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멀어라. 不寐夜長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어라. 疲倦道長
바른 법을 모르는 이, 愚生死長
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莫知正法
-법구경法句經 제 5 우암품愚闇品-
《열자列子》에는 낮에는 머슴으로 고된 노동과 멸시에 시달리지만 밤에는 꿈에서 만석지기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는 머슴과, 반대로 낮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만석의 부자가 밤마다 꿈에는 머슴이 되어 고생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한다. 그 머슴은 편하디 편한 얼굴을 하고 현실을 살지만, 그 부자는 늘 괴로움에 가득한 마음으로 실제에 와서도 그 삶이 고되다며 병색이 있으니 사람의 병은 잠자리의 꿈을 현실처럼 괴로워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 어리석은 이는 낮에 못 이룬 일을 꿈으로 기약하며, 꿈 속의 달콤함으로 낮을 살아간다. 낮에도 이불을 걸치고, 한 손에는 베개를 들고 부산스런 격이다.
낮은 밤을 의지하며 밤은 또한 낮에 의지하는 것이니 밤과 낮은 서로의 의지처일 뿐일진대 그 밤과 낮을 구분하여 꿈 속에 숨는가. 옛 스승들께서 노상 깨어 있음과 잠든 것이 여일如一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일이다.
백장 화상께서 단에 올라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늘 그 법을 듣고 대중과 함께 흩어져 가다가 어느 하루는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므로 스님께서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노인이 답하였다. “저는 가섭불迦葉佛 때 이 산에 살았습니다. 그때 한 학인이 묻기를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하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으나 곧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지금 스님께서 대신 이 몸을 바꿀 수 있는 한마디를 해 주십시오.”
“그럼 다시 질문 해보게” 하니
노인이 물었다.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스님이 답하였다. “인과에 매이지 않는다(不昧).”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스님께 하직을 고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이제는 여우의 몸을 벗고 산 뒤에 있을 것입니다. 불법대로 화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유나維那에게 종을 쳐서 대중에게 점심 뒤에 대중 운력으로 죽은 스님을 장사 지내겠다고 알리게 하였더니 대중들은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스님께서는 대중을 거느리고 산 뒤 바위 아래로 가서 죽은 여우 한 마리를 지팡이로 꺼내더니 법도대로 화장하였다.
이는 수행에 의지하되, 깨달음에 매이면 그것이 또한 인과因果에 매이는 것임을 경계한 글이다.
팔대산인八大山人 안만첩安晩帖의 그림들이다.
해가 저물고, 산에는 해 그림자 길다. 새도 홀로 제자리 찾아 편안한 잠을 청하고, 냇가의 물고기들도 한가하기 그지 없다. 고양이가 졸고 있으니 생쥐들은 제 밥벌이에 바쁠 것이 틀림없다. 그 부산함 중에 수선화도 꽃잎을 닫고 밤을 준비한다. 다만 화병花甁의 난초蘭草 꽃만 홀로 고독할 뿐이다. 이처럼 하나같이 고독하고, 편안한 휴식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먹보다 더 많은 여백으로 말보다 더 긴 침묵을 표현하였다.
그림에 담긴 그 뜻에 선미禪味가 있으면 선화禪畵라 하며, 붓질에 일격逸格과 소박함이 있으면 또 그것을 선화禪畵라 한다. 여기에 더하여 그것을 그린 이의 일생이 또한 선禪에 가까이 있으면 그것이 또 선화禪畵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주답朱(1626~1705)의 그림은 이 세 가지를 고루 갖춘 경우이다.
그의 그림에는 붓질 하나하나가 선미로 넘쳐나고 있으며, 먹을 아끼면서도 자유분방한 붓질을 따라가다보면 일기逸氣가 있으니 이 또한 일품逸品이다. 그는 명明 황실皇室의 종친의 신분으로 명이 망하고 청淸이 들어서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후 수행자로 일평생을 살아간 그의 생활을 보면 그의 그림을 두고 선화禪畵라고 부를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주답이라는 이름 대신 팔대산인八大山人 필명으로 더 유명한데, 그는 그림에 낙관할 때 자신의 호를 적기를 마치 곡哭을 하는 듯(哭之), 혹 비웃는 듯(笑之) 하였다. 그의 그림은 하나하나가 화두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다분히 전통의 선상에서는 벗어나 있는 것으로 전체적인 경물보다는 사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어느덧 숲 속 가득 재재거리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햇살도 깨어난다.
밤은 길고 멀었어도 세상 만물은 그 금빛 햇살에 힘을 얻고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훤한 햇살 앞에 무엇을 두고 숨을 것인가. 잠 못 들었던 사람에게나, 꿈속의 달콤함에 젖었던 혹은 괴로움에 뒤척이던 사람에게나 어김없이 동은 터온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