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면 어느덧 사라지는 달빛처럼 더위가 가시고 찬바람 선뜻한 와중에도 한여름 제 뜻을 못 이룬 매미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음인가.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과 숲길 사이 빼곡한 달개비 풀들도 이마 위에 얹혀진 한 줄기 가을바람으로 한여름의 꿈에서 깨어난다. 양무제가 물었다.
“짐이 즉위한 후로 오늘까지 스님들을 공양하고, 절을 짓고, 경전을 펴내고, 불상을 조성했는데, 이러한 공덕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어째서 공덕이 없습니까?”
“이런 공덕은 중생세계에서는 조그마한 과보라고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생사윤회하는 원인을 만들 뿐입니다. 이는 마치 형태를 따르는 그림자가 있기는 하나 그 그림자는 실체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양무제는 의아스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입니까?”
“본체가 맑고 공적空寂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이런 지혜는 세속적인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양무제는 두 번째 질문을 하였다.
“무엇이 불법佛法의 성스러운 진리 가운데 첫째가는 것입니까?”
달마가 대답했다.
“진리는 확연하여 아무것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양무제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짐을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양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마 대사의 말뜻을 알지 못했고 나중에는 얼굴까지 붉힌 채 말이 없었다.
달마께서는 그 길로 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로 발걸음을 하고 벽을 향해 앉기를 구년이었다. 중생이 만든 꿈을 잊고 실제를 대하고자 한 것이다. 가르침 이외의 따로 전하는 바[敎外別傳]를 두고 동쪽으로 건너오신 것이 520년경의 일이다. 이때를 맞추어 중생들이 조성한 불전佛殿에도 선사禪師가 등장하였으니 돈황 석굴사원의 조사상이 그것이다.
이 조사상은 돈황 285굴에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북주(北周:557~581)시대 봉안된 것이다. 석굴 내 중앙에는 미륵불이 정좌해 있고 그 좌우에 표정과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한곳에 둔 조사가 단정히 가부좌를 하고 있다. 중국에 선법이 들어와 그 수행이 강남을 중심으로 번지던 시기였으니 조사의 수행이 중생에게는 도행이라기보다는 선행이나 복덕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사의 어깨 너머 그려져 있는 좌우의 인물 손 한쪽에는 만발한 꽃이 들려져 있고 다른 한쪽 인물은 이미 시들어 고개를 숙인 풀꽃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인생의 오고감이 그렇게 한 화폭에 들어 있는 것이다. 중생의 한평생이 한 송이 모란보다 더 화려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실은 그것이 한 철을 지나는 꽃보다 더 허망한 꿈이었다는 사실을 중생에게 알리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선법을 상像으로 전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선화禪畵보다 이른 시기부터였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얼마만큼이나 그 향기가 전해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천하제일 황제는 물론이려니와 중생들이 구하고자 한 것은 선행善行으로 인한 복덕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복밭을 일구는 일은 다만 방편이고 꿈일 뿐이라는 사실은 일찍부터 이렇게 전해 내려온 것이다. 중생의 방편이 곧 꿈인지를 아는 순간 진리는 반수반보半手半步지간에 있는 것이라는데 이 밤도 꿈 속의 꿈으로 벗을 삼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