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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이 절에 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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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정진영 / 영화배우 2004년 11월 273호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나서 저는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여러 해 전에 임권택 감독의 “비구니”라는 영화가 촬영도중 불교계의 항의로 제작이 중단된 바도 있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종교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마냥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달마야 놀자”는 스님들이 조폭들과 치고 박는 몸싸움도 벌이고, 조폭들을 절에서 내몰기 위해서 내기를 하고, 나중에는 집단 패싸움도 벌이는 장면이 있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팔십이 넘으신 저희 어머니가 평생 절에 다니신 불교 신도이시어서, 신도가 아닌 저도 부처님과 스님의 ‘권위’가 어떠한지는 어머니를 통해 익히 느껴온 바였습니다. 자칫하면 영화를 빙자해 불교계를 농락했다는 ‘야단’을 들을 수 있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고맙게도 종단에서 사전에 시나리오를 미리 검토하시고, 문제될 것이 없다며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셔서 저희는 너무나 행복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스님 역할을 맡게 된 배우들은 영화를 찍기 전 기본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머리만 깎는다고 스님태가 날 것도 아니고, 최소한 절하는 법, 목탁 치는 법 등 최소한의 기본은 갖추어야 카메라 앞에 설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래 보았자 이것저것 다 합해 닷새가 안 되는 그야말로 냄새만 맡는 훈련이었으니, 그래 놓고 여러 해 정진한 스님 흉내를 내자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다른 배우도 그랬겠지만, 영화 속에서 실제로 완력을 행사하는 ‘청명’ 스님 역할을 맡은 저는 더 속이 탔습니다. 힘을 쓰는 게 깡패와 다를 바 없어 보이면 어떡하나, 이거 어차피 우리가 진짜 스님은 아니지만, 머리 깎고 승복만 걸친 엉터리 배우짓을 해서 불교계에 누만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저는 “달마” 찍기 직전까지 “킬러들의 수다”라는 영화를 찍어야 했고, 그 영화를 끝내고 보니 “달마” 촬영은 불과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어떻게 스님흉내를 낼 준비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촬영기간 중 절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불교의 깊은 뜻을 알고 연기를 하기는 그른 일, 절 냄새라도 몸에 배게 하자는 생각이었죠.
두 달 반의 촬영 기간 동안, 저는 그래서 내내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절에 있다고 물론 스님처럼 살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다만 절의 식객에 불과했고, 절을 맘속에 담고 싶은 구경꾼에 불과한 것이었죠. 촬영 장소인 김해 신어산 기슭의 ‘은하사.’ 제가 머물던 방 앞에는 조그만 계곡이 있고, 방문을 열면 산자락이 마주합니다. 해가 지고, 촬영 팀이 부산의 숙소로 돌아가면 고요해지는 산속. 절 마당으로 나가면 여름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산소리. 스님들께 얻어 마시는 차 한 잔, 공양주 보살님이 웃으며 방으로 밀어넣어 주시던 수박 한 쪽. 늦은 밤이면 절 마당에서 어김없이 마주치던 두꺼비의 큰 눈망울. 대웅전의 장지문 너머로 은은하게 비치는 연노란 빛 등불. 새벽 세시면 잠든 삼라만상을 깨우던 도량석 소리. 영화를 빙자해 절에 머무는 행운을 얻은 저는 너무나 행복한 여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촬영 팀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저를 보고 안쓰러워했지만, 천만의 말씀, 저는 일행중 가장 행복하게 촬영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몇 해가 지나고 “달마야 서울 가자”라는 영화를 올해 다시 찍게 되었습니다. 도시에 내려온 스님들이 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산 도심 광복동 한가운데의 ‘대각사’가 주 촬영장소. 초반 촬영부분은 도심의 절을 찾아온 스님들이 도심의 풍속에 당황하고, 절을 빼앗으려는 무리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산 속의 절에서 찍던 것과 달리 도심에서 촬영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많이 따릅니다. 구경하시는 분들도 통제를 해야 하고, 거리의 소음 때문에 촬영을 중지한 적도 여러 차례. 영화속 도시에 내려온 스님들처럼 영화촬영 팀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다들 힘겨워했습니다.
촬영시작 두 주가 지난 뒤, 우리는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산사 장면을 찍으러 덕유산의 ‘백련사’로 갔습니다. 이미 3월 중순에 접어들어 애초에 설정한 눈 장면을 찍지 못할 것이라고 각오했는데, 놀랍게도 큰 눈이 내렸습니다. 절로 올라가는 길이 눈에 파묻혀 배우와 촬영 장비들만 짚차로 이동하고, 다른 스탭들은 새벽 어두운 눈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촬영 분량은 하루분. 눈에 뒤덮인 잘 생긴 덕유산은 설경을 영화속에 담을 수 있게 해주었고, 고찰 ‘백련사’의 단아함은 영화 도입부에 아름다운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틈틈이 절을 둘러보던 저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마야 놀자”를 찍으며 절에서 지냈던 3년 전 여름이 생각났고, 만일 이 영화도 도시에 내려가는 내용이 아니라 이곳에서 내내 찍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제가 지난번에 절에서 묵은 경험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그렇고 지난번 영화에 참여했던 스탭들도 그렇고, 심지어 이번에 처음 합류한 스탭들도 하루뿐인 이 촬영을 너무나 아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정진하시는 스님들에게는 치열한 구도의 현장이지만,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게는 마음이 맑아지는 마냥 편한 곳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뜻을 잘 모르고, 부처님께 드리는 예법은 잘 모르지만, 우리를 조건 없이 맑게 해 주는 곳. 그곳이 절이었습니다.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할것이라고 짐작한 제가 오만한 것이었습니다. 절이 왜 저에게만 좋다고 느껴지겠습니까?
달마 시리즈를 찍고 난 뒤, 저는 그 영화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게 오만함에 대한 경계를 주었고, 영화촬영팀들에게 맑은 마음을 주었고, 절의 따뜻함을 우리에게 심어주었습니다. 달마를 찍은 저희들은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왜 그런 기쁨을 저희에게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기쁨의 이유를 살아가는 내내 생각해야 하는 것, 그것이 아마 부처님께서 달마 촬영팀에게 내려주신 큰 화두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