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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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4년 11월 273호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수평선과 이별할 때쯤 달은 동쪽 산과 인사한다. 매일 해와 달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렇게 시작되고 나는 눈을 뜨며 세상의 소리를 듣고 눈을 감으며 그 소리를 잊는 것으로 하루와 만나고 헤어진다.
사람이 하루를 살며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는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존재의 힘이기도 한 일과의 만남과 헤어짐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과거와 미래와의 만남과 이별, 망상과 무명번뇌와의 끊임없는 숨바꼭질, 그 모든 것이 하루에도 수없는 만남과 이별의 흔적을 만들어 간다.
유년 시절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인연들을 통해 즐거움은 직접적으로 남고 슬픔은 간접적으로 다가섰던 것 같다. 만약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면 분명 가슴 아픈 일인데 부모님이 계시니까 내 아픔의 완충 역할이 되어 주셨고, 어머니가 많이 아프고 힘드실 때는 또 가까이 아버지가 곁에 계시니까 나에게는 아픔이 둘러왔던 것 같다. 허약했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며 살겠다고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을 떠나왔다. 마치 혈육의 인연을 끊고 떠나오면 머지 않아 도인이라도 될 것처럼 부모님께 큰소리치며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이면서도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대중 속에서 멀리 있는 부모형제의 인연으로 겪어야 하는 즐거움과 아픔보다는 가까이 있는 어른스님이나 도반들과의 나눔에 더 익숙해져 갔다. 물론 흐르는 세월의 더께가 더할수록 감정에 무디어진다고 할까, 세상사에 초연해진다고 할까, 만사를 대하는 마음이 한풀 쉬었다고 할까, 아무튼 둘러가는 마음길도 알게 되었다.
한 해 한 해 세월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서운함보다는 부족함을 알게 하고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업연을 생각하게 한다. 굽이굽이 둘러가는 길의 여유를 알게 하고, 인내하는 시간 뒤에 오는 단맛을 알게 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고 이해하는 사람, 자기 분수를 따라 사는 삶에 만족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두 배로 크고 기쁘다는 것도 알게 한다. 그래서 세월은 세 겹으로 흐른다고 할까. 머리와 얼굴 위에서 흐르고 마음길을 따라 흐른다. 시간은 오직 나에게 현재만 있지만 그 속에 과거와 미래도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겹으로 단단히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도 어길 수도 없고 마디마디 나눌 수도 없는 일이다.
그 흐르는 세월 안에 있는 나의 인연들…… 부모와 형제자매, 스승과 도반, 그리고 단월의 인연들…… 모두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 있는 인연들이다. 그리고 호흡하는 존재감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인연들이며 고단함을 나누기도 하는 인연들이 바로 그들이다.
얼마 전 하안거를 해제하고 일년에 한 번 강원시절 도반들을 다 한자리에서 만나는 모임이 울진 지장사에서 있었다. 매년 모임에 얼굴을 보이는 도반들은 함께 졸업한 숫자의 반수 정도이다. 올해도 그랬다. 모처럼 일년 만에 만나는 도반도 있고 한해라도 불참하면 2년이나 3~4년 얼굴을 못 본 도반도 있다. 그래서 궁금함과 반가움이 더 큰 것 같았다. 올해 모임의 장소가 거리나 교통편이 그렇게 편한 곳이 아니었는데도 반수 이상이 모였던 것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저녁 공양 시간 전에 올 수 있는 도반들은 다 온 듯싶었다. 모임 준비를 담당한 도반들과 불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공양은 늘 과식을 부추긴다. 느긋하고 격의 없는 그 시간은 한없이 편하고 그냥 즐겁다.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오느라 고단했던 시간을 그렇게 풀고 나면 한 해 동안 살림을 맡았던 반장은 도반 스님들 주변에 있었던 굵직한 행사와 재무 보고를 한다. 매년 상황에 따라 규칙이 생겨나기도 하고 수정되기도 한다. 참 별것 아닌 작은 살림인데도 귀를 쫑긋하게 기울인다. 그것은 아마도 도반들의 근황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밤은 깊어가고 특별히 준비된 이벤트는 없었지만 도반들은 약속이나 한듯 넓은 마당에서 포행하듯이 걷기 시작했다. 한쪽 마당 끝에서 별 바라기를 하는 도반도 있고, 모처럼 과식해서 튀어나온 배를 들여보내느라 병정들처럼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힘차게 휘저으며 걷자고 제의하는 스님도 있었다. 몇몇이서 그렇게 병정놀이 하듯 걷는 모습을 보고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한바탕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강원을 졸업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도반들과 목소리를 높여 보는 시간이었다. 산이 떠나가라 그렇게 크게 웃어본 지도 오래다. 내년에 반모임을 준비할 도반이 자기가 주지로 있는 절에서 하니까 많이 오라고 내년 모임 광고까지 한다. 맛난 것 많이 해 놓고 기다리겠다고 이삼일 정도 미리 와서 함께 등산을 하자는 제의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삼경이 지나고 삼삼오오 잠자리에 들어 두런두런 한 해 동안 궁금했던 근황들을 이야기 나누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선에 드는 것이 우리 반모임의 풍경이다.
올해는 예년에 없이 모임 다음 날 아침 부고를 접했다. 이른 아침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도반이 은사스님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몇몇 스님들은 지리산을 등반하자는 계획도 세우고 삼삼오오 각자 다른 계획들이 있었는데 모두 취소를 하고 의정부로 올라왔다. 밤새워 돌아가며 독경을 하고 영결식 준비에 동참했다. 그렇게 어른스님 보내드리고 우리 도반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다음 날 생방송을 마치고 늘 그랬던 것처럼 휴대전화기를 켰다. 방송을 하는 동안 음성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어제 헤어진 도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잠시 그냥 멍하게 앉아 있었다.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음성을 남겨 놓은 도반이 만우절도 아니고 그런 소식을 장난으로 남겨 놓은 것은 아닐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꿈이 아닌 현실인 것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여기저기 연락처를 알고 있는 도반들에게 비보를 알렸다. 가까이 있는 몇몇 도반들은 모여서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왔던 스님들은 그 길로 선걸음에 다시 도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이동을 해야만 했었다. 방송을 하고부터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계획되지 않은 일 앞에서 나는 쉽게 서울을 떠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생방송을 마치고 빨리 가는 차편을 이용해 대구로 향했다.
소식을 듣고 비슬산 아래로 모여든 도반들은 각자 맡은 소임을 다하며 도반을 보낼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도반들의 독경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상좌도 없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는 도반의 상주가 되어 분주했다. 늦게 도착해서 아무 일손도 보태지 못하고 다음 날 방송을 위해서 다시 서울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나는 그런 도반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떠나고 보내는 도반들에게 미안함을 덜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맡겨진 소임을 대신 해 줄 도반과 함께 영결식 식순을 정하고 아랫마을 인터넷 방을 전전하며 영결사를 써 놓고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허망하게 이별하고 그렇게 문득 떠난 도반은 육근과 육식이 성성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어제같이 한 자리에 앉아 공양하고 옛 이야기 하며 함께 했던 도반이 오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별것 아닌 일에 집착하고 마음 아파하던 나에게 큰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것이다. 떠나는 도반에게 홀연히 그렇게 떠나듯이 문득 다시 이 세상에 와서 도반으로 못다 이룬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자고 이별을 고했지만 그것은 결국 남은 자의 위로일 뿐이다.
올곧은 하루하루의 기도와 수행으로 만남보다는 이별을 아름답게 하자는 다짐을 하며 허망하고 애틋한 이별이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후회 없는 이별이게 하자고 마음을 챙긴다. 살아 숨쉬는 사람의 어제와 오늘이 늘 생과 사의 갈림길이라는 것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