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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이 남긴것 - 환경 가치의 반영, 욕망은 비움으로써 채워진다는 이치에 눈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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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5년 03월 277호
지난 2월 3일 늦은 밤, 지율 스님이 마침내 단식정진을 회향했다. 지율 스님과 정부는 3개월 동안 환경영향 공동 재조사,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지율 스님은 단식을 푼다는 3개 항에 합의함으로써 지율 스님은 100일 동안의 단식을 해제했습니다. 단식을 시작한 지 100일 만이다. 여러 감정이 모습들이 교차한다.
우선 안도할 수 있었다. 지율 스님이 일단 살았다는 데 대한 반가움이었다.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은 지율 스님이 만약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특히 스님이 소속된 종단으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흔히 접하는 수행자의 열반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단도 이렇다 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지율 스님의 요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지율 스님의 뜻을 이해는 하면서도 스스로의 의지로 삼기에는 종단은 지극히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체질화해온 탓이다.
안도하기는 환경운동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율 스님의 단식정진 취지는 환경운동 진영이 풀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그 중심은 지율 스님이었고, 지율 스님과 환경 진영은 서로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지율 스님과 환경 진영의 천성산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를 따진다면, 지율 스님은 초지일관이라 할 수 있겠고, 환경 진영은 어느 시점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서로 냉정히 따져볼 사안이 여럿 있다. 함께 해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도 따로따로 했던 점에서는 양측 모두 반성할 점이 많이 있다고 본다.
종교인들도 안도하기는 다르지 않았다. 어느 집단보다 도덕적 부채의식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늦기는 했으나 단식 90일 즈음에 참회단식에 나선 것은 그나마 지율 스님의 문제를 푸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특히 지율 스님과 천성산의 문제를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던 것이 눈에 띈다. 바로 ‘성찰과 참회’라는 것을 표방했다. 나의 잘못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나의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아 아쉬웠다. 참회는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문제가 왜 발생했는가를 따져봐야 하는데, 이번에는 이런 중요한 과정이 생략됐다. 물론 당시의 상황이, 지율 스님이 목숨이 언제 다할지 모를 정도로 급박했기 때문에 종교인들의 참회단식이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목숨이라는 것을 앞에 둔 도덕적 부채의식을 덜기 위한 작용이었는지 종교인들의 참회단식은 구심점이 되기에 적절했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최후의 양심으로서의 종교인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같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단식을 마쳤음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천성산의 환경영향 재조사가 남아 있다. 또 환경운동의 방법론과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의 모색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환경영향 재조사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승부를 가르는 장처럼 인식해서는 지율 스님의 100일에 이르는 단식과 국책사업의 중지라는 것에서 얻어야 할 교훈을 팽개치는 일이다. 단식 회향 다음 날 발표된 5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지율 스님 살리기 범국민회의’의 성명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환경영향 재조사의 조사 항목과 조사 방법, 조사 결과의 반영, 조사위원회의 운영 등에 대한 새로운 문제가 예상됩니다. 따라서 더욱 성숙한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것은 바로 환경과 생명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문제는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범국민회의는 국책사업에 대한 재검토도 주문했다. “지금까지의 국책사업은 사업이 확정되기 전에 충분한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으며, 사업 타당성 검토 또한 경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했습니다. 환경과 생명, 국민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러다보니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발상과 정책 전환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범국민회의는 “무분별한 개발을 자행하는 것은 정부와 개발업자만이 아닙니다”라며 국민들에게도 당부했다. “편리와 속도에 중독된 우리들의 욕망이 개발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욕망은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국토를 가꾸고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우리들의 삶의 태도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새롭고 바람직한 변화로 곧장 나아가지 않는 것 같다. 조금 더 돌아가야 하는 것 같다. 지율 스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의 비판이 거세다. 무기명의 일방적인 의견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으나, 지율 스님과 천성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율 스님과 모두 같을 수 없고, 그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들의 주장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감추고 싶었던 것들도 보게 된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지율 스님과 천성산 문제의 본질에서 상당히 벗어난 것이 많다.
예로, 단식 100일이 사실이냐, 인간으로서 불가능하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율 스님 말대로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외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굳이 답변하자면, 지율 스님은 수행자의 양심을 걸었다는 것이다. 수행자의 양심은 죽음보다 무겁고 소중한 것이다. 공사 중단으로 인한 국책 사업의 경제적 손실이 적지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는 지율 스님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제공자인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많은 국책 사업이 환경 파괴라는 점 때문에 반대에 부딪혔다. 새만금 간척 사업,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경인운하 등이 그것이다. 이런 데서 하나의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다. 환경의 가치를 무시하고서는 사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며, 훼손된 환경을 복원하는 데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지율 스님 문제를 겪으며, 정부를 포함해서 우리는 변화의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한 상처만 크게 안게 될 것이다. 그 방향은 개발 일방주의를 종료하고 환경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며, 욕망은 비움으로써 채워진다는 당연한 이치에 눈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