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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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5년 09월 283호
필자가 진행하는 요리 프로나 강의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이들은 나를 꽤나 사교적일 것이라 생각들 한다. 내 외양을 보면 자그마한 체구에 무뚝뚝하지 않은 웃음을 지으니 더 그럴 것이고. 그러나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내성적이라기보다는 비사교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대게 ‘말’인데, 나는 내가 의도한 말을 하면 그 뜻대로 이해해 주는 이가 많지 않다고 열 살 때 단정지어 버렸다.
그렇게(친구가 많지 않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게) 살다가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여학교시절에도, 인문학과 학생일 때도, 어느 회사의 인턴사원일 때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 벌어졌다. 바로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 내 요리를 사진 찍어 주는 이들은 이미 오륙년 동안 내 요리를 보아 온 터라 요리의 때깔만 봐도 요리사의 컨디션을 어림짐작한다. 내 요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은 한 회 분량의 내 요리를 보면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온다. 내가 쓰는 요리 글을 신문에 실어주는 몇몇 기자들은 원고를 읽어보고 나서 “결혼 하신 분이었군요”라든가 “프랑스요리가 전문이시니 와인을 좋아하시겠어요”라며 나를 알게 된다. 요즘에는 개인적인 고민까지도 털어놓는 사연들이 종종 전달되고는 하는데, 바로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꿀 찻잎으로 맛을 낸 요구르트 푸딩
“요리사 누나, 평소 누나의 요리와 스타일을 너무 좋아해요. 제가 대시 할 그녀도 누나의 요리를 워낙 좋아 하구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녀에게 고백하는 날 해줄 수 있는 간단한 메뉴를 좀 가르쳐 줄 수 있으세요?” 울산에 살고 있는 어느 남학생의 편지. 일단 나는 고백하는 그날에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는 그의 포부가 기특하였다. 그래서 적극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났고, 요리에 관심 많고 자상한 남자라면 조금의 도움만으로 고백에 성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어진 나의 제안은 지난달 해인지에 실렸던 감자 크림수프와 간단한 국수요리, 그리고 향기로운 디저트였다. 여기에 덧붙여 간단한 고백의 노하우까지 몇 자 첨부하였는데(본인은 종종 연애 칼럼을 쓰기도 한다. 먹고 마시는 거와 남녀가 만나는 것이 닮지 않았나!), 일단 수프로 시장기를 면하고 국수 요리로 긴장을 푼 다음 디저트를 먹을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백의 ‘고’자字를 입에 올리라 했다. ‘국수’는 때로 ‘긴 인연’을 상징하기도 하니까 특별히 쫄깃하여 잘 끊어지지 않고 가락이 긴 것으로 택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날의 주인공인 디저트는 찻잎을 얹은 푸딩인데, 만드는 법이 간단하다. 시중에 파는 떠먹는 요구르트에 불려둔 젤라틴을 섞고 냉장고에 넣어 차게 굳힌다. 찻잎을 꿀에 절이는 다음 단계가 하이라이트. 평소 즐겨 마시는 차가 있다면 그 잎을 써도 좋겠지만 여린 녹차 잎이나 청차 잎을 애써 구한 다음 우려내고, 물에 불어 야들해진 잎만 취한다. 물기를 쫙 뺀 다음 잘게 다진 복숭아와 꿀에 섞어 차갑게 절이는 것. 젤라틴이 굳으려면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으므로 본 메뉴는 하루 전에 준비하면 좋다. 부드럽게 굳어진 요구르트는 그 맛이 새콤하고 가볍기 때문에 식후에 내놓아도 부담스럽지 않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에 비해 그 칼로리도 낮으니 더 반가운 메뉴. 여기에 고명으로 올리는 ‘꿀에 절인 찻잎’은 달지 않은 푸딩에 향기를 입힌다. 본 지 촬영을 위해 야외로 가지고 나갔더니 벌이 다가왔을 정도로 예쁜 단향이다. 단 맛 가운데 섞여진 찻잎 덕에 마냥 달지만은 않고, 쌉쌀한 기운이 적당한 밸런스를 맞춰주는 요리. 이렇게 꽃 같은 요리를 나눠 먹으면서 진심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면 ‘그녀’가 고백을 외면하는 일 따위 없을 것이라 용기를 주었다. 성공하면 다시 편지하겠다 했으니 이제 나는 기다려볼 수밖에.
이 밖에도 나의 ‘요리’를 통해 내게 관심을 갖게 되고, 내 요리의 ‘오리지널리티’를 통해 내 진심을 알아주게 된 많은 이들은 날마다 사연을 보낸다. 며칠 전에는 원룸에서 자취를 하는 어린 학생이 집에서 취사하는 것이 귀찮아서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하다가, 내 음식사진을 보고 집에 가스를 연결했다고 전했다. 황량했던 그녀의 좁은 부엌에 불이 지펴지고 달궈진 팬에 음식이 생긴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훈훈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만든 편지. 집에서 멀리, 가족과 떨어져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 텐데 작은 부엌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그녀의 한 뼘짜리 이부자리에 위로를 주소서 빌어주었다.
이렇게 나는, ‘말’보다는 ‘요리’로 세상과 소통한다. 십오 킬로나 나가는 장바구니를 이고 지고, 발이 퉁퉁 붓도록 몇 시간을 음식에 매달려 촬영하고, 몇 십 몇 백 명이 먹을 파티 음식을 만든다며 나는 정작 굶고, 술술 써지지 않아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진을 뽑는 음식 원고를 붙들고서도 행복해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 거다. ‘말’이 판을 치는 세상에 ‘말’이 못하는 많은 것들을 내 ‘요리’가 가능케 해 주었으니까. 열 마디 말보다 정성으로 만든 한 술 밥이 더 시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