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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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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진광 / 운문사 강원 강사 2006년 02월 288호
겨울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니 벌써 봄이 왔나 싶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가 촉촉이 젖어 그 보드랍고 폭신한 느낌에 금방 새싹이라도 파릇파릇 돋아날 것만 같다.
어제 우리 운문사 강원 2학년 사집반 학인스님들이 3일간의 자비참법 기도를 시작했다. 자비참법 기도는 사집반에서 경반으로 올라가기 전에 하는 특별한 기도다.
사집반은 한 해 동안 농사짓는 일을 담당했는데 주로 채소를 가꾸어 대중 스님들의 부식거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서 다라니를 염했다. 흙, 물, 바람, 햇볕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해달라는 새싹을 위한 기도였다. 무엇보다 이들은 경작 과정에서 희생된 미물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면서 알게 모르게 죽인 미물들께 참회합니다.’
이렇게 그간의 농사를 짓기 위해 희생시킨 생명체들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는 것이다. 또 앞으로 경반으로 올라가면 경전 공부로써 정견을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지만 주위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 ‘아무런 장애 없이 부처님 경전 잘 보게 해주사이다’라고 간절히 발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참회는 발원의 전제이면서도 둘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절에서의 생활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난다. 수행자의 생활에 기도 아닌 것이 없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면서는 밥이 알맞게 잘 되어 맛있게 되길 바라는 기도는 결국 그 밥으로 중생의 몸을 건강하게 해달라는 보약의 기도이다.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 외우는 입측오주는 결국 가장 더러운 것을 가장 깨끗한 것으로 보게 하여 온 누리를 맑게 만드는 청정의 기도가 된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 옮길 때마다 기도하지 않을 때가 없다.
절에서 살아도 때때로 게을러지고 방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한을 정하고 기도를 한다. 방학을 이용하여 혼자 할 때도 있고 다른 대중스님들과 함께 할 때도 있다. 이번 자비참법 기도에 내가 동참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였다. 비로전 큰법당에서 해왔는데 올해는 비로전 보수공사로 명부전에서 하게 되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좁은 곳에서 53명의 학인 스님들과 오붓하게 기도를 올리니 집중도 잘 되고 신심도 절로 일어나 감동스러웠다. 수행자에게 기도의 힘이 없다면 어떻게 수행자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을까. 우리 운문사 250여 명의 학인스님들도 이런 기도에서 수행생활을 활기차게 꾸려갈 힘을 얻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일상에서 평화와 안식, 그리고 만족을 가져오는 좋은 방법이다. 기도는 모든 종교에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우리 불교의 기도에는 참선, 예불, 간경, 주력, 사경, 염불 등 온갖 형식이 있다. 또 참회기도, 축원기도, 실상기도, 서원기도, 산림기도 등 목적도 다양하고 관음기도, 지장기도, 약사기도 등 대상도 갖가지다. 각자의 근기와 인연에 알맞도록 선택하는 것이니 기도에는 등급이 있을 수 없다.

기도는 간청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내적 교감이다. 그러나 둘 다 최종적인 목적은 같다. 기도는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무지와 어둠의 장막에서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갈망하고 깨닫고자 하는 자는 기도에 의지해야 한다. 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익하다. 마음이 없는 기도보다는 말없는 기도가 훨씬 낫다. 기도의 놀라움을 경험한 사람은 음식 없이 며칠 간 살 수 있어도 기도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다. 기도가 없으면 내적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디는 기도가 영혼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우리 마음의 자세라 할 수 있겠다. 기도하는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첫째,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믿는 마음이란 공경하고 귀의하는 마음이다. 기도하면 반드시 성취한다는 믿음이다.
둘째, 참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자신이 일으킨 욕망과 지은 죄업을 뉘우치는 마음이다. 참회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불보살의 감응을 초래할 정도로 진실된 참회를 통하여 자신의 몸과 영혼을 맑히지 않는다면 이미 더럽혀진 그릇에 깨끗한 물을 담는 형국이다. 더러운 그릇에 아무리 깨끗한 물을 담는다 해도 마실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아가 나에게 닥친 불리한 상황,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남 탓을 하지 않고 내 탓을 하는 것이 궁극의 경지가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 중 나에게 불리한 모든 것의 출발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 못살게 구는 타인은 그런 근본적인 진리를 일깨워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타인에게 내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연기법에 따라 나를 있게 한 모든 존재들을 부처님으로 맞이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도 있듯이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정성스럽게 간절히 해야 한다.
신라 경덕왕 때 희명希明은 눈먼 다섯 살짜리 자기 딸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분황사 천수관음 앞에 기도하며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라는 향가이다.

무릎을 낮추며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기도의 말씀 두노라.
천 개의 손엣 천 개의 눈을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두 눈 감은 나니
하나를 숨겨주소서 하고 매달리누나.
아아, 나라고 알아주실진댄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눈먼 딸을 둔 어머니라면 그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못할까? 실명이라는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평민 어머니는 천수관음께 간절하게 기도한다.
‘당신은 천 개의 눈을 갖고 계신데 우리 아이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당신은 눈이 천 개나 되니 제발 그 중 하나만 주십시오. 단 한 개라도 주시면, 아니 단 한 개의 눈이라도 달라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당신을 닮아 어디에 써도 남을 크나큰 자비를 저도 남에게 베풀겠나이다.’
이렇게 너무나도 소박하고도 절실한 마음을 보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우러난 소박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도 이렇게 절실하고 경건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기도의 간절함이 결국 딸의 눈을 뜨게 하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 간절해야 할 기도는 바로 자기 안의 부처님을 향한 기도일 것이다. 부처님을 밖으로 구하는 것은 수풀 속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한다. 자기 안의 부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만이 근본의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이다. 영원한 해탈을 이루게 할 것이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자.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자. 잠시 눈을 감은 온 누리의 존재들이 편안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