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한 번 내리지 않는 이상하고 무더운 여름이 한풀꺾이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신문에서 박물관 전시에 대한 좋은 제보를 읽었다. 바로 ‘바티칸 2천년 예술을 느낀다’라는 샌디에고 박물관의 특별전에 대한 기사였다. 서양의 종교미술에서 보는 성보聖寶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교황들은 어떤 보물들을 가지는가 하는 궁금함 때문에 다음날 바로 길을 떠났다.
샌디에고는 LA에서 약 170킬로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일 년 내내 약 22도의 따뜻한 기후 때문인지 세계적인 규모의 동물원과 수족관이 있으며 스페인 식민지 때의 유럽식 건물들과 바로 멕시코 국경과 인접한 까닭에 더욱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샌디에고 박물관은 샌디에고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발보아 공원 안에 있는데, 이 공원은 박물관 외에도 동물원을 시작으로 사진 미술관, 과학관, 식물원, 콘서트장, 야외 예식장, 레스토랑 등은 물론이고 산책로까지 있어 하루에는 다 보지 못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더욱이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건물들은 너무 아름다워 마치 남유럽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였지만 연휴의 인파로 인하여 몇 시간의 운전 끝에 오후 3시쯤 도착하니, 박물관 앞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우리는 마지막 관람 시간인 5시 30분 입장 대기표를 받았다.
‘성 베드로와 바티칸: 교황들의 유산(Saint Peter and the Vatican: The Legacy of the Popes)’의 특별전은 390점이 넘는 작품들이 대부분 바티칸에서 직접 온 것들이다. 시기적으로는 로마시대 이전의 유물을 비롯하여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었고 각종 조각상, 교황의 의례용 의복과 장신구, 그리고 중요한 문서와 벽화 등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유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티칸의 시작 즉 종교미술의 시작은 성자 베드로의 무덤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1세기 초에 살았던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박해로 죽은 후 바티칸 언덕에 묻혔고 이 위에 교회를 처음으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의 증축과 보수를 거듭하였으며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통하여 현재의 바티칸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수많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종교적인 열정이 함께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주목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먼저 5세기 때 만들어진 성 베드로의 얼굴 모자이크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심플하였지만 커다란 눈과 굳게 다문 입 등에서는 강한 그의 의지가 보여진다. 나폴리 출신의 베르니니(1598~ 1680)가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묘지에 세우기 위해 만든 테라코타 조각상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아기들의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은 사실적이며 몸동작은 움직임 그 순간을 멈추어 놓은 것 같았다.
한 쪽 코너에는 실제 성당의 천장과 벽을 어떻게 그렸는가를 알 수 있는 모형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어둡고 높은 곳에서의 장시간의 작업은 종교적인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선 천장을 몇 구역으로 나누어 누워서 그릴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고 밑그림을 그려 표시를 한 다음에 그것을 떼어내고 나서 그림을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미켈란젤로(1475~1564)가 그렸던 몇 점의 그림과 그의 스케치 작품 및 친필 편지 등의 유물도 있었다. 가장 화려하고 많은 작품은 바로 교황들의 의식용 의복과 의식용품들이다. 미사나 특별한 의식에 입는 관과 망토같이 생긴 옷들은 정성과 화려함 그 자체였지만 평상시에 쓰는 모자나 옷은 면으로 만들어진 아주 소박한 것도 있었다.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과 상징물들은 기독교 미술이나 불교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성자들의 무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며 이곳을 장식하는 데서 종교미술이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좀더 성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금, 은, 보석 등이 이용되었고 성스러운 동물이나 식물들의 문양을 이용하는 것도 비슷하였다. 성스러움을 지키고 찬탄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천사나 천인들이 쓰이는 점도 비슷했다. 기독교 미술에서 등장하는 천사들은 모두 힘차고 씩씩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성 베드로를 비롯하여 성자들의 초상화를 보면 머리 주위에 불상의 광배와 같이 황금빛을 둥글게 표현하고 있었다.
기독교 미술은 탄생 자체가 단조로운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교나 동양 미술만큼 신비스럽다거나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간결하게 성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들의 성보는 2천년 동안 한치의 의심 없이 잘 간직되어 온 탓에 그 수적으로는 물론이고 완벽한 보존 상태는 부럽기까지 했다.
전시 마지막 작품으로는 1978년 달라이 라마가 교황2세에게 준 티베트 불화와 그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그 누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프리웨이 고속도로는 내려오는 차의 황금빛 불빛과 올라가는 차량의 빨간 불빛 때문에 마치 크리마스 트리 장식 같다고 느끼면서 먼 길을 재촉하여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