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하늘은 높다. 산 정상에 올라 소리쳐도 내 소리는 하늘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높고도 맑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다. 땅에서 황금빛 들녘을 만나고 하늘에서 맑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문득 행복으로 다가선다.
가을 하늘이 내게 던지는 화두는 ‘맑음’이다. 나는 가을 하늘을 보며 맑음을 생각한다. 하늘처럼 맑은 세상, 하늘처럼 맑은 마음. 나는 가을 하늘 아래서 맑음을 화두로 들고 서서 그 맑음을 관한다. 오랫동안 내 가을의 화두를 들고 있으면 내 본래의 모습도 가을 하늘처럼 그렇게 맑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디 맑았으나 흐려져 있다는 사실이 내게 희망을 건넨다. 나는 무슨 주문처럼 본디 맑았던 나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린다. 그러면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이 내 본래의 모습이 맑게 떠오르는 것을 만날 수가 있다.
하늘이 능히 낱알을 키우고 과실을 익게 하고 하늘을 닮은 코스모스를 키우는 것은 그 맑음에 기인한다. 하늘이 본디 맑은 것이 아니라면 태양은 그 얼굴을 내밀 수 없었을 것이고 이 땅의 모든 오곡백과는 하늘의 기운으로 열리는 생명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본디 맑음으로 태양은 찬란히 떠오르고 오곡백과는 그렇게 충만한 생명의 향연을 펼쳐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맑다는 것은 이렇게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위대한 생명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참 많이 흐려져 있는 내 모습과 만나고는 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가 생을 많이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답게 살아도 모자라는 시간을 너무 함부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 자신의 모습이 흐려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이라면 생은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의 과보를 생각하면 나는 두려워진다. 아름답게 살지 못한 날들의 과보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이겠는가.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이 과정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과정의 시간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 또한 알고 있다. 욕심을 버리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것을 나누며 살다 떠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의 자세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출가를 하고 염의를 입었지만 마음 속 번뇌와 욕망은 그리 쉽게 잠들지 않고 있다. 몸은 출가했으나 마음은 아직 산문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그때마다 실감하고는 한다.
가을 하늘은 내게 ‘맑음’이라는 화두 하나를 건넨다. 나는 맑음이라는 화두를 들고 내 안에 있는 본래 맑은 그 자리를 관한다.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상과 집착과 성냄을 하나씩 버리다보면 자비와 사랑과 나눔이 맑게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맑은 생명의 본래 모습이다. 그때 나는 맑은 가을 하늘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 끝없는 희망의 즐거움이 나를 기쁘게 존재하게 한다.
가을 하늘 아래서 나는 맑음이라는 화두 하나를 안고서 코스모스와 같은 모습으로 춤추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