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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을 통해 깨달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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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김점화 / 참선수행 2005년 09월 283호
기억 속에만 있던 낯설은 고무신이 수련회의 준비물에 있어 사러갔다.
신발집에는 알록달록 요모조모의 신발들이 길거리에까지 나와 진열되어 있는데 고무신을 찾으니 우선 점원이 위 아래 나의 형색부터 살피고는 구석 어딘가에서 고무신을 찾아와 불쑥 내놓는다. 한번도 다른 신발처럼 한짝 나란히 진열되어 본적도 없고, 비닐에 쌓인 채 구석에 쌓여져 있어도 아무런 불평이 없다. 나 또한 신발을 사서 들고 오면서 이제는 현실로서 멀어져 감을 고무신을 통해 느끼자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수련회에 와서 승복을 입고 고무신도 신었다. 그냥 신었다. 기억속에서의 고무신조차도 찾으려 들지 않았다.
근데 수련회 이틀째 새벽 숲길 산책을 하다가 자그마한 돌 하나가 갑자기 고무신 밑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고무신의 위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발은 발을 보호해야 된다는 목적 아래 오히려 발은 무참하게 내팽개쳐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화도 건강의 기능을 첨가시켜 신발 밑은 자꾸만 두꺼워져 간다. 그러니 발은 신발 때문에 오히려 제 기능을 잃은 채 무기력하게 신발 속에 갇혀 답답해 하고 있기만 할 뿐이다.
고무신과 발이 고부갈등으로 힘들어 하던 사이가 딸과 모녀가 된듯 기뻐하는 바람에 숲길 내내 고무신을 찾아 들어갔다.
첫째, 고무신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고무신은 물체와 부딪히며 나는 마찰음 외에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도 신발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당황하게 하지 않는다. 구두소리는 제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 때문에 때론 교양에서 벗어나는 사람 취급 받게 하는 것도 고무신에서는 찾아 볼 수 가 없다.
둘째, 고무신은 넉넉했다.
좁은 자신과 크기가 맞지 않는 발을 내밀어도 제 몸을 한껏 숙여 큰발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작은 발은 제 몸을 오그리면서도 발을 탓하지 않는 겸손함이 있다.
셋째, 발의 주체성을 빼앗지 않는다.
발과 밀접한 공간에 있어 함께 발 밑을 공유할 수 있으니 오해가 되는 일은 없다. 앞은 낮고 뒷굽은 높이 올라 있어 서로 알지 못하고 때론 전쟁이 있거나 병을 던져 놓기도 하는데 고무신은 항상 같이 하니까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내리막 길을 걸을 땐 신발에 브레이크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도 발가락에 힘을 주게 하여 밀리지 않게 알려주고 발 밑의 물체도 조그만 고무신이 감지하고 거의 발이 알아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를 하면서 여느 신발처럼 발의 주체성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넷째, 고무신은 성을 내지 않는다.
자신을 좀 구겨 신었다 해서 성을 내거나 자신을 구기며 탓을 하지 않는다. 구김을 당하기도 잘하고 당하고도 오래도록 잘도 견뎌준다. 발을 들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제 몸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재치 또한 만만찮다.
다섯째, 고무신은 쉽게 변심하지 않는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와도 눈길을 걸어도 물에 풍덩 빠뜨려 놓아도 고무신은 변하지 않는다. 물을 맞아 가죽이 몹쓸 모습으로 바뀌어 갈 때도 고무신은 의연하게 자신의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다른 생으로 수선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발 밑에서 초연히 있다.
고무신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꼬마들의 물장구 놀이 때는 물을 퍼내는 바가지로, 고기들의 어항으로도, 급기야는 식용도구(물을 마시는) 로 마다 않는다.
욕실, 바깥 실내 어느 곳에서도 조화롭지 않은 데가 없으니 이보다 더 다양한 신발이 어디 있으랴.
이런 고무신과 함께 산책로를 걸으니 발이 신이 났다. 한적한 오솔길을 걸을 때도 차가운 시멘트 길에서도 돌이 박혀 있는 흙길에도 발이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고무신에 감사해서인가? 신이 나서 발걸음이 씩씩해진다. 순간 부끄러움이 가슴 밑에서부터 밀려오며 고무신만큼만 살았어도….
처음 수련회를 올 때 고무신도 불교도 나와 친숙하지 않았다. 고무신은 아예 나의 인생에 등장할 일이 없었다. 고무신이 발의 감각이 살아 쓸 수 있도록 발에게 배려를 해 준 만큼 나에게 강하게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었다.
무엇보다 분리를 시켜 놓았던 불교와 깊은 가르침은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에서 찾고 행해야 됨을 알게 되어 깊이 행할 수 있도록 다짐을 해 본다.
타인의 높은 쪽에서 자리잡고 싶어 자꾸 위의 아집을 가지려 했는데 고무신의 말 없는 진리를 무엇보다 닮고 깨닫고 행해야 됨을 수련회를 통해 강하게 화두가 되어 간다.
지혜의 샘은 타인의 주린 배도 채워주지만 퍼 주면서 스스로 맑아지는 정제 역할을 하는데 고무신의 지혜를 가득 채우고 실행하리라.
후에 내 아들이 커서 아이를 낳으면 자연의 기운을 맘껏 느낄 수 있게 흰 고무신을 사 들고 가서 눈치받는 시어머니가 될 정도로 고무신의 진리를 전파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