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 나의 와유臥遊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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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11월 273호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은 조선 후기를 대표할 만한 화가이다. 그는 자기 당대의 산수를 많이 그렸는데, 특히 금강산, 관동 지방의 명승 그리고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접할 수 있는 명소들과 그가 지방 수령으로 지내던 곳의 풍광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가 남긴 많은 산수화 가운데 가야산 속에 자리잡은 해인사를 부채에 그린 것이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필자의 과문寡聞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 역대의 유명한 화가가 가야산 또는 해인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남긴 것을 보지 못했는데, 겸재의 이 그림은 평소에 가야산과 해인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남다른 감회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은 화제題나 제작 연도를 적은 기록이 없어서 언제 그린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겸재는 하양河陽·청하淸河 두 고을의 현감을 역임한 일로 인하여 경상도 지방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721년부터 1726년까지 5년 동안 하양 현감으로 재임했는데 그의 생애 후반기에 속하는 때이다. 이후 1733년에 다시 청하 현감으로 부임했으나 재임 기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던 듯하다. 따라서 겸재가 해인사를 그린 것은 아마 하양 현감으로 재직하던 때가 아닌가 추측된다.
이 그림은 금강산도金剛山圖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부드러운 필치로 이루어졌다. 가야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가운데 화면의 우측에 해인사가 비스듬히 자리잡고 있는데, 가장 위의 장경각으로부터 절 입구의 홍하문紅霞門에 이르기까지 가람 배치가 매우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면을 중심으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 방향으로는 안개가 낀 것처럼 은은하게 처리함으로써 가야산의 골이 깊고 먼 것을 나타내고, 담묵淡墨의 채색으로 나뭇잎을 그려 단풍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 남조 송南朝宋의 종병宗炳은 평소에 명산에 놀기를 즐겼는데, 늙고 병들어 그럴 수 없게 되자 그가 유람했던 명산을 모두 그려서 방 안에 걸어두고 누워 산수에 노니는 ‘와유臥遊’의 바탕을 삼았던 일이 있다. 나 또한 겸재의 해인사도海印寺圖를 후일 나의 와유를 위해 특별히 기억해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