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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쌍계사(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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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글씨를 찾아서 - 조수현 1995년 07월 161호
유월 첫날, 신록이 우거진 자연에서 말할 수 없는 역동감을 느끼며, 네 명의 학생과 함께 아
침 일곱시에 이리에서 출발하였다. 전주를 지나고 남원. 구례를 거쳐 섬진강을 따라서 그 유명한 화개 장터를 지나 마침내 쌍계사에 도착하니 열시쯤 되었다.
화개에서 나온 작설차로 피로를 깨끗어 씻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나온 산채 따위가 길거리에 즐비하게 널려 있는 풍경이 같은 땅이지만 자못 이국적인 느낌과 더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쌍계사는 신라 하대인 팔세기쯤에 창건된 절로서, 고풍이 찬연하거니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쁙 담고 있는 퍽 유서 깊은 절이다. 이렇듯 오랜 역사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고찰을 탐사하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절 입구에 들어서려니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현판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삼신산ꡑ은 지리산의 옛이름이다. 해강 김규진의 엄정한 예서체가 당당히 기풍을 띠고 있다. 그 뒤쪽에 걸려 있는 현액 ꡒ선종 대가람 禪宗 大伽藍“ 은 글씨체는 다르지만 같은 해강의 작품이다. 행서체의 이 현액은 단아한 맛이 돋보인다.

“팔영루八詠樓ꡓ 현액은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활달한 행초체가 예사롭지는 않다.ꡐ팔영루ꡑ라는 이름에는 이런 유래가 전한다. 곧, 이 곳 쌍계사는 우리나라 남종선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 선사가(774~850) 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梵唄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불교 음악의 발상지이며, 또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그 진감 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했다고 해서 ꡐ팔영루ꡑ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니, 그 이름에 담긴 의미가 작지도 않을 뿐더러 새길수록 그윽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한편, 이 곳 쌍계사 대웅전 大雄殿의 현액은 지리산 화엄사에 있는 의창군의 글씨를 그대로 모각하여 걸은 것이라고 전한다.

경내를 둘러보고 미리 연락을 드린 총무스님인 각관스님을 뵙고 학생들과 함께 대웅전 앞에 있는 진성여왕 원년인 887년에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ꡐ진감선사 대공탑비 眞鑑禪師 大空塔碑ꡓ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장으로나 당시 글씨의 서체상 아주 중요한 이 비는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마멸이 심하여 더 이상 탁본을 뜰 수 없는 상태라니 안타까운 마음 그지 없었다. 다행히 이백여 년 전의 목각본 탁본한 벌이 남아 있는데, 구경이나 하라며 강백 덕민 큰스님을 뵐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간곡하게 사정을 이야기하였더니 마지막 한 벌 남은 ‘목각본’을 빌려 주었다. 큰 광영이 아닐 수 없다.

쌍계사는 역사가 깊고 오랜 만큼이나 현액과 주련이 많은 점이 특색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고나 할까, 대부분 근세에 중건하거나 보수한 것이어서 옛사람의 글씨보다는 근대 작가의 작품이 많다.
ꡐ명부전ꡓ 현액은 운강 석봉의 글씨로 골기 없는 행서지만 소박미가 있고 ‘적묵당ꡑ과 ꡐ별선당ꡑ은 해산의 행서로 필치가 초솔하여 운치가 깃들어 있다.

ꡐ칠성전七聖殿ꡓ, ꡒ옹호각 擁濩閣ꡓ , 수문수전文殊殿ꡓ, ꡒ나한전羅漢殿”, ꡒ천왕문 天王門ꡓ, “염화실 (염)花室ꡓ , ꡒ청학루靑鶴樓ꡓ 등과 같은 현액들도 쓴 사람의 필치는 저마다 다르나 절을 감싸는 기운이 하나로 통하는 듯한 것이 여간 예스럽고 향기롭지가 않다.
대웅전 옆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금당당金堂이 나온다. 금당 현액의 양쪽 옆으로 추사의 필치로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ꡓ과 ꡒ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 이 걸려 있는데 서로 필체는 좀 다른 것이 이채롭기도 하지만 활달한 기개를 느끼게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쌍계사에서는 부산에서 크게 활동하다 몇 년 전에 작고한 청남 오제봉의 현액과 주련도 눈에 많이 뜨인다. 이를테면, ꡐ범종루 梵鍾樓ꡑ , ꡐ저방장西方丈ꡑ, ꡒ동방장東方杖ꡑ 들과 같은 현액 등이 그분을 대신하여 이 곳 쌍계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