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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산에서 북을 치고 소주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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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04년 11월 273호
남산운북산우 南山雲北山雨여
사칠이삼면상도 四七二三面相覩로다
신라국리증상당 新羅國裏曾上堂이어늘
대당국리미타파 大唐國裏未打破로다
고중락낙중고 苦中樂樂中苦여
수도황금여분토 誰道黃金如糞土오
남산의 구름과 북산의 비여!
서천28조와 당토 6조가 얼굴을 마주했네.
신라에서 당堂으로 오른 적이 있거늘
당唐나라 안에서 북을 치지 않는다.
괴로움 속의 즐거움과 즐거움 속의 괴로움이여!
뉘라서 황금을 쓰레기 같다고 했던가?

운문 선사가 어떤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고불古佛과 노주露柱가 서로 사귀니 어느 정도의 근기인가?”
그 납자가 대답이 없거늘 운문 스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그대가 물으라. 내가 대답하리라.”
그러자 그 납자가 물었습니다.
“고불古佛과 노주露柱가 서로 사귀니 어느 정도의 근기입니까?”
“노끈 한줄에 돈 삼십냥을 모두 꿰느니라.”
“어떤 것이 노끈 한줄에 삼십냥을 꿰는 것입니까?”
“몽땅 주리라.”
그리고 한참 있다가 다시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남산에 구름이 일고 북산에 비가 내린다.”
운문 스님은 제자로 80여 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습니다.
입적한 뒤 70년이 지난 후 부도를 열고 살펴보니
엄연히 예전에 살아 있던 모습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의 견처見處는 명백하고 솜씨는 신속하며, 수어垂語와 별어別語, 대어代語가 참으로 고준하였습니다.
이 ‘고불노주’공안은 번득이는 전광석화와도 같아 참으로 신출귀몰하다고 하겠습니다.
경장주經藏主 스님은 이 법거량에 대하여
“일대장교一大藏敎에도 이같은 말씀이 있을 수가 있을까?”라고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고불이라는 말은 본래 조주 선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선사의 나이가 120살이 될 때까지 사신 탓에 그 별호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설봉 스님이 조주 스님의 견처를 찬탄한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남방에서 한 납자가 와서 설봉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태곳적 개울에 찬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입으로 마시지 않는다.”
그 납자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입으로 마시지 않으면 콧구멍으로 들이마시겠군.”
그 납자가 조주 선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태곳적 개울에 찬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쓰다(苦).”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죽는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설봉 스님은 조주 선사의 이 말을 듣고는 찬탄하였습니다.
“고불이로다. 고불이로다.”
이후 설봉 스님은 납자들을 일절 제접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조주고불’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고불이란 ‘본래의 부처’를 말합니다.
고불심古佛心은 고불의 본체인 절대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오늘 가야산에 조주 선사의 정진력을 오늘에 이어받으려는 고불암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조주 스님의 본래마음을 찾아내려는 사부대중이 정진할 수 있는 도량이 생긴 것입니다.
조주 스님의 본래마음을 찾기 위해서
이 산승이 운문 선사의 ‘고불노주’공안을 여러분에게 주는 것이니 돌아가서 잘 참구해보시기 바랍니다.

“고불古佛과 노천의 세워진 기둥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데,
이는 어느 정도의 근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남산기운북산우 南山起雲北山雨하고
나부타파소주무 羅浮打破韶州舞로다
석호포효상구천 石虎咆哮上九天하고
니우입해무심처 泥牛入海無尋處로다
남산에 구름 일고 북산에서 비 오니
나부산에서 북을 치고 소주에서 춤을 춘다
돌호랑이 포효하며 하늘 높이 올랐고
진흙소가 바다로 드니 찾을 길 없도다.□

2548(2004)년 10월 17일 고불암 개원 법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