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면서도 내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이 몸을 얻기도 전에 참다운 나의 법신의 몸은 여여히 있었습니다. 설사 이 세상에서 죽어 화장터에 가 뼛가루가 된다 해도 손색 없고 하자 없는 내 주인공이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지 몸뚱이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아닌 이 몸 속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서남북으로 벌처럼 분주를 떨며 도둑놈 일만 합니다. 남의 일만하고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무슨 큰 착한일을 한 것처럼 상을 내고 살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만든 착한 일일지언정 선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선이라는 말만 있지 선도 없고 성공이라는 것도 없고 행복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성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기 전에는 돈이 있어도, 이들을 낳아도, 벼슬을 하고 재주를 배워도 걱정 근심이 있습니다. 전부가 걱정 근심인데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으니 이것이 보물이고 재산입니다. 세상의 옷이나 집은 보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반대로 그것을 보물로 삼으려고 합니다. 늘 사람 몸을 받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물고기가 물의 귀중함을 모르듯 감사한 생각을 낼 줄 모릅니다.
법문의 목적은 듣고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가령 내가 독사가 되었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독사 몸 받은 것에 비하면 사람 몸 받은 것이 감사하고 만족할 텐데, 자기 마음대로 사람 몸을 받은 줄 알고 욕심과 진심을 내고 어리석은 일을 해 죄를 짓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지옥에 안 가길 바라며 호랑이 밥, 독사 밥, 물고기 밥을 면하겠습니까. 부처님은 우리가 살 길을 찾은 어른입니다. ‘내가 길을 가다 보니 다른 길은 모두 죽은 길이고 살길은 한가지 뿐이더라, 그러니 내가 간 길을 너히들도 가거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걸어갈 때나 서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눈깜짝할 사이도 없이 목숨보다도 눈동자보다도
중이니 시간을 아껴 공부하라
용맹하고 더 용맹하되 우려 부처님과 같이
공부를 해라.
지난 세상이나 지금이나 누가 나를 도와주거나 해치지 못합니다. 집안 일이나 단체, 국가의 일도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망치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허물을 봐야 합니다. 성인들이 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에 거짓말한 부처님 안 계시고, 행이 바르지 않은 조사가 없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 죽느냐 사느냐로 싸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공부를 안 해 놓으면 귀신에게 잡혀 갑니다. 내 공부를 해 놓으면 염라국에 잡혀가지 않습니다. 몸뚱이가 아니라 내 마음을 잡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설사 억천만겁동안 나의 깊고 묘한 법문을 다 외운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 동안 도를 닦아 마음을 밝힘만 못하느니라.
내가 아난과 함께 멀고 먼 세상에서부터 같이 도에 들어왔다. 아난은 늘 글을 좋아하여 글을 배우는 데에만 힘써 왔기 때문에 여태까지 성불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와 반대로 참선에만 힘써 왔기 때문에 벌써 성불하였다.
옛 도인이 말씀하셨다.
마음은 본디 깨끗하여 명경과 같이 밝다.
탐진치 망상의 티끌이 쌓이고 쌓여 그 밝음을 잃고
캄캄하고 어두워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게 된다.
부처님과 아난존자는 언제나 나고 나는 곳에 같이 태어나 발심해 도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부처님은 참선만 했고 아난존자는 말과 글만 배웠기 때문에 부처님처럼 얼른 성불을 하지 못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아무리 다 외워도 죄만 더 많아집니다.
번뇌망상, 착한 마쯤 나쁜 마음 때문에 나고 죽는 고통을 받으러 다닙니다.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마라.
착한 일을 하되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 지옥에 갈 거리밖에 안 됩니다. 참선 하나만 하면 모든 죄가 없어집니다.
모든 망상의 먼지를 다 털어버리면 본디 깨끗한 마음이 드러나 영원히 어두움을 벗어나서 대자유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문에 힘을 쓰는 것은 명경에 자꾸 먼지를 더하는 것이어서 나고 죽는 고통을 더 깊게 한다.
얼마전 비구니 스님이 와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불쌍해 지장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물론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모두 죄 짓는 일입니다. 공부 하나 잘하면 7대, 9대 부모가 모두 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데 무슨 망상을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부처님의 말씀이라도 망상,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참선에 비하면 똥 닦개, 피 닦개와 같습니다.
‘이 뭣고’ 할 때 비로소 공덕이 됩니다.
부처님은 어머니도 만나면 죽여 버리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칼로 탁 잘라 버리고 공부를 해야 비로소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정있는 사람은 도를 성취 못한다고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도 조사도 다 죽여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법당에 있는 껍데기 부처님에게 속지 말라는 얘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서 가장 큰 기도는 ‘이 뭣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면 다 해결이 됩니다.
학문으로 얻은 지혜는 한정이 있어서 배운 그 범위밖에 모른다. 그러나 참선하여 마음을 깨치면 그 지혜는 한이 없어 그 지혜의 빛은 햇빛과 같고 학문으로 얻은 지혜의 빛은 반딧불과 같아서 도저히 비유도 안된다.
세상 공부는 배운 것만큼 쌓는 공부인데, 도닦는 공부는 모두 버리는 공부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율은 행동을 배우는 것이고, 참선은 말과 글자를 버리는 공부입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불에 태워 버리고 태평양 한가운데 버리시오. 내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는다 이 생각이 팍 들어선 사람이 선지식입니다.
참선 공부 잘하는 것이 제일 큰 선지식입니다. 공부가 안 된다고 하지말고 탐심도 버리고 진심, 어리석은 마음을 다 버리시오. 어째 남에게 안 지려고 합니까.
육조 스님은 나무 장수로서 글자는 한 자도 몰라도 도를 깨친 까닭에 그 법문은 부처님과 다름이 없고, 천하없이 학문이 많은 사람도 절대로 따를 수 없었다.
천태스님이 도를 수행하다 크게 깨치니 그 스승인 남악스님이 칭찬하며 말했다. 대장경을 다 외우는 아무리 큰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너의 한없는 법문은 당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래서 천고의 큰 도인이 되었다.
재주 있고 총명한 사람은 알고 보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똑똑한 척 하지 마시오. 총명한 사람은 제가 저를 죽인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아는 것이 있으나 남의일에 간섭하고 시비를 하다 보면 죄가 생기고, 자기에게 자기가 걸려 맞아 죽을 일이 생깁니다. 남의 시비를 보지 말고 자신의 허물만 보려고 하시오.
재주가 있어야 몇 푼어치나 되겠습니까. 세상일을 잘하려고 하는 것은 진흙으로 옥을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알면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자기 생활을 위하여 부처님의 본의를 어기고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라고 한다면 이는 불문의 대 역적 죄인이니 절대로 용서치 못할 일이다.
스님네들이 너그러운 부처님 법을 가르쳐야 되는데 법당의 부처님에게만 가져다 놓으라고 하면 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화두공부는 착한 생각. 악한 생각이 나오기 전에 깨끗한 생각을 찾으려고 하는 공부입니다. 부처님 마음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공부입니다. 죄도 복도 없고 인과도 없는, 너도 나도 없고 성인도 범부도 없는 깨끗한 도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공부입니다.
선악이 모두 나고죽는 법이어서 세간의 윤회법이지 출세간의 절대법이 아니다. 선악을 버려서 생각지 말고 오직 화두 하나만 의심하는 것이 참다운 수도인이다. 대자대비심으로서 여섯 갈래 만행, 곧 남을 돕는 큰 불사를 지어 공부를 성취하려는 사람은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과 같느니라.
착한 일을 해서 수지 맞으려고 하면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착한 일을 해서는 고생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다가 눈이 멀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비상을 먹여 다 죽여 버리라고 합니다.
조주스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총림에 있으면서 십년, 이십 년 말하지 말고 공부하여라. 그래도 너희를 벙어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성취하지 못하면 노승의 머리를 베어 가거라. 필요한 말을 할 때도 화두가 계속 되어서 간단이 없어야 한다. 자성을 밝히는 선문에서 볼 때 염불도 마구니며 일체 경전을 다 외워도, 대자대비로서 일체 중생을 도와 큰 불사를 하여도 지옥 귀신들이다.
참선을 하지 않고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불러봐야 마구니이고 외도들입니다. 물론 염불도 부처님이 시켰습니다. 아무리 참선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으니 식은 밥이라도 얻어 먹는 법을 가르치려고 동전 몇 잎을 던져 준 것입니다. 큰 장사 못하니까 할 수 없이 기도하고 염불, 주력, 경을 내세웠지 모두 외도법이고 마구니법입니다. 바른 법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할 수 없어 하라고 했지만 마구니법이라고 친히 밀씀했습니다.
참선하는 공부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제 죽음이 곧 내일입니다. 몇 십 년 사는 것 아닙니다. 지나간 일 한 번 헤아려 보시오. 고생스러울 때는 일각이 여삼추라고 지루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디로 가버렸고 여기 이 자리 아닙니까.
공부하다 그냥 죽어 버리시오.
오직 자성을 밝히는 일만이 살 길이다. 동산스님이 말씀하시되, 부처와 조사 보기를 원수처럼 하여야만 바야흐로 공부하게 된다.
공부가 되지 않으니 부처님에게 업장을 녹여 주시오. 병 들지 않게 해 주시오 하는 사람이 있는데 죽으나 사나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 하는 사람에게는 참 불쌍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가 부처이면서 자기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는 모양도 없으니 죽이고 살리고 할 것도 없고 거짓 부처님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불 이름자에 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옛날 한 스님은 하도 사람들이 껍데거 부처님에게 속으니까 삼동에 절에 갔다가 법당의 세 부처님을 부숴 불을 땠습니다. 법당의 부처님에게 절을 하지 말라는, 신심을 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서 나간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면 허물이 없습니다.
마음이 산 부처이니 산 부처를 살리시오. 우리 마음이 들어서 돌맹이 부처님, 쇠부처님을 만들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내지 말고 이 마음을 믿으시오. 참선 하나만 잘하면 어머니, 아버지를 죽인 죄도 다 없어져 버립니다.
올빼미는 다 크면 그 어머니를 잡아 먹나니 공부하는 사람도 필경 이와 같이 부처도 조사도 다 잡아 먹는 사람이라야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다. 그 때가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되는 때이다. 반연을 다 버리고 늘 ꡐ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 이 뭣고’ 하는 참선을 해라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도닦는 법이요, 또 역시 조사 스님들의 도 닦는 법이니라.
나고 죽고 죽고 나고 하는 것을 언제 그칠 것이냐. 얼마나 많은 끝이 없는 세상에 불구덩이 여섯 갈래 나고 죽는 수레바퀴 돌 듯 돌아다니는 그런 세상을 고통받고 돌아다녔던가. 이 몸을 가지고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건질 것인가.
이 몸을 가지고 좋은 때를 맞이했으니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뭣고’ 공부를 하시오. 목숨을 도와 바꾸는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