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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동물 산책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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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강좌 - 윤상림 1995년 07월 161호
나까무라 하지메 편 ․윤상림 한글 번역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낙타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우슈도라 (여성 명사는 ’우슈도리‘ ), 혹은 ’크라메-라카’ 라고 한다. 낙타는 혹이 하나 있는 낙타와 혹이 둘 있는 낙타로 나뉘는 것은 다 아는 바이지만. 혹이 하나 있는 야생하는 낙타는 멸종되어 기원 전 3,000년 경에는 가축화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물과 여물을 먹지 않아도 살아간다고 한다. 낙타들은 자란 풍토에 순응한 습성 때문에 사막 등에서는 짐을 나르는 따위에 씌고, 그 젖과 고기 심지어는 똥도 연료로 이용되는 귀중한 동물이다. 인도에서도 가축화된 혹이 하나있는 낙타를 더러 볼 수 있다. 팽갈말로 낙타를 ‘우도ꡑ 라고 한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우슈도라’ 에서 온 것이다.

「법화경」 비유품에는 여래가 돌아가신 뒤 이 경을 비방하는 지들이 겪는 갖가지 험악한 운명이 적혀 있다. 그네들은 현세에 그 과보를 받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마칠 때까지 아비지옥이나 축생의 세계에 떨어져 아주 무거운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 하여 무거운 짐을 나르고 채찍이나 몽둥이로 맞으면서 먹을 것을 걱정하며 근심 걱정하게 된다고 한다.
대승경전은 이 「법화경」처럼 경을 수지독송할 것을 강조하는 반면에 그 경전을 비방하는 자가 받는 엄한 과보를 설하는 것이 많다.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앙, 혹은 그들에게 찾아드는 갖가지 불행과 재난을 스스로 부르는 업의 결과로써 받아야 할까. 아니면 그들의 행위나 삶의 방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까. 전자는 인도 종교의 철칙이라고도 말해야 할 업보 사상과 통한다 할 수 있다. 업보 사상은 그것을 믿는자에게는 자신
의 행위에 깊은 반성을 일으키고, 그것은 또 인륜의 도와도 통한다. 한편,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불행과 재난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서만 원인을 찾는다고 한다면, 한편으로는 인과율을 인정해 가면서도, 원인을 자기 자신 이외의 남에 전가하는 것으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될 것이다. 노력의 대가 없음을 탄식하는 게 아니고 그러한 노력에 힘쓰는 것은 ‘감사’ 나 ‘만족’ 의 마음 또한 통할 것이다. 이 즈음에 ‘행복ꡑ 을 느끼는 일이야 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수타니파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적당한 때에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나까무라 하지메 역, 「붓다의 말씀」 265쪽

나는 1980년 3월에 중국 국무원의 초대로 처음 중국을 방문했다. 처음의 방문지는 북경이었는데, 만리장성을 견학하려고 중국측에서 마련해 준 자동차를 타고 험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는 꼬불꼬불한 산길이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는데, 좁다란 언덕길을 두 마리의 나귀가 실을 수 있는 만큼 짐을 잔뜩 등에 지고 오르고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꼼짝 못하는 나귀는 바위 투성이의 언덕길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마부가 나귀의 엉
덩이를 매질하면 한층 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우는 것이었다.

앞에서 말한 「법화경」 부분은 한역 「묘법화경」에는 ꡒ혹은 낙타가 되고, 혹은 나귀로 태어나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온갖 매를 맞는다. 그저 물풀만을 그린다. 그밖은 이루 말 못한다ꡑ라고 번역되었다. 바위 투성이의 언덕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울부짓는 나귀의 모습을 보자. 경문의 실제 의미가 아 아 정말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이런 나귀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보면, 동정하면서 저런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누구나 무심결에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해 9월 나까무라 하지메 박사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 중국 학술 교류 대표단의 일원으로 나는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이 때 처음 대지를 걸어가는 낙타를 만났다. 이른 아침 돈황 지방으로 항하는 자동차의 차창에서 낙타가 떼를 지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뿌연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낙타 때는 쨉싸게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것은 사막 여행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이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한낮을 피하면 낙타도 덥지 않을테고 움직이기 쉬울 것이라고 깊이 느꼈다. 그 뒤 중국
과 인도를 몇 번 방문했지만 어둠 속을 가는 낙타는 만나지 못했다. 분명 내가 방문했을 때는 만리강성에서 낙타 한 마리가 관광객을 위하여 매여 있었다. 만일 사막이었더라면 닥타의 등으로부터 멀리 있는 오아시스가 한층 빨리 보였으리라.
낙타는 아니지만, 나는 인도에서 코끼리 등에 타 본 적이 있다. 물론 관광객을 위한 것이었지만 중간 크기의 코끼리의 등 높이는 거의 낙타의 등 높이 정도는 될까. 등 위에 구부려 얹져 놓은 이인승 안장에 앉으면 시야가 넓어 지나고 타는 기분은 아무튼 마하-라쟈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미토모 료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