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대둔사는 서산종문西山宗門의 종찰宗刹이다. 불고가 조선 초기 선輝, 교敎 양 종으로 강제 통합 당하고 임진 왜란 때 승군 최고지휘자였던 서산대사 휴정이 선교 양종의 도총섭都據緣이 되면서부터는 사실상 서산종西山宗이라 할 수 있는 유일 종단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수제자연 사명 대사가 지은 서산 대사의 행장을 보면, 선사는 입적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이제 내가 입적한 뒤에 의발을 호남의 해남 두륜산 대둔사에 전하여 제삿날에 재를 받게 하라, 두륜산은 모퉁이에 치우쳐 있고 비록 명산은 아니지만 나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여 소중히 한 것이다. 첫째는 북쪽으로 월출산이 있어 하늘을 받쳐 주고 남쪽으로는 달마산이 있어 지축地輪을 맺어 주니 산과 바다가 둘러싸 보호하는데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여 만세에 뻗어나갈 곳이요. 둘째는 나의 공적이 비록 일컬을 만한 것이 못되나 성주께서 깊이 은혜를 베푸셨으니 어찌 공적을 기린 소문으로 어리석고 아둔한 깨우침이 없겠는가. 마지막으로는 나의 출가 초기 지리산에서 서로 법을 들은 제자들이 모두 남방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종통宗統에 돌아가야 할 바이니라. 돌이켜 보면 소중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 유촉을 좇아 의발과 주상께서 하사한 대선사 교지를 두륜산으로 옮겨 보관하고 입적한 날에 받들어 재를 올리도록 하는데 제자로 하여금 이일을 주관하게 하라.ꡓ
이 유촉을 받은 제자들은 서산대사 열반 뒤 삼년상을 지낸 다음 저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을 챙겨 두륜산 대둔사로 내려오게 된다. 이렇게 서산대사의 유물이 보장되고 진영이 봉안되며 서산종문 종찰의 면모를 갖추어가게 되자 문도 가운데 법손이 번창하여 연담 運灌 유일有一(1720~1799), 초의 의순意洵(1786-1866) 등 십삼대종사와 완호 윤우尹做(1758~1826) 범해梵海 각안覺岸(1820-1896) 등 십삼대 강사가 계속 배출되어 서산종문 종찰의 지위를 굳건히 다져 놓는다. 정조 13년(1789)에는 표충사를 건립하여 대사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대사의 유물관에는 당시 전라우수사로 내려왔던 위당 신관호가 헌종 12년(1846) 2월 9일에 쓴 표충사보장록表忠洞寶藏錄에서 6곡 병풍이 있다. 신관호는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인데 스승이 당시 제주에 위리 안치되어 오래도록 풀려나지 못하자 스승을 돌보기 위해 스승의 배소 부근의 관직을 자원하였던 듯 헌종9년(1843)에 전라 우수사가 되어 해남으로 내려온다. 당시 해남은 제주로 가는 배가 떠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벼슬자리를 마련해 준 것은 당시 정승의 지위에 오른 추사의 가까운 벗 이재 권돈인이었을 것이다. 또한 추사와 이재의 지기인 초의 선사의 도움도 있었으리라. 아마 추사가 회갑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될 것을 대비하여 이런 배려를 한 모양이다. 신관호는 해남 우수영에 부임한 다음 제주도에서 추사의 시중을 들던 소치小癡 허유許維(1809~1892)를 불러내어 초의 선사와 의논하고 조출한 불사를 일으키니 이것이 대광명전大光明殿인 것이다. 스승의 방면을 기원하며 회갑을 축하하고 장수를 빌기 위해 이런 불사를 계획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내용은 초의 대사가 지은 해남 두륜산 대둔사 비로전 상량문 등에서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신위당은 스승 추사가 회갑 때까지 풀려나기를 기원했으나 가망이 없자 정성을 다해 ꡐ표충사보장록ꡑ을 써서 대둔사에 기증함으로써 그 복덕으로 스승의 방면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던 것 같다. 지난 일이지만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수 없다.
필자는 지난 사월 초 대둔사에 들렀을 때 일지암一技魔을 찾아 두 가지 감명을 받았다. 하나는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두륜산 중턱의 일지암 초당 앞 활짝 핀 자색 매화를 잊을 수 없다. 사군자에 속하는 그 절개 굳은 매화는 주연(여연 스님) 없이 나를 반겼고, 초의 스님의 숨결이 배어 있을 듯 한 그 초당에 들렸다가 차 한 잔 나누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천행으로 반겨 준 보살님이 있어 반가웠다. 여연 스님이 출타하여 잠시 집을 지키기 위해 광주에서 오신 명은당 보살님의 안내로 귀한 치를 음미하며 한묵輪墨에 심취한 다실에서 지필묵이 있기에 매화에 얽힌 글 한 수를 휘호하고 매화 앞에서 찍은 사진은 여운으로 남는다.
일지암은 1960년대 말 한국다인협회 후원으로 초의 선사 당대의 고증을 들어 복원하였다. 현액은 전주 강암 송성용 옹의 휘호이고 주련은 초의 선사가 지은 동다송東茶領 첫머리에 나오는 시를 제주 소암 현중화玄中和 옹이 활달한 행초서로 쓴 작품으로 초당과 함께 그 정취가 잘 어울린다.
하늘이 좋은 나무를 귤의 덕과 함께 하니
받은 명을 어기지 않고 남국에 피었다
빽빽한 잎파리 눈발을 뚫고 겨울 내내 푸르고
하얀 꽃은 서리에 씻겨 가을 꽃잎을 터트렸네
고야산의 신선처럼 고운 피부는 깨끗하고
염부단금처럼 향기로운 마음 맺혔네
항해가 푸른 옥 같은 가지를 맑게 씻었고
아침 안개에 젖은 잎은 비취새의 혀와 같구나
하늘 신선 땅의 귀신이 모두 아끼고 사랑했나니
이 물건 됨됨이가 참으로 기이함을 알겠구나
后皇嘉樹配橋德
受命不遭生南國
密葉門嚴貴冬靑
素花灌霜發秋榮
貼射仙子紛肌潔
閻浮檀金芳心結
沆瀣潄淸碧玉條
朝霞含潤翠傘舌
天仙人鬼傷愛重
知爾鳥物誠奇總
이 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산 내 암자인 불미륵암 암벽에 새겨진 문양이 있는데 판독되지 않고 있어 숙제로 남겨 두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