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성소와 종교의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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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오성
1995년 07월 161호
어느 때에 공삼空三 교주가 법좌에 올랐다. 공삼은 생각이 공하고 뜻이 공하고 밥력만 있을 뿐 법력이 공하였다. 누가 주석을 달기를 뜻은 정책이라 하고 밥력은 밥을 많이 먹어 힘만 센 공권력이라고 하였다.
집회는 조계와 명동을 상수上首로 하여 많은 대중이 모여 있었다. 이들을 향해 공삼은 한통이란 이름의 고양이를 들고 ꡐ이 놈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장할 기본권리가 있느냐, 있다 해도 목을 벨 것이고 없다해도 목을 벨 것이다. 우얏꼬ꡑ 하였더니 대중은 이무런 대답을 못하고 묵묵하였다. 이 때 상수 조계와 명동은 조용히 물러나와 선정輝定에 들어보니 공삼이 한 행동은 앞의 두 교주 빛나리와 물통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었다. 다시 돌아와 따지려 할 때에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라ꡑ 하고 덧붙여 고양이가 죽은 것을 유감이라고 하고 총리대
사가 죽비 삼성을 치고 자리를 파하였다. 그러나 남쪽의 어느 수좌가 ꡐ역시 법력보다 밥력이구만ꡑ 하더라.
지난 6월 6일 국무총리 담화를 통해 종교계와 정부의 대립 구도는 일단락된 듯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종교계는 스스로를 한번 반조해 볼 필요가 있다.
두 종교 본산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국정 최고 책임자의 현실 인식과 발언이 무리수였다 는 국민적 평가와 함께 종교계의 성소 유린에 대한 반발로 대통령 공개 사과 및 재발 방지 공개 확약, 내무부장관 및 경찰청장 문책, 한통노조원 석방 및 노사간 대화해결 촉구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무리수인 줄 알면서도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 아닌가싶다. 곧 정부의 노동 탄압 행위가, 그 본질을 벗어나 엉뚱하게 성역 유린의 시비로 변질된 것이다.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사태는 본질을 호도하여 국민적 관심은 종교계와 정부간의 대립 구도에 쏠리게 되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정부는 총리의 유감정도로성역을 넘보게 되었다.
이 점은 국민 생존의 문제를 교권 수호의 문제로 호도하고 희석하였다는 점에서 종교계 스스로 반문하여 보아야 한다. 70년대 경제 성장위주의 정책에 대해 종교의 영역은 우리 사회의 갈등의 문제를 해결시키거나 대결하는 각각의 편에서 스스로를 반조해 볼 수 있겠끔 하였고, 또 일방적인 논리가 강제되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것은 종교적 성역이 법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공감에 의한 도덕적 양심의 영역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종교는 지금 고통 받고 소외 받는 음지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나서는 개별적(신성한 장소만을 고집하는) 양심이 아닌 공유된 양심으로 행동을 할 때이다. 성소는 장소나 건물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성소는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바로 그 곳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