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楚漢시대 유명한 장자방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황석공黃石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라는 글이 남아 있다. 그중 한 구절이다.作舟하야 而待其時하노라
若雨而行이면 則能極人臣之位하고
若不雨면 則沒身而已矣로다
배를 지어 그 때를 기다리노라.
만약 비를 만나 갈 수 있을 것 같으면
즉 능히 사람으로서 최고의 위치를 다할 것이지만,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그뿐,
늙어 지낼 일이로다.
때를 대비해 배를 지은 이는 동서東西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일이다. 노아가 지었다는 방주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는 일이 어디 보통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를 대비해 배를 짓는 일이야 범부凡夫도 할 수 있는 일이나, 배를 짓고 그 뗏목을 뽕나무 가지에 걸어 놓기를 몇 수십 년. 어느 날 아침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어 있으면 그 노력은 가상한 일이겠거니와 비가 오지 않아도 그뿐이라는 무심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배를 짓고서는 그 배를 잊었으니, 황석공이 지은 배가 뽕나무 밭 푸른 바다 위에 놓일 경우는 필경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 배를 차가운 장강長江에 띄우고 낚싯대나 드리우고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태공이 그러하고 굴원屈原이 그러했듯이 많은 이들은 때를 기다리며 정성을 다해 만든 배를 할일없이 강으로 가져가 세월을 낚고, 마음을 건졌다.
그 후로 일사逸士나 도인 주변에는 어느 사이엔가 강물은 세월이 되고, 배는 그 세월을 건너는 도구가 되었으며, 낚싯대로는 십이만 구천 육백갈래 마음을 하나로 낚는 일이 허다해졌다. 마음을 낚은 이들에 대한 동경과 세월의 오랜 무심이 그림이 되었으니 <어조도魚釣圖(낚시하는 풍경)>니 <독조도獨釣圖(홀로 낚시하다)> 등으로 그려지기를 천년도 더 되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차가운 강물에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다)>는 남송南宋의 화원이었던 마원馬遠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차가운 강가에 홀로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은 자신의 배를 띄운 강물도 관심 없어 보이며, 그 낚싯대에 딸려 올라올 그 무엇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촌로村老가 배를 띄운 것은 낚시를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며, 낚싯대를 내린 것도 뭔가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허로운 강물 한가운데 배는 무심히 오가며 잔잔한 강물은 뱃전을 가늘게 쓰다듬고 있다. 바람에 쓸리는 가랑비에 도롱이와 초립草笠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뱃머리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을 일. 강江도 무심無心하고, 배를 띄운 노인도 무심無心하니, 낚싯대인들 어찌 무심하지 않을 것이며, 강물 또한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겠는가. 강 위의 생활이 일상이 되어 도롱이와 초립까지 무심하다.
몇 가닥 세필細筆로 그린 물결 몇 가닥이 큰 강물 되어 화면 안에 가득 찼으며 그 중심에 있는 어부의 세심한 묘사로 그림은 일순一瞬 많은 웅변을 들려준다. 허虛와 실實, 즉 비움과 채움이 서로 상응相應하였다고 함은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방 거사龐居士가 어느 때 마조馬祖(道一:709~788) 스님을 뵙고 물었다.
“만법에 짝이 되어지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대답하기를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소.” 하니,
다시 방 거사가 물었다.
“본래인本來人을 어둡게 하지 말고 스님께서는 눈을 높이 뜨십시오.”
스님께서 눈을 아래로 흘깃하자 거사가 말하였다.
“줄 없는 최상의 거문고를 스님만이 오묘하게 뜯는군요.”
스님께서 이번에는 위로 흘깃 보자 거사는 절을 하였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돌아가자 거사는 뒤따라 들어가면서 말하였다.
“조금 전에 잘난 체하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물은 근육도 뼈도 없으나 만 섬 실은 배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였다.
“여기에는 물도 없고 배도 없는데 무슨 근육과 뼈를 말하는가?”
이미 배를 지었으면 기다리던 때는 잊을 일이요, 배를 강물에 띄웠으면 건너온 강물은 이미 등 뒤의 일이다.
배는 내가 만들었으나 스스로 용도를 내지 않았고, 강물은 그 배를 얽어맬 마음이 일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머리엔 강을 이고 산 위로 그 배를 짊어지고 가는 수고는 또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가소可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