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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이 곧 수행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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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진여정 / 8차 기초수행 2005년 09월 283호
해인사! 그곳은 처음으로 순례자가 되어 길을 찾아가는 저에게 도로표지판에 쓰인 이름만 봐도 가슴 설레게 하는, 천이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낙락장송과 수행 가풍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대한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 성지였습니다.

‘왜 나는 가까운 절을 두고 이렇게 멀고 먼 해인사까지 왔을까?’
입재식을 하면서부터 회향을 할 때가지 제가 챙긴 화두였습니다. 해인사 수련회 참가 결정을 내린 것이 작년 이맘때의 일이라 그때의 마음을 온전히 기억해 낼 수 없었고 단순히 산사체험 차원이라면 주위 사람들 말대로 가까운 절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1년 동안이나 불교방송을 통해 들어 왔던 새벽예불 의식에 대한 신비함도 다른 이들보다 덜 했으며 월간 <해인>지와 스님들이 쓴 단행본을 통해 해인사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기초수행자의 입장에서- 매순간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지를 끝없이 질문해야 했습니다.

늘 생활이 꿈속 같다고 느낀 저에게 해인사에서의 4박 5일은 묵언과 차수, 안행으로 바깥으로만 향하던 마음을 자신의 내면으로 되돌려 묵묵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깨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접해 보는 ‘발우공양’은 그 번거로움과 절차, 그리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성급함으로 인해 계속된 그 시간이 다소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절차는 인내심을 배우게 했고, 단무지로 그릇에 남은 밥풀과 음식 찌꺼기를 씻고 그 물을 마시는 의식은 분별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특히 음식을 먹기 전에 하는 ‘오관상념게五觀想念偈’는 그 동안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에 대한 답조차 구하지 못했던 제게 확실한 삶의 목표를 심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육근六根을 절제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뻤던 것은 눈만 뜨면 가까이서 ‘스님’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질문을 통해 수행점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대부분의 절 방문이 구경의 차원에만 머문 저의 잘못도 있겠지만 어느 절을 가나 함께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스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불교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만난 해인사 스님들과의 잦은 부딪힘은 늘 발길을 되돌려야만 했던 그 동안의 갈증을 풀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불심이라는 씨앗을 심으려는 기초수행자에 대한 헌신과 명쾌한 법문답을 해 주신 일감 스님, 깨달음의 조건을 밥짓는 조건에 비유하여 생활의 모든 것이 수행의 재료가 됨을 보이시고 80여 명의 수련생들에게 달마도를 직접 그려 주신 진성 스님의 그 정성은 말로는 표현 안 될 이타행이었습니다. 또한 진성 스님의 육성을 통해 들은 부처님의 비유 설법 중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비유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충격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다른 이들보다 일찍 하게 되었고 평소에도 거의 매일 하는 제게 독화살을 맞고 치료를 지연시키는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정신을 집중하지 말고 지금 자신에게 닥친 삶의 독부터 해독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행의 목표를 보리심 실천과 무상체득에 두라는 법문을 하신 지엄 스님의 염화미소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되었습니다.

또한 늘 작심삼일에 그쳐야만 했던 저의 수행을 원만하게 회향할 수 있도록 한 도반님들과의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앉아 있기도 어려운 참선시간, 힘겨워하는 도반들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았으며 다소 지친 도반님들의 방일함이 드러날 때도 내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보다는 그것이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임을 되새겼습니다. 도반 부처께 절을 올릴 때의 진지한 손놀림은 굳이 마음 속 원력을 듣지 않아도 다 ‘같은 마음’임을 입증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예불을 하러 들어갈 때와 나왔을 때 느꼈던 빛과 어둠의 교차. 깨달음도 그렇게 자신 속 어둠을 걷고 밝음을 드러내는 수행을 통해 서서히 체득할 수 있음을 알아 저도 그렇게 이웃들이 밝음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불자가 되기를 서원해 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