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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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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당 바람결 - 영덕 1995년 07월 161호
많은 이야기들이 가슴 속에 흐르는데도 차일피일 미루었다. 잔잔히 또는 급히 흐르는 대로적어 나가는 내 글 쓰는 방식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대중적이며 가볍고 부드럽게. 어쩐 일인지 어렵고 짐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문득 박제된 순록의 눈빛이 생각난다. 그 눈빛에 남아 있는 시베리아 평원의 향수, 이미 굳어진 눈망울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알파와 오메가를 전할 수 있다면, 원고지를 마주하고 앉을 때마다 꿈꾸는 바람이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박제된 위의를 가장하거나 짜여진 틀을 위하지도 못하면서 늦은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보내도 보내도 또 나온다. 저 곳 어디쯤 아무도 모르게 자기들 집을 지었나 보다. 그 애들이 먼저 집을 지었을까. 사중에서 망사창을 나중에 달았을지도 몰라. 아무리 날것이지만 얼마나 영물인데 드나들 문을 생각지 않고 집을 지었을까. 아무래도 망사창이 나중일 게다. 오늘도 동쪽 창문 앞에서 꽃등에 몇 마리가 앵앵거린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는지 저 아이들에 비하면 내 목소리는 얼마나 낮고 작은 편인지. 문을 찾다가 지치자 면전에 와서 앵앵거린다. 탄원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코 끝도 건드려 보고 뺨에도 부딪쳐 오며 사뭇 위협조다. ꡐ왜 그러니 어떻게 하라구. 네가 쏘지 못한다는 건 나도 알아. 꿀을 모으는 애들중에 가장 얌전한 토박이. 그래서 널 좋아해ꡑ 며칠 전부터 창문 앞에 누워 있는 서너 마리의 꽃둥에를 주워 냈지만 오늘에야 그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정된 망사창을 뜯어서 하늘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무딘 내가 그들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둥을 꼬부리며 죽어간 꽃등에를 위하여 향을 사룬다. 돌아가는 다른 길을 모르는 이에게 막힌 창은 얼마나 큰 시련이었을까. 절규로 기진하며 죽어가는 선한 눈빛은 칠월이라서 더욱 슬픈 것일까.
ꡒ꽃이 있는 곳, 향기가 있는 곳. 햇살이 부서지는 창공속으로 날아라. 칠월의 히늘속 너희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맘껏 날아가거라.ꡓ

서운함이 앞을 가려 총총히 말 못하고 우두커니 서로 보며 머뭇거렸네 아득히 푸른 숲에 짙은 안개 서렸는데 떠나는 뒷모습이 외로운 학이랄까.

별소사別小師를 적어 본다. 그렇게 떠난 뒷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가득 아파옴을 어쩔 수 없다. 올 봄에는 동고동락하던 학우 몇을 보냈다. 한 사람이 전생全生을 걸고 할 일을 찾았을 때와 전생을 걸었던 일을 잃었을 때의 비감을 지켜 보며 어수선한 혼란속에서 같이 아파했다.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서서 마음에 둔 일을 성취하기를 빌어 본다. 오늘 남은 한 사람을 마저 보내며 모롱이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내자물거來者勿拒, 거자물추去者勿追(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인 줄 아는 까닭에 말없이 그냥 보냈다.
돌아오는 길 장군평에서 이마에 질끈 수건을 동여매고 잘 익은 농주에 취한 농부를 보았다.
잠방이를 걷어붙인 종아리에는 개구리밥과 찰거머리를 달고 못줄을 튕기며 구성지게 매김소리를 뽑는다. 후창을 지으며 손을 맞추어 모 심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그 소리에 취하는 환영도 잠시뿐이다. 어제까지도 운문산 청정 미나리를 베어내던 논에서 기계로 논을 갈아 엎는다. 탈탈거리는 이앙기 몇 대로 수천 평 모내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옆 풀숲에서는 자동톱으로 길을 쳐 나가면 곧바로 고엽제를 살포하는 동시 동작을 한다.
소를 몰고 낫을 쓰던 시절은 이제 아득하다. 도시나 시골이나 변화하는 세태가 이러하니 어줍잖게 옛것만 끌어안고 의연할 수는 없다. 이 땅 토박이의 공통 정서를 들라면 이제는 무엇을 들 수 있을까? 한낱 농기구에서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거대한 변화의 물결.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인가. 과거를 알려면 현재 받는 것을 보고, 현재 짓는 것을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했다. 전래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그것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며 표류하는 수행을 정착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가장 효율적인 백년지대계를 위해서 우리는 좀더 솔직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젊은 청년 승가의 시간유실을 막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의 유기적인 법제 마련은 필연적인 일이다. 처음 줄을 잡아나가기는 어려운 일이나 그 줄을 잡고 따라가는 일은 쉽다. 몇 백 년 잡고 따라온 줄이 낡았으면 그것을 보완할 튼튼한 새 줄로 바꾸는 일에 우리는 정말 신중하여야 한다.
굽어보는 호거산이나 어머니 젖무덤 같은 동산은 보드라운 실루엣 속에서 말이 없다. 가을이 올 것이고 장군평에도 서서히 시간의 지층이 앉으리라. 오래도록 걸었다. 인연취산의 도리를 낸들 알겠는가. 가만히 더 낮은 자리로 마음을 쓰며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살려 할 뿐이다.

시시이이 일일이이 월월이이 년년이이 참도사문 時時移移 日日移移 月月移移 年年移移 暫到
死門(때와 때가 옮기고, 날과 날이 옮기고, 달과 달이 옮기고, 해와 해가 옮기고 옮겨서 잠깐동안에 죽음의 문에 이르름)인 것을. 유월은 유월대로 칠월은 칠월대로 생명을 태우는 연소의 시간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아침 일곱시면 화엄반 수업이 시작된다. 상강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화엄청강을 들어간다. 과목을 치고 현담을 새기며 필요한 부분을 정리해 나간다. ‘구사론’ 과 ‘화엄학 개론’ 은 격주씩 바꾸어 가며 읽는데, 올해로 삼십 회에 달하는 학장스님의 화엄경 강의는 우리의 눈을 빛나게 한다. 가을철에 들어갈 ‘유식강요’ 의 예비지식으로 읽는 구사론도 보통 재미있지 않다. 글줄보다 아이같이, 신명나게 색법色法, 심법心法, 불상응법不相應法, 무위법無爲法을 이야기하는 강의를 우리는 재미있어한다. 논강을 하고 정리를 하고 아함부 경전을 읽다 보면 하루가 간다.
바쁜 나날이다. 지금 나는 이 이상의 배웅을 바라지 않는다. 이 한해 내가 있어야 할 곳과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이 일이라는 데 대하여 동요가 없다. 남들은 한번 보기도 어렵다는 팔십 화엄을 두 번씩이나 보며 참 좋아서 혼자만 알기에는 벅찬 이 얘기들을 형상화시켜 보고 싶었다. 쉬운 작업은 아니겠지만 구사론과 화엄경을 근저로 수필 한편씩을 만들어 보려 한다. 가르치려고 하는 의도적인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다. 일상 속에서 내 속에 흐르는 물길, 그것을 써 나가고 싶을 뿐이다.
풍경이 있는 수채화를 보듯 읽는 사람이 담담해지는 그런 글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