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불교 생명윤리' 정립 위한 활발한 활동이 있어야 한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6년 02월 288호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논문 조작 사건은 검찰의 수사를 통해 조작의 원인과 행위자, 조작 과정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부터 이 사건에 대응하는 국민들의 태도도 어느 정도 차분해졌다.
검찰 수사가 끝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바로 생명윤리(혹자는 ‘생명윤리’라는 용어가 서구적·기독교적 표현이므로, ‘생명사상’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미있는 지적이다), 즉 생명공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배아복제가 윤리적이냐, 그렇지 않은가라는 문제이다.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에서는 이 문제로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일부에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대체로 배아복제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불교에서는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논문 조작과 관련해, 전·현 총무원장스님의 지지하는 언행이 있었지만, 불교 전체의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종단 차원의 어떤 과정을 거쳐 입장을 드러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3일 ‘불교생명윤리 정립을 위한 공개 심포지움’이 있었다. 이 심포지움은 조계종총무원 산하의 ‘불교생명윤리 정립을 위한 연구위원회’가 주관했다. 불교생명윤리 정립을 위한 종단 차원의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위원회는 2005년 1월 각 팀장 및 연구원 위촉식을 갖는 것으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위원회는 공동위원장 2명(1명은 당연직으로 총무원 사회부장이 맡음)과 지도위원(박병기 교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 총론팀장(김종욱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과 생명조작, 낙태, 뇌사·장기이식·안락사, 사형제도 등 4개팀에 각 3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배아복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유보했다. 생명조작팀을 대표해 발제한 미산 스님은 “생명조작 기술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판단이 지혜를 바탕으로 한 자비행일까? 잠재적 생명체인 배아를 보호하는 것보다 난치병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시급하고 더 큰 자비를 향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 아니면 배아는 의사표현을 할 수 없지만 성체로 자라날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보호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서 미산 스님은 “생명조작에 관한 연구팀원들은 배아의 생명 현상에 대한 더 깊이 있는 관찰과 분석과 함께 좀더 치밀한 불교교학적 담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상설연구기관으로서의 ‘불교생명윤리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했다.
배아복제에 대한 불교윤리적 판단을 기다려온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주었지만, 이후 전개될 논의의 방법과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조작에 관한 불교적 담론의 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심포지움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산 스님은 세 가지 차원, 즉 연기론적 입장, 무아론적 입장, 업론의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하며, 세 가지 차원을 검토한 후 배아복제에 대한 불교윤리적 판단은 ‘생명의 존엄성’과 ‘자비 실천’이라는 두 개의 큰 가치를 드러내는 가운데 회통되어야 한다고 밝혔다.(아래는 미산 스님의 발제문 중 ‘연기론적 입장’ 등의 요약)

연기론적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불교는 시술자와 환자가 자아의 괴로움의 무실체성과 공성을 체득하고 괴로움의 근원을 파헤쳐 궁극적 행복과 완전한 해탈을 지향하는 삶을 살도록 권유한다. 여기서 배아복제의 시술자와 시술을 받는 자의 관계가 궁극적 행복과 해탈에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면 청정보시의 3가지 조건(三輪淸淨) 중에 2가지가 충족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주는 것’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주는 것’이 단순한 세포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생명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합의뿐 아니라 ‘주는 것’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복제된 배아가 단순한 세포덩어리인지 아니면 엄연한 생명체인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무아론적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배아복제 연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과연 배아를 생명권을 지닌 인간개체로 볼 수 있는지, 생명체로 인정한다면 수정 후 어느 시기부터 인간개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 배아복제 연구의 찬반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데, ①단순한 세포덩어리로 보는 입장, ②온전한 인간개체로 보는 입장, ③수정 후 14일 무렵, 원시선이 나타나는 착상의 완료 시점부터 인간개체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불교는 배아와 태아는 물론 인간 자체까지도 실체론적 입장이 아닌 관계론적 입장에서 본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실체론적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자아가 실체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왜곡된 인식 때문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배아복제의 인간개체성 논의는 사실상 5온을 자아로 취착하는 전도된 가치관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왜 삶의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아를 실체로서 취착함으로써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어 해탈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업론의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업론의 관점에서 배아복제를 보면 다음 3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①복제된 배아는 정신적 현상과 업이 이미 작용하여 생긴 생명체이므로 보호해야 한다.(허남결, 불교와 생명윤리-생명조작기술의 발달과 불교생명윤리의 정립 방향) ②복제된 배아가 생명체인 것은 분명하나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제거해준다는 목적으로만 활용된다면 그 업의 과보는 그리 크지 않다.(김성철, 생명공학에 대한 불교윤리적 조망) ③착상 이전의 배아는 업의 잠재력만 지닐 뿐 감수·의지·행위성이 발현되지 않았으며, 불교의 문헌에 나타나는 태내오위설의 4주째인 가나 단계에 비로소 업보체로서의 업력이 발휘된다고 본다.(김종욱, 배아복제에 대한 불교적 관점)
업론의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지위의 도덕적 판단에 관한 논의는 결국 생명의 존엄성과 자비 실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미산 스님은 “불교적 견지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논할 때 인간만이 존엄하고 다른 생명체는 인간생활의 편익을 위해서 당연히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주어진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연기·중도적 지혜이며, 이 지혜를 바탕으로 한 행위가 자비행이다. 연기·중도적 지혜와 자비행이야말로 생명조작에 관한 불교적 담론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