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타락으로 인한 세종의 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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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 김태형
1995년 06월 160호
삼무일종三武一宗의 중국 법난에서 마지막으로 일어 난 법난은 후주세종에 의해 발생한955년의 법난을 말한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삼무의 법난은 도교와 사상투쟁 과정, 곧 위정자의 도교에 대한 광산적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세종의 법난은 당시 불교계의 심각한 타락과 국가의 재정적 궁핍이라는 이해 관계가 얽힌 데서 비롯되었다.
955년의 법난 당시 중국은 후양의 태조 주전충朱全忠이 당을 멸한 뒤 오십여 년 동안의 후행종梁, 후당後庸,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이 중국 북쪽 지역에서 흥망을 거듭하면서 사회적 혼란은 극에 달해 있었다. 또 남쪽지역은 오吳 초楚, 오월吳越 남당南庸, 남한南漢 등의 열 개의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는 혼란의 시절을 맞는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변동 아래에서 제국의 군주들은 불교에 대한 잦은 조칙 등을 발표하면서 권력의 수하에 불교를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잦은 왕조의 변화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가져와 민심의 이완과 탈선을 가져왔고, 그 결과 사회 전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말세론적 좌절감의 정신적 공황에 빠져 온갖 사술邪術이 만연하게 된다.
당시 사회의 혼란은 불교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쳐 사회의 등불이라는 종교 본디의 의무를 망각한 채 타력의 늪에 빠지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신왕조가 들어서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불교에 대한 통제를 실시하고 감독하여 왔다. 사회 혼란과 맞물려 타력의 늪에 삐진 당시 불교계의 모습을 보면, 후 당대에 사도私度(사사로이 승려가 된 자들) 승니僧尼들이 불교라는 이름을 빌려 미신과 같은 행위를 하거나 승니 남녀가 혼거하여 밤에는 모이고 아침에 헤어지는 음풍淫風에 가득찬 법회를 벌였다. 또 승려들은 국가의 면세 혜택을 이용하여 사찰을 호화스럽게 치장하는 사례가 잦았고, 범죄자나 재산 은닉을 희망하는 자, 각종 세역을 피하려는 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 등이 사찰로 들어와 정토구현이라는 본디 면목을 훼손시키고 있었다.
결국 사회적 혼란과 비례하여 불교는 더욱 깊은 타락의 수렁에 빠져 후주의 세종과 같은 군주에 의해 자율 정화가 아닌 타율의 정화를 당하게 된다.
세종의 훼불 내용을 보면, 칙액 勅額이 없는 사원의 폐쇄 및 사찰의 신축금지, 위반자에 대한처벌, 관리의 사원 신축, 계단械壇설립 건의 불가, 사사로운 삭발 출가 금지, 부모, 조부모의 허락 없는 출가 금지, 불상과 동종을 수거 주통전周通錢 주조 등이었다. 그 결과 삼만여 곳의 사찰이 폐사되었다.
세종의 정치적 법난은 이후 송대에 국가 권력이 불교 교단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법난은 삼무일종의 법난으로 대표되고 있지만 세종의 훼불 이후 육십여 년이 지난 북송의 휘종대에 이르러서는 또 다시 군주의 도교 신봉으로 인한 법난을 맞게 된다.
휘종의 법난에 대해 일연스님이 엮은 삼국유사 권3 탑상 제4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에는 그 뒤 송나라 휘종조에 이르러 좌도 左道를 받으니, 이 때 나라 사람들이 도참圖讖을 전하여 퍼뜨리기를 금인金人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 라고 하였다. 황건黃巾(도교를 말함)의 무리들이 일관日官을 충동하여 위에 이르기를 ꡒ금인이란 불교를 말하는 것이니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조정에서는 장차 불교를 없애고 승려들을 살상하고, 경전을 불사르고, 따로 조그만 배를 만들어 석가모니의 어금니 사리(佛牙)를 실어 큰 바다에 띄워 인연 있는 곳으로 흘려 보내려 했다. 이 때 마침 고려의 사신이 송나라에 갔다가 그 사실을 듣고는 천화용天花茸 50령領과 저포 紵布 3백 필을 실은 배를 호송하는 관원에게 뇌물로 주고 부처님 어금니 사리를 받고 빈 배만 흘려 보내게 했다”라며 휘종이 일으킨 법난의 발생과 경과를 적고 있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중국 불교사에 있어서 법난의 발생과 그 경과를 알아보았다. 중국 불교사에서의 법난은 세종의 폐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군주의 종교적 편견에 의해 발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군주라는 절대 권력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특정 종교가 핍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그 이면에는 불교의 타락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중국에서 마지막 법난이 발생하고 일천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는 자, 타칭 장로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좌에 올라 실로 우려 할 만한 종교적 편견과 아집을 가지고 국정을 수행하고 있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우려를 사고 있다.
현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대형 사고,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할 때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실정失政에 의한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 이는 전임 대통령들이 가진 종교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과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곧 불교적 성향의 전임 대통령들이 해 온실정의 결고를 현정권이 받고 있다면서 많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우회적인 종교 편향성을 표현하면서 자신
의 종교적 신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