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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계곡 속의 가장 작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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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6년 02월 288호
시간은 연속적으로 흘러가 그 구분의 실상은 없지만 사람들은 하루로 한 달로 그리고 일 년으로 쪼개어 의미들을 부여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새해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제 나는 불혹의 40이 넘었다. 20대는 바쁘고 불안했지만 그런 대로 열심히 보낸 것 같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산에도 부지런히 다니고 또한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서 한없이 애정을 가졌던 시기였다. 30대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식구와 함께 그 땅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지냈던 것 같다. 또 다시 40에 새로운 땅으로 왔다. 이제 또 다시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환경과 인연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세월의 탓인지 아니면 경험의 탓인지 여유롭게 받아들여진다.
미국인들의 새해 맞이는 물건사기에서 시작한다. 연말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하여 여기저기 상점과 백화점들을 분주하게 다니며 새해가 되면 세일하는 물건들을 찾아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룬다. 각 백화점은 전쟁터로 변하고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한다. 한국 커뮤니티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각 신문마다 동문회와 향우회 모임의 안내가 즐비하고 시즌에는 호텔 예약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한결같이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잘 가지도 않고 모임도 가능하면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각자의 방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낸다. 남들이 보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하는데 우리는 나라와 지역을 초월하여 조용함 그 자체를 즐길 줄 안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법에 조금 다가선 가족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식구는 12월 31일에 LA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아리조나에 있는 그랜드 케넌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곳은 여름이 성수기이지만 병술년 첫 아침 해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데 의기 투합했다.
떠날 때는 장대 같은 비가 내려 걱정을 했지만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니 늦가을 같은 좋은 날씨였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여 긴 여행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랜드 케넌의 입구는 동서남북의 네 군데가 있는데 겨울에는 북쪽 입구는 막는다. 여름이라면 헬기를 탈 수도 있고 자동차나 말 등을 타는 여러 가지 투어가 있지만 겨울은 그렇지 못해 이 거대한 케넌은 한산하였다. 그러나 새해 아침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럽사람들이 많았고 중국인과 한국인도 많이 보였다. 관광버스로 와서 몇 장의 사진만 찍고 가는 바쁜 관광객에 비해 시간이 많은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또한 이동하는 길들이 드라이브 코스로서는 최상이었다. 맑고 싱그러운 햇살과 숲 사이로 잘 닦여진 길, 가끔씩 야생동물이 뛰어나오기에 적당한 속도로 달려야만 하는 길은 도심 속의 운전이 짜증과 피곤을 주는 반면 이 길의 운전은 그 자체가 휴식이었다.
우리는 뷰포인트(View Point)마다 들러서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이 만들어낸 장관에 감탄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아이는 직접 내려가서 케넌을 걸어보고 싶다고 매번 조르다가도 아빠의 농담과 장난에 금방 해맑은 웃음으로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랜드 케넌보다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경치면에서는 뒤지지 않을 풍경을 중국 신강지역의 쿠차에서 본 적이 있다. 그 고장에서는 천산 비경秘景으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선배들과 뜨거운 여름날 하루 종일 등산을 한 경험이 있다. 산은 그야말로 불타서 이글거리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의 색에 감탄을 한 적이 있었기에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는 그랜드 케넌은 그때만큼 온 몸으로 느끼는 감동은 없었기에 약간의 자만과 함께 좋아하는 가족들의 장단에 맞추어주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보니 중간에 박물관 안내판이 있어 내려가 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돌로 지어진 한 칸짜리 산장과 같은 작은 건물 안에는 백인 아줌마 한 명이 앉아 있었고 그 안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사용했던 유물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박물관 뒤로 사방 200미터 규모의 작은 마을이 있어 이곳에 호피 족이라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았던 유적지가 있었다. 3평 규모의 방, 의식을 올렸던 두 개의 작은 방, 그리고 창고 등의 유적지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안내서를 읽어보니 여기다 조그만 마을을 이루어 산 것은 멀리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라 불리는 산봉우리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산봉우리는 호피 족을 비롯해 여러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축복을 가져다 주는 정신적인 산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유적지를 돌아 다시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그들이 경작했던 옥수수와 잣 등이 있었고 곡식 등을 담았던 작은 용기 몇 개와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 두세 벌, 장신구 몇 개가 전부인 그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박물관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이었다. 몇 명이 살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작은 옥수수로 과연 연명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제일 거대하다고 하는 그랜드 케넌의 이 작은 박물관은 새해 아침에 발견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소박하게 꾸며진 내부와 그 몇 점의 유물들이 소중한 것은, 그 옛날 이 땅이 미국이 되기 이전 황량하고 척박한 이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이루고 부락을 이루며 서로 오손도손 살아가던 그들의 사랑과 행복이 곡식 몇 알과 반공호 같은 집터에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