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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의 음력 설 페스티벌(Lunar Festival)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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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5년 03월 277호
일본에서 지낼 때 봄이 오면 늘 꽃들을 보러 다녔다. 특히 봄이 오기 전 2월 말에서 3월 초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매화를 보러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차도 한 잔 얻어 마시면서 행복해 하며 언젠가 집이 생기면 심어야 할 나무의 리스트 중에 매화를 1순위로 꼽았었다. 벌써 미국에 와서 세 번째 봄을 맞이하지만 마음 한 귀퉁이에는 매화에 대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다.
몇 주 전에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낮은 창을 가진 남향의 이층집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다. 창밖에 아무 싹도 보이지 않는 나무가 있어 죽은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거기서 조금씩 싹이 보이더니 갑자기 작은 흰 꽃이 피기 시작했다.
분명 매화인 것 같은데 믿을 수 없어 더 기다려보고 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매화라고 한다. 비록 우리 집 정원은 아니지만 올 봄에는 거실 창문에서 매화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호사를 즐기고 있다. 봄이 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꽃들이 차례로 피지만 이곳 LA에서는 모든 봄의 꽃들이 한꺼번에 핀다.
목련이 피어 있고 동백꽃이 보이고 며칠 후에는 여기저기서 벚꽃도 보이고 심지어 매화까지도 함께 보인다. 아무튼 나는 이 봄에 잠시 쉬고 있었던 꽃타령이 또 시작되었다.
이 꽃들 속에서 이곳에서 음력 설날과 정월대보름을 맞이했다. 설날에는 절에 가서 신중기도를 했으며 보름에는 백일 동안의 동안거 관음기도도 해제하였다.
기후에 맞게 여름과 겨울에 결제와 해제를 하지만 여기서는 언제나 같은 날씨이기에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제와 해제로 받아들이라고 스님들은 말씀하신다.
2월이 오자 매일 한국과 중국방송에서 음력 설에 대한 페스티벌이 있다고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전통을 가진 커뮤니티가 함께 모여 각기 그들의 문화와 먹거리를 소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중에서 LA 동북쪽에 위치한 파사데나의 페스티벌에 가보기로 했다. 파사데나는 몇 차례 해인지에 소개했던 것처럼 아주 오래 된 유럽의 도시를 연상시키는 곳으로 박물관과 식물원은 물론이고 작고 예쁜 가게들도 많은 도시이다.
매년 1월 1일 장미 퍼레이드가 열리는 콜로라도 거리에는 벌써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11시가 되자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폭죽소리가 거리를 뒤흔들었다.
폭죽소리가 끝나자 바로 퍼레이드가 시작되면서 미국인 네 명이 각기 커다란 장닭을 안고 가면서 연신 “Happy New Year”를 외친다.
그 뒤로 LA 인근 도시의 명사들이 오픈카를 타고 가면서 새해가 왔음을 기뻐하였다. 아시아 지역의 미녀들로 뽑힌 사람들이 그들의 고유 의상을 입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기쁜 얼굴로 지나간다.
갑자기 힘찬 기합소리가 들려와서 보니 소림사 무술 팀이다. 거리에 서서 제각기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니 역시 하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차례를 전부 기억할 수 없지만 베트남, 필리핀 등지의 사람들도 고유 의상과 춤을 선보이며 한차례 지나간다. 계속 이어지는 것도 무슨 무슨 중국의 무술 팀과 사자춤과 여러 명이 긴 용을 흔들며 지나가는 기예를 선보인다.
아무리 기다려도 한국 사람들은 더 나오지 않는다. 거리를 둘러봐도 한국 사람은 보이지 않고 중국 계통의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사우스 파사데나, 아케디아, 다이아몬드 바 등의 LA 인근의 주요 도시의 시장(Mayor)들이 모두 중국계였다. 처음 음력 설 페스티벌에 온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행사가 중국계 사람들의 잔치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도 얼마나 음력 설이 큰 잔치이며 여러 가지 문화가 많은데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섭섭함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점차 구정보다는 신정을 지내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 미국의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설날이라는 우리의 명절이 거의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생활 패턴이 미국의 달력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중국 커뮤니티가 스스로의 전통과 문화를 자랑스럽게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 그지없었다.
나아가서 이러한 각 커뮤니티의 단결력은 곧바로 미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 커뮤니티의 권리 신장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미국계 은행의 ATM에 한국어 안내는 없고 스페인어와 중국어 안내만이 있는 것은 비단 한국사람들이 영어에 아무런 불편이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 LA는 이상기후로 연일 비가 내린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우박이 내린다는 소리에 잠시 멈추고 거실 창문에 서서 심하게 가지를 흔들고 있는 매화나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