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으로 향한다. 각화사는 스님들이 주지로 가고 싶어하는 도량은 아니다. 재정사정도 어렵지만 시비가 끊이지 않는 쉽지 않은 도량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다. 암자는 암자 나름대로 선원은 선원대로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선방에서만 있던 노현 스님이 각화사 주지로 간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아마 한 철도 못 나고 나올 것’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노현 스님이 주지로 가자 고질적인 시비도 끊어지고 누구보다 일처리를 잘해내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해결돼가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욕심없이 깨끗하게 해내면 당당하게 내 목소리 내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노현 스님은 말한다.
매주 2번 선원에서 신청하는 금액도 스스로 대폭 줄었다. 예전에는 매주 2백만원 정도의 신청이 들어왔다. 각화사 사정을 볼 때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만이 많았는데 요즘은 10만원 미만으로 떨어졌음에도 말이 없다.
비결은 있는 밑천을 다 보여주는 일. 속이 훤하게 보이는 데는 별 도리가 없다.
부식 준비를 위해 장 보는 일은 없다. 대중공양으로 충당이 된다.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로 올 때 필요한 것을 사온다. 또한 김장철이 되면 고추를 보내오는 이가 생기고 배추가 남았다고 가져오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공양하거나 시주하는 이는 없어도 이렇게 해결이 된다.
각화사는 기운이 센 도량이다. 수행터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깔아지지 않으며 몇 시간만 자도 몸이 개운합니다. 나는 좀 무른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곳이 맞아요.”
전국의 웬만한 선방은 다 가본 터라 스님은 도량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떤 곳은 정신이 성성해지는가 하면 어떤 곳은 해이해지는 곳도 있단다. 스님 경험으로는 해인사나 각화사는 늘 깨어 있게 하고, 법주사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곳이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수행터가 있는데 노현 스님은 각화사나 해인사처럼 정신을 맑혀주는 터를 좋아한다.
스님은 각화사 안에서도 대웅전이 가장 좋단다. 선원은 대웅전에 붙어 있다. 그러나 스님이 거처하는 곳 밑으로는 큰 수맥이 있다면서도 자신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는단다.
각화사 터는 태백선원의 결제기간이 다른 선원보다 길어질 수 있는 조건 중의 하나이다.
지금 결제중인 수좌들은 지난 여름 안거 때 시작해 해제 없이 계속 정진중으로 오는 정월 보름에 해제를 맞는다. 결제기간이 9개월인 것이다. 바로 직전 수좌들의 결제기간은 15개월이었다. 15개월의 결제를 끝낸 수좌들이 주지로 추대한 이가 바로 노현 스님이다.
정진시간도 15시간, 수면은 3시간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결제를 시작한 26명 가운데 4명만이 탈락했을 뿐이란다.
스님들이 정진하는 모습을 보며 노현 스님은 주지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초기에 스님은 무척 미숙했다.
취임을 축하한다며 절로 찾아온 군수에게 차대접을 할 때는 입이 마르고 손이 덜덜덜 떨리더라나. 대중공양 온 보살님들에게 주지로서 한마디 법문을 할 때는, 몇 마디 하고 말문이 막혀 주지가 처음이라 이렇게 떨린다고 털어놔 박수세례를 받은 일도 있다. 글과 말을 놓고 산 세월이 워낙 길었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는 스님이 설마 그런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미숙함이 없다. 말이 간단하고 명료하여 군더더기가 없을 뿐 겸손인 듯 하다.
“책도 많이 읽고 아는 것도 많아야 한 마디를 수백 마디로 부풀려 말할 텐데 모르니까 짧아질 수밖에.”
이제는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사판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스님은 말한다. 신도들이 오면 그저 들어주거나 맞장구라도 쳐주어야 하는데 입바른 소리만 하다보니 얼마 안 되는 기존의 신도까지 떨어져 나가더란다.
스님은 얼핏 보면 물러보이고 순한 첫인상과는 달리 대화할수록 수좌 스님들 특유의 강한 고집과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각화사에 와서 신도는 얻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1년이 채 안 된 사이에 스님은 굵직한 미해결 과제를 풀었다.
각화사는 근처에 있는 청량사나 부석사, 축서사 등과 같이 천년고찰이다. 그러나 다른 사찰에서는 전통사찰보수비를 지원받고 있음에 비해 각화사는 아직 한 푼도 받아본 적이 없다. 이유는 문제사찰이라는 것이었는데, 법당이 국유림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으로 돼 있는가 하면 하천부지 위에 지대방을 지은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었다. 스님들이 행정에 어두운 탓으로 건축허가만 받고 준공검사를 받지 않는 등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탓도 있고 공무원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10년마다 있게 되는 토지개혁 때를 기다려야지 별도리가 없다고 했지만 스님은 그럴 수 없다는 생각으로 군수를 만나 해결을 지었다. 즉 국유림을 절에서 사들이고 하천부지 역시 그만큼의 사찰 땅을 주고 사들이는 형식을 취했다.
또한 올해는 동암의 중창 불사가 시작된다.
사실 각화사 하면 동암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곳에 큰스님들이 많이 기거하셨다. 그런데 무척이나 낙후돼 있는 상태라 해마다 보수를 해야 하는 상태였다.
“나보고 하라고 내몫을 남겨놓은 것 같아.”
그리고 또 하나 해결할 일이 있다. 각화사 위의 사고복원 문제. 5대 사고 중 유일하게 복원 안 된 곳이 각화사 사고인데 예산까지 통과되었지만 각화사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사고를 복원시켜 관광지화될 때 각화사 옆을 통과해야 하고 그리되면 수행도량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국가적 사업으로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스님은 정진 분위기만 보장된다면 사고복원을 용납해주자는 생각이다. 보장 첫째는 사고지 밑의 동암을 막고 우회도로를 만들며 공사물자는 헬기로 수송하라는 것, 그리고 현재 선방에서는 수행할 수 없으니 위쪽 조용한 곳으로 선원을 옮겨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절의 입장에서 볼 때도 현재의 선원은 비좁아 새로운 수행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계산이 있다.
그리고 보니 선방 수좌생활만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행정력도 수준급이다. 그러나 스님말씀에 의하면 행정에 밝아서가 아니란다.
“욕심 없고 본심으로 하면 주위에서 가르쳐 줘요. 그렇게 사는 것도 하나의 사는 방법이지요.”
선방에서 살며 느낀 것이 있다면 ‘하심’을 하지 않으면 화두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심될 때 화두도 들리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
“마음을 비운 것이 견성이지요. 모든 것이 자기라는 잣대, 그걸 내세우는 한은 논쟁이 끊어지지 않아요. 나를 비우면 선방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든 일이 잘되게 되어 있어요.”
예전에는 많이 거칠어 불거져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해 울퉁불퉁했지만, 대중 이끌면서 ‘나’라는 것을 낮출 수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를 낮추니 해결이 되더란다.
어쨌든 노현 스님에겐 선방이 극락이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지옥이란다. 선방에서는 내 공부만 하면 되었지만 대중 일을 보다보니 하나하나 신경 안 가는 곳이 없으니 그럴 법하다.
마음공부만 하던 노현 스님이 요즘 호되게 행行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