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남편, 착한 두 아들, 별 어려움 없는 생활 때문인지 그동안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지내왔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해 뛰어난 머리에 비해 노력하지 않는 작은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학교시험 대비에 성실치 못한 모습이 항상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던 것이 그 아이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고, 그 이유가 결국은 이렇게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어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연히 이웃을 따라 갔던 절에서 스님이 기도를 15번 하라고 하셨다. 15번 절에 오면 된다는 것이다.
‘15번은 절에 가보지 뭐, 기도하면 작은놈이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해주실 수도 있을 거야’ 하는 마음과 “네” 하고 했던 대답에 대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절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5번째 기도를 마치고 일주문을 나서는데, 열심히 공부하게 해주시리라 생각했던 기대감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아! 이것이 나의 욕심이구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어, 영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닌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형처럼 최상이 되기만 원했던 거야’ 이런 생각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그러자 가슴에 꼭꼭 숨어서 단단하게 뭉쳐 있던 욕심 덩어리가 힘없이 풀어지고 있었다. 가슴 아래로 아래로 아무 힘없이 가라앉고 말았다(지금도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종교의 힘이란 것이구나. 사람들이 종교 생활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거야’
자신과의 대화로 숨어서만 살던 또 하나의 ‘새로운 나’를 끄집어내어 세상 속에 비춰볼 수 있게 만들었다.
바로 그렇게 부처님보다 ‘새로운 나’를 먼저 만나게 되었고, 그 ‘새로운 나’와의 만남이 부처님 곁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만나게 된 ‘새로운 나’는 부처님 곁으로 다가가는 든든한 다리가 되어주었고, 내년이면 수험생이 될 큰아들을 위한 입시기도란 인연을 통해 부처님 세계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이렇게 부처님의 울타리에 들어선지 6개월, 해인사 장경각에 1년 입시기도를 올리고 나니 아들을 위한 기도의 본격적인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 같았다. 부처님 세계에 나의 마음을 전하고 나의 마음에 부처님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모든 정성을 모아 기도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아들에게 바라는 모든 것을 부처님께 성취케 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도 곧 욕심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도와 욕심을 분리시켜서 따로 떼어놓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곧 욕심이었고, 그렇다고 그 욕심을 놓아버리자니 기도의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답한 마음에 스님께 여쭈었더니 “처음엔 그렇겠지만 자꾸 하다보면 스스로 알게 됩니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빨리 깨닫게 되지요.”
주위의 신도들에게 물어보지만 기도=욕심이라는 등식을 깨뜨릴 수 있는 명쾌하고 시원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매주 월요일 천도재 동참, 오후엔 장경각 예불, 이렇게 한두 달 시간이 흘러가도 마음속의 의문을 풀지 못하자, 장경각 비로자나 부처님께 고개 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비로자나 부처님! 욕심이 아니면서 바람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도 가르쳐주세요, 다른 신도들은 다 가르쳐주셔서 저렇게 기도를 잘 하는데 왜 저만 가르쳐주시지 않나요?
시원하게 대답 좀 해주세요! 부처님 전에 온 선착순으로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제가 늦게 뵙게 된 만큼 나머지 공부하겠으니 보충 수업 좀 해주십시오.’
아무리 항의해도 미동도 않으시는 부처님, 돌아서 나오는 나의 뒤통수를 보면서 ‘모든 것은 네 마음속에 있지 않느냐, 네가 다 알고 있으면서 무슨 엄살’ 하시며 오늘도 이웃나라 전쟁 구경 하듯이 빙그레 웃고만 계신다.
답답한 마음과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합쳐져 어느새 액체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기도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부처님께 빌면 모든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새로운 나와 전쟁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될 줄이야.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고, 갑신년 정초기도 일주일을 열심히 다니며 대적광전에서 회향기도에 참석하고, 장경각 법보전으로 올라갔다. 기도 중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뜨거운 감정이 몸 한가운데로 밀고 올라왔다.
갑자기 남편과 두 아들이 정말 고마웠다. 한 번도 이렇게 가슴 저리도록 고맙다는 생각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가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남편과 착하게 자라준 두 아들, 왜? 고맙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그동안은 그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는 줄만 알았다.
처음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이란 단어에 대한 진한 감동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행동이 바뀐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고마움이 이토록 크게 다가오는 것은…? 그랬다, 바로 내가 바뀐 것이었다.
부처님께 감사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부처님의 첫 선물을 받아들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로 연발하면서 한편으론 부끄럽고 창피해서 이 선물을 펼쳐들고 자랑을 해야 할지, 감춰놓고 혼자 좋아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 선물만 받기 위해 기도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부처님이 이것은 덤으로 주신 거야, 그렇지요? 부처님!’
아직도 마음은 의문을 밀어내지 못하는 만큼 더 바빴다. 큰아들을 위해서 입시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욕심의 등식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으니 발원문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인터넷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찾아보아도, 도반에게 물어봐도, “부처님께 무조건 매달려야 돼” “입시기도는 ○○절에 가서 기도해” “다라니 독경이 제일 좋아” 하는 등, 그때마다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초심자인 난 아직 목적지로 가는 길도 찾지 못했는데, “열차를 타고 가, 택시를 타고가, 아니야, 버스를 타고 가” 하는 것 같았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만 어긋나지 않으면, 무엇을 타고 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운송수단은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민, 고민하면서 기도와 욕심을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어느 날, 어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도=욕심, 틀린 것이 아니여. 다만 발원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지….”
순간, 가슴이 뻥, 뚫어졌다. 이렇게 쉬울 수가…? 이 감격을…, 하늘도 구멍이 생길 것 같은 벅찬 감격이었다.
드디어, 아들을 위한 입시기도 발원문을 완성했다. 이젠 기도를 해도 부처님께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남을 위해 기도하라.” 모든 스님들이 법문으로 하시는 말씀이라, 도반의 수험생을 위해서도 잊지 않고 기도했다. 기도 중, 도반의 아들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그 아이의 쾌유를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해주었다.
그런데 문득 내 마음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이 기도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분명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건 가식이고, 허위였다. 다시 기도를 해 보아도 내 아이만큼 마음의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내 마음에서 부처를 찾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마음의 부처는 보지 못하고, 허상만 붙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니…. 그날부터 남을 위한 기도는 놓아 버렸다.
몸으로 하는 기도,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기도,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하고 싶다.
‘새로운 나’와 만난 지 30개월, 그동안 두 아들의 입시를 모두 치렀고, 입시기도를 통해 나는 부처님 대학을 개설했다. 이번엔 내가 부처님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험생이 되었다. ‘새로운 나’가 부처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울 때, 드디어 부처님 대학의 합격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 아들만 아니라, 모든 수험생들이 다 원하는 곳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하면서 기도를 하라’ 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대학입학 정원이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모두 원하는 곳에 합격할 수 있나요. 이치적으로 맞지 않잖아요.’ 대상 없이 항의를 하곤, 이렇게 기도했다. ‘모든 수험생들에게 지혜와 건강 주시어 그들이 모두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하시옵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했더니, 부처님은 그 많은 수험생 모두를 살피시느라 우리 아이들은 잊어버리시고 말았다.(스님 말씀 잘 들을 걸…)
아들:“부처님은 내가 답안지 밀려 쓸 때 좀 가르쳐주시지.”
엄마:“얘야, 부처님이 너만 보고 계실 수 있니? 수험생이 얼마나 많은데….”
아들:“그래도… 그렇지.”
엄마:(마음속으로) 그래 너는 3,000배도 했는데…. 아마 앞으로 너의 힘만으론 도저히 부족할 경우에 도와주시려고 그러신 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