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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옛수도 집안 땅을 찾아서-집안 땅의 후예와 고구려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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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숨결과 풍정 - 이호신 1995년 07월 161호
집안 땅에는 현재 만여 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 곳곳에서 ꡐ연집불고기ꡑ, ‘평양국수ꡑ , ꡐ오녀봉음식점ꡑ , 그리고 ꡐ고구려맥주ꡑ 라고 씌어진 한글간판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집안 호텔에서 묵으면서 보니, 그 곳의 나무 침대의 요와 이불에 놓은 수繡가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이 시집 올 때 혼수감에 수를 놓아온 것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 그뿐이랴. 환도산성을 내려오면서 마을에서 만난 삶의 형식 또한 우리의 고유한 풍속과 다르지 않은 것이, 대륙의 숨결이 천 년 세월을 넘어 한반도의 땅과 이어졌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또아리를 받치고 항아리를 인 아낙이며, 양철물통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이 지난날 우리네 어머니, 힐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당나귀를 몰고 가는 사내 아이들이며 모이를 쪼고 있는 토종닭이 정겨워 보였고. 곳곳에 구유통이 널브러져 있는가 하면, 부엌에는 정안수 사발과 무쇠솥이 한 겨레의 불길을 지피며 이날토록 걸려 있었다. 일본에까지 전해진 고구려의 귀틀곳간 ‘부경 桴京ꡑ은 아직도 집집마다 빠뜨릴 수 없는 생활 공간이고 이른바 쪽구라고 불리는 ꡐ구들난방‘ 또한 건재하였다.
한민족의 뿌리는 주변에 펼쳐진 자연의 조건에서도 같은 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가 보다. 산 중턱에 즐비한 인삼밭과 들판의 옥수수, 다래나무, 민들레, 노랑물봉선, 궁궁이, 강아지풀 들과 같이 우리 땅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자생식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런 반가움의 한편으로는 오늘의 슬픈 민족 상황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압록강 철교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국경을 나누고 있듯이, 냉혹한 오늘의 현실은 민족의 자존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저어한 여러 가지 장애가 길을 막고있다.
요즈음 국내에서는 고구려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대륙의 숨결을 민족의 기상으로 되살리려는 뜻에서 기획된 여러 전시가 이미 국민적 관심을 끌은 바가 있다. 아! 고구려ꡑ (조선일보), ꡐ고구려 특별대전ꡑ(한국방송공사), 창작 무용극 “고구려의 혼“ 등이 열렸고, 본격적인 ‘고구려 연구소‘ 개설을 통해 ‘만주에 거주하는 고구려 장수왕 후손에 관한 연구‘ 국제학술회의와 더불어 ꡐ고구려 역사와 문화‘ (한국고대학회 학술대회) 등이 개최되었다. 때마침 국내에 반입된 광개토대왕비 탁본 진위를 가리는 공청회가 있었는가 하면, 패션에서도 고구려 패션이 붐을 일으키는 등으로. 갖가지 대중 매체를 통해 고구려의 소재와 이미지가 열풍을 일으켰다.
관계 서적 출판으로는, 고구려 첫 수도인 환인桓仁의 오녀산성五女山城부터 전지역올 답사한 사진과 해설을 겸한 「고구려 성」(서길수), 현장 답사를 통해 고구려인의 자취와 민족 후예의 삶을 기록한 「중국은 한나라가 아니었다」(신형식) 등이 나왔으며, 벽화 중심의 전작 도록 「고구려고분벽화」(이태호. 유홍준). 고구려 광개토왕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소설화한 「왕도의 비밀」(최인호) 등도 고구려 열풍으로 빚어진 소산물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지금에 와서 우리의 민족 의식이 크게 고취될 수 있는 여건은 소중하나, 현장을 다녀온 느낌으로는 방치와 맹목적인 발굴과 문화유산의 훼손은 실로 깊은 우려와 아픔을 금할 길 없다.
비좁은 고분에 벽화를 보려고 들어선 일행들은 어둠 속에서 벽화에 등이 닿을 정도이고, 촉수 높은 백열등으로 가해진 자극은 내일을 바라볼 때 반성의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유물과 함께 영토 분쟁의 소지 및 남북한의 역사 의식차이를 함께 풀어가는 지혜에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집안땅 풍속으로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당나귀 마차와 마부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 옛날 말 타고 바람을 가르며 활시위를 당기던 고구려인의 기상을 그들에게서 찾기란 참 어렵다. 오직 옛 영화의 흔적과 유물을 외지의 관광객에게 안내하는 무료한 생활 모습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 의식이란 과거를 소급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 지향 정신의 축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민족의 면면한 숨결이 겨레의 웅지로 움터서 미래의 넓은 바다로, 역사 속에 새롭게 자리매김 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