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전 육십년대 중반의 선암사엔 법당을 가운데 두고 우리 비구니스님들은 오른쪽에, 대처하신 스님들은 왼쪽에 살았다. 양쪽이 늘 티격태격하고 사는 가운데에서도 당시 선암사엔 비구니 강원과 선방에 40여 분의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었다. 비구노스님이 강주를 하셨고, 얼마 뒤에 지금 운문사에 계신 명성 스님께서 중강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하는 틈틈이 〈초발심자경문〉과 〈치문〉을 익히고, 솥뚜껑을 깨서 은사스님인 마하 노스님께 혼이 났던 추억을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나 어머니스님 곁으로 와서 지냈는데, 그때 해제를 하고 잠깐 청화 큰스님께서 들르시면, 지극정성으로 내게 공부를 시키시곤 했다. 오시기만 하면 수행자로 여물지 못한 나를 앞에 앉혀놓고 법문을 손수 적어주시며 설명을 해주시곤 했으나, 그땐 깊은 철학과 과학이 있고 인생이 숨어 있는 그 오묘한 불교를 알아듣지 못했다. 해서 좋은 줄도 몰랐다. 그런 철없는 내게 큰스님은 늘 그러셨다.
“한 생, 안 태어난 셈치고 부처님 공부하다가 죽읍시다!”
그랬다. 큰스님은 ‘그래라’가 아니고 언제나 ‘그럽시다’였다. 큰스님은 한참이나 후학인 나를 아랫사람으로 대한 적이 없으셨다. 단 한 번도 어린 사람으로 대한 적이 없으시며, 늘 도반으로 깍듯이 대하시면서 ‘우리 공부하다가 죽읍시다’ 하셨으니, 세세생생 큰스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
발심도 못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내게 스님은 억지로 강요함 없이 ‘인생이 많이 남은 줄 아는가? 그러지 말어’ 하셨으니, 그때 인생이 한없이 많이 남은 줄 알았던 내가 지금 이순의 나이를 앞두고 있으니, 얼마나 업장이 두터웠으면 큰스님의 그리 간곡한 경책을 알아 듣지 못했는가… 눈물이 솟구칠 뿐이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겨우 발심을 하고 21일 기도를 작정한 채 큰스님께서 계셨던 태안사로 갔을 때다. 물만 마시며 단식을 하면서 성기암에서 사분 정근을 했는데, 한 열흘쯤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스님을 뵙고 ‘ 큰스님, 저 그만 할랍니다’ 그랬다.
그랬더니 큰스님께 조용히 그러셨다.
“사람이 한 번 한다고 했으면 해야지, 태안사 대중들이 스님의 기도 소리를 다 듣고 있는데, 중간에 그만두면 되겠는가.”
그 말씀을 듣고는 두말 없이 다시 올라가 기도를 잘 회향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으니, 거듭 고백하건대 큰스님이 아니 계셨더라면 나는 출가의 길을 중도에 마쳤을 것이다. 그해 여름, 큰스님은 물론 온 대중들이 풋고추 썰어넣은 간장을 꽁보리밥에 넣어 비벼먹었던 정경이, 내 스무하루 기도와 함께 떠오른다. 그리도 어려운 살림살이를 사시면서도 태안사 가람을 정돈하시고 대중을 이끄셨던 큰스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훨씬 강한 분이셨다.
정광사에 들러 하루이틀 머물다 가실 때 보면, 한 시간쯤 주무시는 것 같았다. 언행의 불일치란 찾아 볼 길이 없었던 큰스님은 말씀하신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일생을 사신 분이다. 큰스님께서 머무시던 토굴에 가끔 가서, 공양을 한 끼라도 해드리고 오려고 부엌에 들어가보면, 언제나 콩장 조금, 단무지, 김, 깨소금, 간장이 전부였다. 그렇게 한 때 잡숫고 방에 들어가면 그만이셨던 것이다. 항상 처소엔 먼지 하나 없고 신발 한 번 흐트러지게 놓은 적이 없었다. 칼로 자른듯 그렇게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아마 큰스님처럼 완벽한 분은 없었을 것이다. 너무 완벽하셔서 옆 사람도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무시길 하나 때로 간식을 잡수신다고 앉아 계시길 하나 농담을 하시길 하나… 그리 완벽하게 사시는데 함께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청화 큰스님께서 벽송사에서 결제하고 계실 때, 급히 여쭤봐야 할 일이 생겨서 찾아갔을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때 뵌 스님의 눈빛이 마치 헤드라이트 같았는데, 푸르스름해가지고 빛을 내는데 정말 바로 뵈올 수가 없었다. 감히 곁에 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몸에서 쏟아지는데 겁이 날 정도였으니, 수행에 의해서 빛나는 스님 앞에서 나는 마치 지옥중생인 듯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벽송사에서 함께 정진했던 스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큰스님은 결제 정진중 쉬는 시간에도 지대방 같은 데서 쉬시는 법이란 없으셨고, 큰방 한쪽에 갈아입을 옷 두어 벌과 책 몇 권밖에는 안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그리곤 저녁이 되어서 대중과 함께 자리에 누우셨다가, 대중들이 잠들면 바로 일어나 앉으셨다고 한다. 단 한번도 눈을 붙이지 않으시고 한 철을 나셨다고 하는데, 그해 대중스님들이 스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신심을 내서 함께 그리 한 철을 나셨다는 이야길 들었다.
위대한 도인이란 이름을 떠나서 그렇게 살아오신 큰스님의 모습만으로도 영원한 스승으로 모시는 것 이상 더 바랄 게 없는 내 곁에, 이제 큰스님은 가시고 없다. 관음기도 하기를 좋아했던 내게 ‘관음의 화신이 되라’ 하셨던 큰스님의 말씀을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지키지 못했으니, 그분이 지금 다시 오신다면 더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위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