도달한 석가모
니의 깨달음의 내용이 되었을까.
‘무상’ 이라는 말만큼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용어도 없을 것이다. 갑자기 누가 죽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하면 우리 입에서는 저절로 ‘세상은 참 무상해’ 하는 한탄조의 넋두리가 나온다. 또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면 어쩐지 서글퍼지고 고독해 하면서 센티멘탈리즘에 빠진다. 어쩌면 ‘무상’ 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가을을 더 허무의 계절로 느끼는 지도 모른다. 이와같이 ‘덧없다’ , ‘허무하다’ 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무상ꡑ 에 대한 해석은 불교를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용어로서 무상의 의미는 다르다. ꡐ무상’ 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없을무無’
자와 ‘항상 상常ꡑ 자가 합해져서 ’항상함이 없다‘ 곧 ‘영원한 것이 없다’ 는 말로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튼튼하게 보이는 하나의 철
제 책상도 얼핏 보기에는 영원히 존재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낡아 없어져 소멸되어 버릴 것이고, 돌로 만든 큰집도 언젠가는 무너져 없어져 버릴 것이다. 우리의 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영원히 ‘나’ 라고 고집할 수 있는 고정된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한순간도고정된 자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몸은 매순간마다 오래된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다시 생성됨으로써 유지되기 때문에, 어릴 때의 자신의 모습과 젊은날의 자신의 모습, 노년기의 자신의 모습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꼬집어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마음도 조그마한 사건에 의해 쉽게 울고 웃고 슬퍼하며, 또한 나이에 따라서도 한없
이 변해 간다. 아동기의 마음은 청년기와 다르고, 청년기의 마음은 성인이나 노년기의 마음과 다르다. 이와같이 우리의 육체나 정신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 가기 때문에 세상을 ꡐ덧없다ꡑ,ꡐ허무하다ꡑ 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변화를 무조건 싫어하지는 않는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이별을 아쉬워하지만, 아쉬움을 두고 헤어짐으로써 다음 만남을 더욱 기대한다. 말하자면 변화가 현재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고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어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죽음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만일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가정하면, 스무살 전후의 나이에 애써 대학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사십대 불혹의 나이가 되기 전에 인생의 기반을 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충 오백살쯤 되었을때 대학에 들어가려 시도해 보았다가 힘들면 다시 천살쯤에 재도전 해 보고, 그 때도 안 되면 다시 오천살쯤으로 미루고...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인생의 성취욕도 목적의식도 상실한 채 권태롭고 지겨워서 못살 것이
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변화가 있기 때문에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욱 소중한 줄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 삶을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ꡐ무사ꡑ의 원리는 바로 이ꡐ변화ꡑ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변화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는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는 것도 하나의 변화이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 옷을 갈아입는 것도 변화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맞이하는 것도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인간이 겪는 가장 큰 변화가 죽음이다. 그러나 인생을 허송세월하며 태만하게 산 사람에게는 이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다가오겠지만 열심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옷을 갈아입듯 자연스러운 하나의 변화로 느껴질 것이다.
우리 주변에 불치의 병이 들어 일 년 또는 반년쯤 밖에 못사는 시한부 인생이 있다면, 아마
일 분 일 초가 아까워 지금까지 헛되게 보낸 삶을 후회하며 남은 인생이나마 보람 있는 삶을 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한부 인생은 반드시 불치의 병을 선고 받은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기간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ꡐ무상ꡑ의 가르침에 의해, 죽음이 있으니까 삶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이 삶을 더욱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가 깨달은 무상의 진리이고, 불교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이다. 만물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는 것을 무리하게 막지 않으며, 그저 우주의 법칙에 따라 삶의 한 길을 걸어갈 뿐이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이다. 만물이 무상하다는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의미한다. 해인사의 새벽 종소리가ꡐ탱-ꡑ하고 울릴 때 우주의 모든 생명이 태동하고, 인간은 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서 오늘도 왕성한 삶의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