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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信과 성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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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영덕 2005년 09월 283호

바람결이 쓸쓸합니다. 처서를 지난 이맘때쯤이면 G선 같은 어떤 울림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데. ‘새 마음 새 뜻…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애시 당초 헌 마음 헌 뜻이 있으랴만 더위 탓으로 돌리던 게으름에 한 획을 긋고 서서히 긴장이 돌기 시작합니다. 새벽과 저녁 모든 불을 끄고 비에 씻겨 보얀 땅에 큰大자로 누워봅니다. 태초의 어둠속에서 만나고 싶은 별들을 방문하며 이리저리 노닐다가 발 끝 돌 체이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지요. 학인들도 나의 대책 없는 천진에 놀라 뒤에서 소곤대며 웃겠지만 뭐 마음이 쓰이진 않습니다. 나라님도 제 없는 데선 욕도 먹으며 사는 게 정겨운 세상살이려니 하고 말입니다. 돌 틈마다 몸을 감추고 사는 중생들의 생활공간, 여린 음들이 치열하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저녁, 자연 빛 어둠에 젖어드는 일이란 평안과 성숙과 어머니를 떠오르게 합니다. 세상의 한 면인 밤이 없다면 낮이 그토록 눈부실 수 있을까. 하늘이 없다면 땅이, 여자가 없다면 남자가, 애증이 없다면 사랑이, 중생이 없다면 부처가, 번뇌가 없다면 보리가… 서로의 한 면이 되어 보완하는 절대 순환의 이치를 생각하다 얘기를 좀 바꾸어 봅니다. 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나는 그믐달과 같아서 본래의 순수하고 밝은 지혜 숨어 있으니 해도 하는 것이 없고 닦아도 닦는 것이 없고 끊어도 끊는 것이 없고 그 끊는다는 것조차 끊어져야 한다는데 늘 어리석어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다 낮게 엎드리고 맙니다. 긴 들숨. 공功으로 이룰 수도 행行으로 터득할 수도 없는 자리, 깨달음을 이루신 최고의 무위진인께 엎드려 신信을 바치리니, 곰삭은 정성 성誠자를 꺼내들다가 새 중 시절 품고 다니던 좌우명이 생각났습니다. ‘지성무식至誠無息 불식즉구不息則久 구즉징久則徵 징즉유원徵則悠遠 유원즉박후悠遠則博厚 박후즉고명博厚則高明’이라. 중용中庸의 한 구절인데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으니 오래도록 하여 변함이 없음이라. 오래 한다면 공부의 경지를 엿볼 수 있고 더욱 오래도록 사유한다면 박학과 돈독함을 이룰 수 있으리니 그때가 되면 감추어도 저절로 빛이 나며 고명高明해지는 것이다. 정성과 꾸준한 노력을 격려하는 그 글과 함께 눈병 나게, 허리 아프게 책을 보던 참으로 신실하고 정성스럽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미루어 놓고 이런저런 핑계만 늘어갑니다. 좋은 믿음은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바꾸어 주는 것을 믿기에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하여 《마하연론摩訶衍論》에서 신심信心의 십종 공덕을 찾아 갈무리해 봅니다. 믿음이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절로 밝고 맑고 깨끗해지는 징澄. 순수하고 견고한 마음에는 망설임과 방황이 없으니 결정決定. 확고한 믿음이 온갖 근심과 번민을 제거해 주어 기쁘고 즐겁게 하니 환희歡喜. 용기와 확신 속에서 싫증 없이 목표를 성취하는 무염無厭. 시기 질투하지 않고 훌륭한 행동이나 좋은 일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좋아하니 수희隨喜. 제 잘난 멋에 빠져 살지 않고 덕 있는 사람을 배우고자 하니 존중尊重. 많은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가르침을 잘 실천하도록 하니 수순隨順. 남의 좋은 행위나 불보살의 덕을 지극한 마음으로 기리는 찬탄讚歎. 내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 나의 목표에 오로지 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하니 불괴不壞. 남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고자 자비심을 내니 애락愛樂. 이 열 가지를 발원하며 올 가을 정진여일하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