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사바 중생의 눈높이에 다가서는 불교영화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 달의 이야기 - 조희문/상명대교수, 영화평론가 2004년 11월 273호
부처의 가르침은 심오하고, 가람은 경건한 도량이다. 세속의 번뇌를 초월한 불교의 세계는 해탈의 세계이자 구원의 희망이다. 적어도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불교의 모습이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불교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람은 세속의 홍진이 비껴가는 고고한 수양의 도장이며, 스님은 속세의 번뇌를 초탈한 신선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가끔 파계를 하더라도 그것은 더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모습일 뿐 세속의 명리와는 다른 것이라고 본다. 한국영화가 세계무대에 나서는데 중요한 전기를 만들었던 “만다라”나 “아제아제바라아제” 같은 영화들은 물론이고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우담바라” 같은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영화 중에서도 부처의 득도 과정을 그린 “리틀 붓다”,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환생 과정을 그린 “쿤둔” 같은 영화들은 불교야말로 정신문명의 황폐를 구원할 수 있는 인류 최후의 희망인 것처럼 그린다. 이런 영화들은 불교의 심오한 세계를 세속의 중생에게 알린다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가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중생의 종교가 아니라 큰 깨달음을 얻으려는 특별한 존재들만의 세계처럼 보이기도 해 불교를 지나치게 신성시 하도록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 영화 중에서 불교를 다룬 경우 중에서 처음으로 주목받은 경우는 1949년 윤용규 감독이 연출한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한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색한 이 영화는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동승이 불공을 하러 절에 들른 젊은 과부 보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는 애잔한 모습을 그린 경우다. 부처의 가르침이니, 해탈이니 득도니 하는 심오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린 동승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만한 아들을 여의고 마음 속 깊이 한을 담고 있는 청상의 애끓는 마음은 관객들을 눈물 짓게 만들었다. “마음의 고향”은 2003년 주경중 감독이 “동승”이란 제목으로 다시 영화로 만들었는데, 어린 스님 도렴의 눈에는 두 개의 세상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에게 절집 생활은 도무지 외롭고 무섭다. 친구할 만한 또래도 없다. 산 아래 마을 아이들은 절집 아이라며 놀리며 괴롭힌다. 주지 스님은 무슨 일이든 야단만 치는 호랑이 할아버지 같다. 그런 반면 불공 드리러 오는 젊은 아줌마가 사는 세상은 따뜻한 정이 넘치는 꿈같은 세상처럼 보인다. 젊은 청상은 애달픈 마음을 달래려 절집을 찾고, 어린 동승은 어머니가 살고 있을 절집 밖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스님은 차츰 세상의 모습을 알아가고, 부처의 세계도 마음에 담기 시작한다.
한국영화계에 본격적인 불교 영화들이 등장하는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원효대사” “이차돈”(1962년) 같은 영화들은 본격적인 불교영화의 서막을 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불국사 에 탑을 세운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사랑을 그린 “무영탑”(1957) 같은 영화들이 있지만 불교영화라기보다는 전설 속 연인들의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에 가깝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불교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무룡, 문정숙 등이 주연한 “원효대사”는 신라 대승불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원효대사의 파격적인 수행과정을 그린 경우이고, 신라 법흥왕 시대에 불교를 민중에게 전파한 이차돈의 순교를 그렸다. 이후에 등장하는 불교 영화들은 고승들의 수행보다는 구국의 영험함을 강조하는 ‘호국’에 더 큰 무게가 실리는데 “사명당”(1963), “호국팔만대장경”(1978) 같은 경우들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자 부처님의 힘으로 호국하며, 직접 전장에 나서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담고 있다. 60~70년대에 만든 영화들 중에서 호국을 특별히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시의 영화정책이 우수영화의 기준을 ‘국민총화’와 ‘국난극복’에 초점을 맞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반공영화’ ‘국책영화’ 또는 ‘새마을 영화’로 불리던 영화들이 유행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들면서 ‘호국’이 점차 사라지고 ‘고행’과 ‘깨달음’이 새로운 주제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영화도 자유로운 수행에 들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권택 감독이 만든 “만다라”를 시작으로 “아제아제 바라아제” 그리고 배용균 감독이 만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양윤호 감독의 “유리” 같은 영화들은 해탈의 과정을 고통스럽게 그리며 선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진지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영화의 경향이 어떻게 바뀌든 부처의 세계는 심오하고, 고상하며 치열한 구도의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달마야 놀자”(2001)는 불교를 소재로 다룬 영화의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경우다. 어느 산중의 절집. 주지스님과 네 명의 젊은 스님 그리고 공부하러 들어온 홍안의 고시생이 살던 작은 도량이다. 그곳에 주먹패 건달 다섯 명이 불시에 들이닥쳐서 눌러앉는 바람에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조직 간의 다툼이 생겨 몸을 피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무작정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든 것인데, 세상을 온통 힘과 주먹으로만 살아온 터라 머리 깎고, 불경 외우며 마당 쓰는 일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스님들을 겁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 스님들의 은근하면서도 단단한 기세가 만만치 않고 느릿느릿 한두 마디 던지듯 일갈하는 노스님의 내공도 무겁다. 그래도 어쨌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절집에 눌러앉아야 하는 처지의 건달패들은 젊은 스님들의 거절을 힘으로 누르고 절집을 ‘접수’하려 한다. 그렇다고 젊은 스님들이라고 부처님 모시고 수양하는 도량을 건달 손에 속절없이 넘길까. 옥신각신하며 승강이를 벌이다가 결국 내기 시합을 벌인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진다.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건달과 스님들 사이에 미묘한 우정이 자라는 일이다. 매사를 우격다짐으로만 일을 대하던 건달들은 차츰 경건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며, 건달들을 타박하던 젊은 스님들은 점점 그들의 고민을 받아들이며 품기 시작한다. 속은 승이 되고 승은 속이 되면서 합일의 경지로 변모하는 것이다. 설법으로 가르치는 과정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며 부대끼고 다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득도의 과정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달라보이는 것은 절집이 속세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스님들 또한 속세를 초탈한 초월적 존재라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스님들도 화를 낼 수 있으며, 불경하고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한 꾸중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수양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며 부단하게 정진하지만 절집의 고적함을 깨고, 함부로 생명을 해치려는 살생의 기운이 다가오자 적극적으로 그것을 막는다. 절집 또한 깨우침과 자비의 실현을 수양하는 도량이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노스님과 젊은 스님 사이에 장유長幼가 분명한 사바세계의 한 귀퉁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건달패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큰 불곰이라는 친구가 ‘해병대 정신’을 목청껏 외치자 대봉 스님 또한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며 기수 선후배를 따지는 대목이나, 건달패의 우두머리인 재규가 주먹을 휘두르며 나오자 무예가 깊은 청명 스님이 정신이 번쩍 들게 본때를 보여주는 장면 등은 엄숙하기만 했던 불교 소재 영화들의 ‘과도한 근엄’을 벗어버리는 계기로 꼽을 만하다. 젊은 스님들이 절집 안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소동에 당혹해 하고 때로는 힘으로라도 야차 같은 침입자 건달들을 내치자고 열을 내지만 노스님은 손자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미소같은 표정으로 품에 날아든 새들을 보살피며 젊은 스님들의 불만을 받아넘긴다. 부처의 자비를 베푸는데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느냐는 가르침이지만 그 모습 또한 소탈하기 이를데 없다. 중생이 알아듣기 어려운 법어들 대신 저잣거리에서 오고갈 만한 말들을 거침없이 툭툭 던지고 필요하면 욕도 마다 않는다. 색色과 공空이 하나이고 승과 속이 하나일진대 말이 뭔 대수냐는 듯한 행동이다.
결국 관객이 보는 절집의 풍경이나 스님들의 수양은, 속세와 멀리 떨어져 함부로 범접하기가 왠지 부담스러운 선상의 존재가 아니라 친근하고 친숙하며 알아듣기 쉬운 말과 행동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친근한 이웃으로 다가선다.
보기에 따라 “달마야 놀자”가 수양에 정진하는 스님들과 절집 풍경을 지나치게 희화하고 경박스럽게 다루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지만 근엄한 경건 대신에 친근함을, 헤아리기 어려운 가르침의 무거움 대신 세속의 눈높이에 맞춘 경쾌함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영화보다도 더 큰 설법의 효과를 낸다. 속세를 피해 산중으로 들어갔던 부처의 가르침이 다시 속세로 나온 듯한 인상까지 받는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1983년인가, 어느 영화사가 비구니들의 수행을 다룬 ‘비구니’라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영화의 내용이 불교계의 명예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궐기하다시피 하며 제작을 가로막았고, 결국 영화사가 제작 포기를 선언한 경우와 비교하면 영화를 바라보는 불교계의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고 할 만하다. 부처의 가르침은 변함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세속은 세월만큼이나 변한 셈이다. 세속의 눈높이로 몸을 낮춘 불교 영화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지켜보는 것도 수행의 한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