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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관음사 현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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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6년 02월 288호
“바다가 내려다보이지요.”
늦은 밤, 관음사 도량에 서면 정말 저 아래 바다가 일렁인다.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네온사인 가득한 고해苦海다. 관음사는 청주 우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시내가 한눈에 펼쳐져 보이기 때문이다. 깊은 산 숨은 절이 아닌 중생의 바다에서 함께 눈 맞추고 손뼉 치는 절이기 때문이다. 눈이라도 내릴 듯하더니 추적추적 찬 비가 내리는 우암산의 밤. 관음사 주지인 현진 스님은 더 휘황찬란해진 바다 속으로 걸어들며 중생들의 파랑 위에 한 마디 더 얹는다.
“세상 어디든 다 수행처지요.”

고백하건대, 스님과 처음 대면했을 땐 깐깐함이 여간하지 않을 듯하였다. 언제 봐도 말끔히 깎은 머리와 성성한 눈빛이 그러하였다.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은 ‘내가 무스를 바르겠습니까, 염색을 하겠습니까’로 되돌아왔고, ‘스님도 서비스업이니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생동감 넘쳐야 하지 않겠습니까’로 되돌아왔다. 눈 탁한 중생의 선입견은 금세 무너졌다. 유머는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 작은 체구에 깃든 그 여유로움은 바다만큼이나 넓고 깊어 잔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랑을 품은 듯했다.

“요즘 시대에 맞는 탄력적인 수행, 그것이 살아 있는 수행 아니겠습니까.”
스님이 문화를 통한 포교활동에 주력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이 시대 대중의 코드가 문화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다만 속세의 일만은 아닌 듯했다. 포교와 마찬가지로 수행 또한 시대 정서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몸과 마음이 멈춰 있는 순간 없이 늘 생생하게 움직여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수행 정신 또한 화두가 성성하듯 퍼덕퍼덕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잔칫날처럼 시끌벅적한 절이었으면 합니다.”
편안한 친척집에 오듯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는 절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불교는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이 있기에 더더욱 쉽게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스님이라는 말이 주는 부담감은 병풍 뒤에 벗어두고 모두를 가족처럼 대한다. 그러다 보니 ‘친절한 스님’으로 통한다. 도심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젠 귀로 듣기만 하는 불교가 아닌 눈으로 보는 불교가 되고자 한다.
관음사의 초파일은 주민들의 축제라고 해도 좋다. 연등을 가득 밝히고 산사음악회를 여는데, 독특한 것은 트로트 산사음악회라는 것이다. 스님이 생각하는 음악은 함께 박수치면서 모두를 하나가 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예술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만 모이는 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절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이것이 바로 공존이며 소통이고 종내에는 포교다. 대부분 초파일엔 엄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님의 생각은 다르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니 많은 이들이 떠들썩하게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잔치 마당을 펼치는 것이란다.
관음사의 신도들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역시, 젊은 층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든 스님의 세심한 배려 덕인 듯하다. 어린이 불교대학, 한문학당, 대학생 불자 모임인 대불련, 관음회, 약사회, 지장회, 가수와 국악인 그리고 연극인과 작곡가 등 예술가들의 모임인 충북불자예술인협회, 군인법회에 이르기까지 미래 불교를 위한 긴 안목과 열정이 잉걸불 같다. 금세 확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건, 해인사 포교국장으로 있을 때 수련회나 템플스테이 등 대중의 자연스러운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활성화시킨 데에도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홈페이지를 가진 게 벌써 6년째이니 다른 사찰보다 한발 앞서 나갔고, 사이버 법당의 문도 가장 처음 열었다. 그 외에도 ‘기쁜 인연’이라는 월간지를 만들어 문서 포교에 힘쓰고, 시민단체 활동에도 열심이며 충북경찰청에선 경승警僧으로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젊은 층과의 교류를 위해 인터넷 다음(daum)에 ‘삭발하는 날’이라는 카페를 만들었고,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코드가 되고 있는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도 스님의 젊은 포교법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입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마음에 죽비 하나 품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살면 눈물까지도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 현재의 인연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 그렇게 삶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스님은 ‘현재’에 가장 ‘현실’적으로 살아가며 그 모든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관음사의 주지로 온 것은 2년 전. 그러나 관음사에서의 포교활동은 한참 전부터의 얘기다. 해인사에서 포교국장으로 3년간 있기 전에 관음사에서 8년여를 지냈다. 그러니 청주는 너무도 낯익은 땅이다. 은사스님인 이두 큰스님을 만나 출가한 것도 청주 옆 보은의 법주사였다. 경남 사천에서 나고 자란지라 경상도 사투리를 쓰긴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충청도의 느긋함이 배어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인 듯하다.
스님은 동진童眞 출가하였다. 어려서부터 산에 가면 목탁을 두드리듯 나무를 두드리며 염불하는 흉내를 내고 동네 절에 데려다 놓으면 천수경도 금세 외워버려서 어른들도 중이 되겠다 했단다. 절에 가면 많이 봤던 풍경 같고 불경을 보면 많이 봤던 책 같은 것이, 전생에 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전생의 업으로 현생에도 중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출가 전에 우연히 시집을 한 권 보고 감명을 받아, 그 시를 쓴 스님의 법명을 기억해두었다. 나중에 꼭 은사스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우연찮게 그 시의 주인공인 이두 스님을 꿈꾸었던 대로 은사스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관음사에서 모시고 있다.
20대 초반엔 해인사 강원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나이에 비해 승랍이 많다. 해인사에서 학인으로 지내던 시절은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그동안 써온 <삭발하는 날> <잼있는 스님 이야기> <산문, 치인리 십번지> 등의 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스님들의 소소하고도 인간적인 수행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소제목들만 살펴봐도 ‘예비군 훈련 풍속도’ ‘문풍지 바르기’ ‘김장하기’ ‘산중 한가위 풍경’ ‘수녀님이 좋더라’ 등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다. 문체 또한 온화하기 이를 데 없다. 불교 용어 아래 세심하게 주석을 달아놓은 것도 스님의 따뜻한 성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먼저 자신의 어깨를 낮추는 스님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청주불교방송에서는 3년간 매일 ‘우암산 전망대’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람들은 현진 스님을 만나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첫째, 부드러운 글에 놀란다. 둘째, 글과는 사뭇 다른 생김새에 놀란다. 셋째, 생김새와는 더 사뭇 다른 유머 감각에 놀란다. 그러나 그 놀라움 앞에서 딸꾹질조차 나오지 않은 것은, 그 내면에 깔린 온화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님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빈방에 앉아 네 번째로 놀랐다.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관음사의 고요한 바람이 등 뒤까지 쫓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봉암사에 대중공양을 가신다고 했다. 그 길을 따라 나섰다. 비가 내려 쌓였던 눈 더미를 녹이자 바람이 그걸 고스란히 얼려놓은 길.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보조 국사께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고 했어요.”
역경과 고난은 수행을 위한 장치 같은 거라고 했다. 행복과 불행이 늘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라고 했다. 땅에서 넘어졌던 나는 바로 그 땅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걸어갔다. 내 수행을 위해 스님이 꾸민 장치 같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금세 또 넘어지게 될까. 스님은 삶 자체가 수행이라는 말을 정말이지 씩씩하게 듣게 해주었다.

스님이 생각하는 수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수행이라고 했다. 그는 ‘포교’가 자신의 ‘업’이라고 생각한다. ‘업’은 그 사람이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정해지는 것 같아, 지금의 문화 포교 활동을 끝끝내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 현재성을 강조하는 ‘현재’의 현진 스님은 이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포교에 힘 쏟고 있지만, 기도와 신심은 불교의 원형 안에서 깊이를 더해야 하는 것이 기본임을 잊지 않는다. 계율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선을 지키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존하는 것들과의 소통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 스님이 추구하는 수행의 또 다른 면일 것이다.

한 송이 연꽃을 이루는 꽃잎들의 모양은 조금씩이나마 다 다르다. 제 위치에 따라 다른 모양의 잎들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듯,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의 꽃잎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스님의 말대로라면, 한 방 안에 모인 스님들이 다 다른 모습이어서 조화로운 것처럼 말이다.
스님은 닷새에 한 번씩 삭발을 한다. 처음 건넸던 유머처럼 무스도 못 바르고 염색도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잡초와도 같은 무진한 번뇌를 쳐내기 위해서란다. 나태해지지 않고 늘 생생하게 살아 있기 위해서란다. 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또 비춰보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하나의 달이 천강만수千江萬水에 비쳐 천 개가 되고 만 개가 되고, 동시에 천강만수千江萬水에 있는 달은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이 거두어 잡는다고 했다. 스님의 포교활동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가 품은 불교의 원형은 하늘의 달이고, 그의 걸음은 고해의 웅덩이에 비친 달쯤 될 법하니 말이다. 습습하기 이를 데 없는 스님의 자근자근함 같은 달이 퍼덕퍼덕 떠올랐다. 하늘에도, 그리고 저 고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