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라 기도는, 아비라는 나의 숙생에 풀어야 할 업이라. 몇 해 전 여름,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갔던 암자에선 광목으로 법복을 해 입고 땀 흘리며 법신진언을 외우는 수승한 신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진풍경이었지만 그날 이후 내게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인대가 끊어진 다리는 의사에게 ‘절 불가’를 통보받았지만 젊을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무리한 휴가를 내어서 가야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뜻밖의 고수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하루 전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적광전, 관음전 모두 사람이 차서 정념당에 짐을 풀었다. 그곳엔 주로 대구, 부산의 나이 지긋하신 여신도들이 수행을 하였다.
고심원에서 성철 대종사와 같은 큰 스님을 생전에 뵙지 못하고 열반에 드신 후 찾아뵙는 것이 못내 서러워 어린애처럼 앙앙거리며 울었는데 밖에서 그 광경을 보고 측은하셨는지 조계사 불교대학 출신이라던 보살님이 한마디 하신다.
“‘북 송담, 남 진제’라 공부하고 싶으면 큰스님들 찾아다니며 공부해봐.”
어느 신도에게 물었다.
“아기를 낳겠느냐? 아니면 아비라 기도를 하겠느냐?”
여신도는 대답했다.
“차라리 아기를 낳겠습니다.”
아기를 낳는 고통보다도 심하다고 하니 겁이 덜컥 났지만 법복 하나에 배낭 하나 덜렁 메고 온 초심자를 모두 반겨주셨다.
‘인도 보살님’이라 불리우던 그 보살님은 참말로 인도사람처럼 이국적인 외모를 지니고 계셨는데 하루는 고무장갑을 끼고 해우소 청소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백련암 직원이었구나’ 생각하였는데 나와 다르지 않게 기도접수를 하고 오신 분이었다. 1년에 4차례 아비라 기도를 빠지지 않는다는 그 신도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분이야말로 이 절의 주인이로구나. 나는 객이지 아니한가?’ 순간 고개가 절로 수그러졌다.
아비라는 내가 해본 그 어느 기도보다도 힘든 수행이었다. ‘108참회’는 하겠는데 장궤합장을 하고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법신진언을 암송하고 나면 무릎이 깨어질 듯 아파왔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방울을 음미하기란 세상을 살면서 쉽지 않은 일인즉 앞에 앉은 도반의 흐르는 땀은 또 하나의 공부가 되어 마음을 잡아주었다.
앞에서 기도하신 노 보살님은 3박 4일 내내 서울에서 멀리 가야산으로 공부하러 온 젊은 처녀를 고마워하셨다. 기도가 끝나고 나선 내 손을 잡고 암자 곳곳에 계신 부처님들께 인사를 다니시었다. 콩을 배꼽에 넣고 그 기운과 더불어 수행하셨는데 그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콩을 주문하는 소리가 빗발쳤다. 한참을 다니시다가 다음에 올 땐 콩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이 담에 큰스님 앞에 가서 야단맞겠다며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이 참으로 곱고 아름다왔다.
대개는 연세가 지긋하신 중년이나 노보살님이셨기에 몸보신 할 비상식량을 소지하고 계셨다. 나 같았으면 며칠을 두고 먹어야 할 양식이라 쉬이 내주지 않았을텐데 먹을 것이 있는 자리엔 꼭 나를 불러주셨다.
이틀째 아비라 기도 내내 고통으로 흐느꼈는데 옆에 계셨던 보살님이 걸리셨는지 포도즙을 챙겨주셨다. 포도의 힘은 위대하였다. 포도를 즐기지 않았는데 서울에 와서 거봉 한 박스를 사서 대놓고 먹었다.
박카스에 두유, 건빵 등 평소엔 먹지 않던 식품들이 수행중인 내게는 절실했다. 한 그릇에 돌아가며 커피를 얻어먹어도 더러운 줄을 몰랐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아난아, 대중에게서 무엇을 얻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절반쯤을 얻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틀렸다. 대중으로부터 전체를 얻느니라.”
회향 후 종정 스님의 하안거 해제법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큰스님을 뵙는 것보다 젊은 내가 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식이 끝난 큰절은 썰렁했다. 인도 보살님이 처진 어깨를 쓸어주시며 말씀하신다. “다시 오라는 부처님의 뜻이야. 다음에 꼭 와.”
“예” 하고 희미하게 대답하였으나 중생계에 매인 몸이 언제 또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열차에서 보는 세상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구름이 어제와 다르게 보이고 초록색 논밭이 아름다웠으며 산천초목이 모두 불국토였다.
꿈과 같은 3박 4일을 지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본래 한 물건이 있어 그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는데 물건을 잡아 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객입니까?”
선계와 속계가 공존하는 곳, 백련암. 구름과 가까이 위치한 선계에는 수도승과 고수인 수행자들이 청정도량을 지키고 있고 산을 내려다보면 전등 빛이 하나 둘 켜졌다 꺼졌다 하는 속계가 있다.
아비라 기도를 하고 내가 얻은 것은 ‘도반’이다.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수승하고 공부의 전부를 시켜주는 도반. 혼잣 일은 걸림이 없이 잘하면서 대중살이에는 영 이골이 붙지 않고 분별이 끼어드는 개인주의에 찌든 사람이 소중한 보물을 얻은 셈이다.
안이비설신의는 불이다. 그 불을 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