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 사이에 있는 동, 서사간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경판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목판은 ‘사간판寺刊板’이라 불린다. 이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사찰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경판들은 실물로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기 인쇄문화의 귀중한 자료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엄경판의 끝에 수창 4년, 즉 고려 숙종 3년(1098)에 각판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어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에 만들어진 귀중한 문화재임을 알게 해준다.
이 목판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있는데,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다. 이 귀중한 사간판이 인경된 책자가 남아 있지 않다. 만약에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져 경판에 손상이 갔을 때 복원할 만한 자료가 없는 것이다. 이에 해인사에서 역사적인 인경사업을 실시한다.
인경印經은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가르침을 종이에 인쇄해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처음에는 경전의 내용을 배우기 위해 스님들이 직접 손으로 필사하는 사경을 통해 책을 만들었다. 그 후 목판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인경작업은 활성화되었는데, 이런 목판인쇄술은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에서 발달되었으며 서양에는 없는 기술이다.
인경에는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이 쓰인다.
우선 한지는 우리 민족의 상처럼 강인하고 부드러우며 깨끗할 뿐만 아니라 정감이 있는 닥나무 껍질로서 쉽게 변색되지 않으며 잘 찢어지지 않아 종이의 질이나 보존 능력 면에서 탁월하다.
예부터 먹의 빛은 천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먹의 긴 생명을 이름한 것으로 먹 중에서 가장 선명한 광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단연 송연묵을 꼽는다. 송연묵松煙墨은 소나무를 태워서 그 그을음으로 만든 먹으로 묵색이 맑고 깊이가 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날수록 청록색을 띠어 청묵靑墨이라고도 한다.
마력은 출가 때 자른 여행자님의 머리카락과 뜻있는 재가불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 겹겹이 뭉쳐서 만든 것으로 경판에 한지를 얹고, 그 위를 골고루 문지를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그 외 기타 도구로는 솔, 먹판, 받침대가 쓰이고 있다.
제책방법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나라마다 그 방법이 다른데 한국은 능화판을 이용하여 배접을 통한 한국 전통의 제책법을 사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순서로는 경판을 내리고, 종이를 재단해 마련해 놓은 다음 사용할 경판은 소금물로 깨끗이 닦아낸다. 그 후 인경작업을 통해 찍어낸 인경본 교정을 보고 1차 제본(가제본)을 하고, 2차 교정후 제책에 들어 책이 완성된다.
이와 같이 인경은 하나의 종합적인 출판문화 예술이다. 사라져가는 전통적 방식으로 인경과 제책문화를 이어 경전을 편찬하는 일은 천년 전 인쇄문화의 꽃을 현대에 활짝 피우는 종합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해인사의 이번 사간판 인경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