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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누구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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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05년 09월 283호
상암수기권두上庵竪起拳頭하니
조주좌안반근趙州左眼半斤이요
하암수기권두下庵竪起拳頭하니
조주우안반근趙州右眼半斤이로다

윗절에서 주먹을 내미니
조주의 왼쪽눈 반근이요
아랫절에서 주먹을 세우니
조주의 오른쪽 눈 반근이로다.

조주 선사께서 해제 때 만행을 하다가 어떤 암자에서 문을 두드리며 말하였습니다.
“누구 있는가? 누구 있는가?”
암주가 문을 열면서 즉시 주먹을 내미니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물이 얕아서 배를 댈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바로 그 암자를 떠났습니다.
또 다른 암자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 있는가? 누구 있는가?”
이 암주도 역시 주먹을 내밀거늘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잡을 줄도 알고 놓을 줄도 알며, 죽일 줄도 알고 살릴 줄도 아는구나.”
그리고는 그 암주에게 절을 한 후 선사는 즉시 그 암자를 떠났습니다.

조주 선사의 해제 후 만행은 이처럼 늘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선지식을 찾았고
그리고 언제나 만나는 납자들의 공부안목을 가늠해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 회상에서 결제를 마친 납자들에게는 좌하유坐夏由를 주고서 언제나 당부말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안거증이라고 부르지만 당송 때는 안거증을 좌하유坐夏由라고 불렀습니다.

조주 선사에게 길을 나서는 젊은 납자가 물었습니다.
“만약에 만리에 여관 하나 없을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그러자 한 마디로 잘라서 말했습니다.
“선원에서 잔다.”

비슷한 이야기가 홍주洪州 운거산雲居山 도간道簡 선사에게도 전해옵니다.
어떤 납자가 도간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외로운 봉우리에 홀로 잘 때가 어떠합니까?”
그러자 선사가 말했습니다.
“한가로운 일곱 칸 승당에서 자지 않고 누가 그대더러 외딴 봉우리에서 혼자 자라고 하더냐?”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있던지 늘 큰방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자세로
해제도 결제처럼 살아라는 선지식들의 고구 정녕한 마음이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나옵니다.

제불조사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오직 납자들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납자들이 한결같이 신발을 닳게 하고 부모와 은사마저 버리고서 행각을 할 때는 모름지기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서 발우를 올려놓고 지팡이를 고정시켜 벽에 기대놓고서 해제와 결제를 분별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무치게 공부한다면 이루지 못할 공부가 없을 것입니다.
설사 금생에 마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생에는 인간의 몸을 잃지 않고
이 문중에 들어와서 공부의 힘을 덜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생의 서원을 저버리지 말고 스승과 부모와 시방시주들의 은혜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스스로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고 또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쓸데없이 고을과 고을 사이로 쏘다니거나 여기에서 여름 한 철을 지내고 저기에서 겨울 한 철을 묵으면서
산자수명한 곳과 공양물이 많은 곳만 찾아다니면서 그 도량은 참으로 지내기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알고 보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남의 쌀 한 알을 얻으려다가 나의 반년의 양식을 잃게 될 것이니
이런 행각과 이런 안거가 공부인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홀연히 어느 날 죽음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무엇을 가지고 대적하려고 합니까?
마치 끓는 물에 들어간 게처럼 손발만 허우적거리게 될 것입니다.

공연히 헛짓거리로 큰소리 칠 것은 없습니다.
절대로 어영부영하면서 등한히 세월을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다시 회복하기 어려우니 이는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범부들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문이 아침마다 저녁마다
신발을 수시로 바꾸고 신발 끈을 동여매면서 바삐 길을 떠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스스로 경책하고 또 경책해야 할 일입니다. 가사 옷을 입고 있으면서
생사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라고
일찍이 동산 선사께서는 제방의 납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 모두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주 선사께서 두 암주에게 ‘있느냐?’고 물었고 암주 모두는 주먹을 내밀었습니다.
‘암주가 있느냐’는 말은 문안의 인사말이 아니라 본래모습인 주인공을 상실하지 않고
자유자재한 경지에서 살고 있는가 하고 묻는 말입니다.
두 암주가 주먹을 드러낸 것은 불법의 경지에 대한 자기의 안목을 내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암주가 똑같이 주먹을 쥔 손을 내밀었는데,
조주 선사께서는 한쪽은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고 해서 해제납자들이 두 암주의 견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참선수행의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두 암주가 우열 없이 동등하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참선수행의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화두에 대하여 꼭 들어맞는 올바른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조주의 자유자재한 법문을 체득하여 지혜의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번뇌 망념을 떨쳐버리는 대자유인의 경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금일 해제대중은 한 철 동안 지은 살림살이로 이 문답에 대하여 분명한 한마디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한 철 살림살이로 제대로 된 한마디를 할 수 없는 납자라면
만행길에 이 화두도 함께 걸망 속에 짊어지고서 같이 다녀야 할 것입니다.

불조명맥佛祖命脈이요
열성겸추列聖鉗鎚로다
환두이성換斗移星이요
경천위지經天緯地로다

불조의 명맥이요
많은 선지식들의 쇠망치질이로다
북두가 옮겨가고 별자리마저 바뀌니
하늘을 거머쥐고 땅을 주름잡는구나.□

불기2549(2005)년 하안거 해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