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보다 가치 있는 얘기들을 쏟아낼 것이라고 믿어주는 사는 일이 그대로 자기 성찰이며 이왕의 삶을 기쁘게 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물과 같은 삶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도 산을 넘지 못하며 어우러져 흘러가듯 순환의 삶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산에서 나와 산과 더불어 흐르며 세상사 변천과 선악의 인심을 비추어낸다. 더러는 혼탁하여 굴원의 미소를 비웃어도 저만큼 흘러가며 어느새 다시 맑아지는 일에 익숙하다. 막히고, 썩기도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만 있다면 늘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며. 때때로 동산東山이 운무 속을 뚜벅이며 걸어가거나 물위로 슬며시 떠가기도 하고, 흐르는 건물이 아니라 돌다리가 되기도 하니 기존의 고정관념과 대립적 틀을 깨는 해체 사이에서 물은 인식 전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불확실성과 딜레마 속에서도 물은 당혹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업자득과 선인선과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확신, 지고至高의 선善에 뜻을 두되 다겁생래 모르고 지은 악의 과보조차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자세라면 새옹지마의 세상살이 무엇인들 어려움이 되리오. 물은 태산 같은 경계나 바위를 만나도 묵묵하다. 성급하지 않으며 좁거나 넓은 대로 에돌아 가며 부단히 쉬임없이 흐를 뿐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도 굳이 상대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레 받아들여 먼 바다에 이르는 물은 또 순리대로 낮은 곳을 향하여 숨죽여 흐를 줄 안다. 낮출 줄 아는 겸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음을 비우고 견해도 비우고 일체의 차별 분별을 내려놓은 평등한 씻김의 동사섭은 물보다 유연한 게 있을까. 다도茶道의 정신이라고 하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은 물의 정신보다 작의作意적이다. 다투지 않고 화목하며 화내지 않고 공경하며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깨끗하게 쓰며 흩어지지 않는 조용한 마음을 차茶를 통해 체득하기 위함이다. 격식을 갖추어 차를 마시는 행위만으로 이러한 경지가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다도茶道의 도道는 ‘유심오도由心悟道’ 즉,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도道라고 하듯 차를 마시는 행위가 그대로 일심一心의 자각적인 선禪의 세계에 연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은 버드나무 그림자 도화꽃 향기에도 유혹되지 않는다. 오가는 데 맡길 뿐 집착이 없다. 일체의 부정不淨을 불이不二의 본래 청정한 자리에 돌아가게 하는 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다. 세월의 강물 속에 떠 있는 우리 일념一念을 놓칠 때 영원도 잃고 마는 것. 순간순간 창조적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일, 그것이 물과 같이 사는 삶이다. 다시 3월, 창밖에 여린 달빛 매화한가지 올해 보는 매화의 암향, 그 어느 해보다 아름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