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림 깊은 골에 한갓 토굴 지어 놓고 솔문을 반쯤 열고 석경에 배회하니 녹양 춘삼월에 춘풍이 건듯 불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겁먹은 듯 맑은 눈망울의 다람쥐라도 마주치노라면 짙푸른 녹음이 금세 잿빛 산승의 옷자락에 뚝뚝 묻어 나오는 듯하다. 숲의 깊은 곳에 다다라 고요한 선정의
풀피리라도 불어 보고픈 여린 사문의 어깨 위로 저녁놀이 곱게 내리고, 어느새 망상새의 울음도 간간이 들린다. 강당 생활을 마감하며 턱없이 부족하기 만한 내가 열한번째 「수다라」편집장을 맡아서 잠시의 나태함도 자리잡을 수가 없다.
지난해 「수다라」를 열번째 내면서 ‘동학 백주년ꡑ 이라는 주제로 이박 삼일의 역사 탐방을 다녀온 일이 있다. 열한번째 「수다라」 기획 초안을 잡으며 지난해에 이어 역사 탐방에
무엇을 다룰까 궁리하다 기존의 문화 답사팀과 합류해 기행을 해 보면 새로운 무엇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이끄는 ꡐ한국문화유산답사기ꡑ 에 협조를 구해 해인사와 영암사터 답사 기행에 함께 나서 보기로 했다.
앞 날 해인사에 도착하여 신부락에 여장을 푼 답사팀은 유 교수와 간단한 화동和同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답사의 주요 코스인 해인사와 영암사 터의 내력과 답사 목적을 설명하는 유교수의 안목은 우리 승려의 위치에서 무작정의 거부감만이 아닌 새로운 자리에서 산사를 돌이켜 보게 했다. “해인사는 지금의 불교 종단의 자리매김에서 볼 때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은 만년에 해인사의 빼어난 경치와 풍경 소리에 여생을 맡긴 곳으로도 이름난 명소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해인사가 차지하고 있는 가람의 배치 구조를 보면 현대문화의 예술적 허풍을 여실히 내다볼 수 있습니다. 옛 멋이 사그러진 가람에서 풍겨오는 어두운 멋은 실망을 넘어서 허탈감으로 돌아서게 합니다. 우리 회원은 어쩌면 그러한 모습에 낙심하기보다는 해인사 스님들의 새벽 예불의 청아한 음정에서 들려오는 불음의 향기를 맡으며, 먼 산에 걸친 달빛에 젖다 내려옴으로써 해인사 답사를 대신했으면 합니다”
다음날.
아침 예불을 마친 일행들은 떠날 준비에 부산스럽다. 앞 날에서 이어지는 정겨움으로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합천 영암사 터로 발길을 옮겼다. 차창으로 스치는 푸른 보리밭.
역사의 질곡 속을 걸어나와 결코 약하지 않은 우리네의 지나온 끈끈한 삶의 모습과 짙은 서정성으로 모내기 하는 촌로의 절박한 오늘날의 농촌 현실을 떠나서 비애보다 차라리 아름답기조차 하다. 버스 속에서 유 교수는 내내 영암사 터의 다소곳한 숲에 전개되는 산사만의 미학의 극치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며 설명을 했다.
ꡒ모든 사원 건축의 아름다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조화에서 우리곁에 살아 있는 종교적 예술로 승화할 수 있습니다”
삼봉 三峰으로 둘러진 골짜기 언덕에 자리를 잡은 영암사 터는 절로 탄성이 날 만큼 미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래도록 산자락의 따스한 부드러움에 젖어 있노라면 ‘가난한
사문의 살림살이를 다독여 수행 열심히 하라‘ 는 옛 선사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가슴 밑바닥을 후려친다.
영암사 터의 아름다운 여운을 접어두고 발길을 거창으로 향했다. 거창할 만한 명소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거창’ 이라 불린다는 유교수의 지명에 대한 조크는 버스 안에 있던 일행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분단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 시대 아픔의 흔적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왜곡된 역사의 무게가 동시대적 슬픔으로 우리 모두에게 그냥 넘길 수 없음에, 안내 책자에도 들어가지 않은 일정을 유교수는 무엇인가 주섬거리듯 거창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 초봄에 거창 신원면 일원에서 선량한 양민 수백여 명이 좌우의 이념 대립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세상에 알려진 사실조차도 부분적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지는 답사객에게 저 앞산의 뻐꾸기가 소리내어 부르짖고있는 가운데, 유 교수는 비장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실제로 당시 백 리 안에 있는 이 지역 천 오백여 명의 민간인이 집단 학살 당하는 가공할 참극이 연출되었습니다. 진상이 이러함에도 양민 학살의 엄연한 역사가 유야무야되고 또 한번 학살된 채 베일에 가려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실마리를 풀 수 있는지 방법조차 못 찾고 세월만이 그 때 역사의 현장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곳에 와서 오늘의 위치를 되새겨 봅시다. 어쩌면 우리도 그 날의 양민과 함께 이 곳 합동묘지에 단지 참배했다는 이유만으로 통비분자로 낙인 찍혀 언제 피해를 입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이 사실은 오늘의 현실에도 버젓이 자행되는 연속 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공범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민을 죽이려고 집합시켰던 신원 국민학교를 지나서 남녀 합동지묘에 올라가서 참배를 했다.
ꡐ우리는 거기에 땅이 있길래 갈아서 먹은 죄밖에 없는데 어떻게 한날 한시에 묻혀야 한단 말이냐’
칠백의 남녀 합동 묘지에 묻힌 억울한 고혼들의 외침이 묘지 주변에 피어있는 찔레꽃의 선연함으로 시린 가슴 밑바닥을 저리게 한다. 게다가 양민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성금으로 노산 이은상 선생이 비문을 지은 희생자 위령비가 누군가에 의해 엎어진 채 이직도 세워지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중장비로 십 분이면 세울 수 있는 위령비가 오늘까지도 세워질 수 없는 현실에 칠백의 고혼들과 답사객은 하나가 되어 목놓아 울어야 했다. 위령비를
세우고 충분한 보상이 있어도 시원치 않을 처지에 오히려 쉬쉬하며 살아간다는 마을 주민의 말은 못내 참아내던 답사객마저도 섧게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이렇게 울리고 울려도 된다는 것은 어떠한 정치 논리일까.
부처님께서는 이럴 때 어찌하라고 했는지 돌아가서 닭이 알을 품듯이 뒤적여 갈증을 풀어야겠다. 왜 풋 산승조차도 이렇게 비참한 역사적 산물을 답사하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멍에를 조아매야 하는가.
진리를 향해 갈구하는 실체부터가 혼들리는 하루.
더군다나 오늘은 해인사 경내에서 가야산 국립공원에 골프장 설치 반대법회가 열리는 날이다. 거창 양민 학살과 해인사 골프장 설치 반대 법회, 이 두 모습에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문명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극복되지 못한 시대의 아픔을 느낀다. 먹물 옷 입은 승려로서 이 사바세계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발원하며 수행해야 고뇌하는 중생들과 동사섭同事㒤의 모습으로 화현할 수 있을 것인가. 돌아오는 차창에 부딪쳐 흐르는 빗방울은 오월의 신록을 엎지 못한 채 차 안에서 처연히 흘러내리는 진도 씻김굿 소리만이 답사객을 떠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