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론적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불교는 시술자와 환자가 자아의 괴로움의 무실체성과 공성을 체득하고 괴로움의 근원을 파헤쳐 궁극적 행복과 완전한 해탈을 지향하는 삶을 살도록 권유한다. 여기서 배아복제의 시술자와 시술을 받는 자의 관계가 궁극적 행복과 해탈에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면 청정보시의 3가지 조건(三輪淸淨) 중에 2가지가 충족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주는 것’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주는 것’이 단순한 세포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생명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합의뿐 아니라 ‘주는 것’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복제된 배아가 단순한 세포덩어리인지 아니면 엄연한 생명체인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무아론적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배아복제 연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과연 배아를 생명권을 지닌 인간개체로 볼 수 있는지, 생명체로 인정한다면 수정 후 어느 시기부터 인간개체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 배아복제 연구의 찬반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데, ①단순한 세포덩어리로 보는 입장, ②온전한 인간개체로 보는 입장, ③수정 후 14일 무렵, 원시선이 나타나는 착상의 완료 시점부터 인간개체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불교는 배아와 태아는 물론 인간 자체까지도 실체론적 입장이 아닌 관계론적 입장에서 본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실체론적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자아가 실체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왜곡된 인식 때문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배아복제의 인간개체성 논의는 사실상 5온을 자아로 취착하는 전도된 가치관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왜 삶의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아를 실체로서 취착함으로써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어 해탈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업론의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업론의 관점에서 배아복제를 보면 다음 3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①복제된 배아는 정신적 현상과 업이 이미 작용하여 생긴 생명체이므로 보호해야 한다.(허남결, 불교와 생명윤리-생명조작기술의 발달과 불교생명윤리의 정립 방향) ②복제된 배아가 생명체인 것은 분명하나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제거해준다는 목적으로만 활용된다면 그 업의 과보는 그리 크지 않다.(김성철, 생명공학에 대한 불교윤리적 조망) ③착상 이전의 배아는 업의 잠재력만 지닐 뿐 감수·의지·행위성이 발현되지 않았으며, 불교의 문헌에 나타나는 태내오위설의 4주째인 가나 단계에 비로소 업보체로서의 업력이 발휘된다고 본다.(김종욱, 배아복제에 대한 불교적 관점)
업론의 입장에서 본 배아복제 지위의 도덕적 판단에 관한 논의는 결국 생명의 존엄성과 자비 실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미산 스님은 “불교적 견지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논할 때 인간만이 존엄하고 다른 생명체는 인간생활의 편익을 위해서 당연히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주어진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연기·중도적 지혜이며, 이 지혜를 바탕으로 한 행위가 자비행이다. 연기·중도적 지혜와 자비행이야말로 생명조작에 관한 불교적 담론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