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종찰을 세운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 달의 이야기 - 원상 / 동판 재무국장
2004년 10월 272호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법손인 순응順應 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 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서기 802년)에 창건한 이래 한국불교를 빛낸 수많은 고승대덕들을 배출해왔으며, 고려팔만대장경을 모시게 됨에 따라 법보사찰로서의 중요한 역할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귀의처요, 지혜의 등불이 되어 왔다. 대장경이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성도 이후 입멸에 드실 때까지 45년간 설하신 교법을 불제자들은 널리 펴고 영원히 전하고자 각 나라의 문자로 수차례에 걸쳐 만들어왔다. 이 중 해인사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한역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 된 대장경판으로, 개태사의 승통인 수기守其대사가 북송관판과 거란본 및 우리의 초조대장경을 대조하여 오류를 바로잡은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이다. 세계는 팔만대장경의 정교함과 뛰어난 서풍書風, 방대한 경전의 집대성, 거의 오류가 없는 교정의 치밀함, 완벽한 보존성 등에 경탄하여 장경각을 포함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의 보존과 활용, 21세기 신대장경의 조성과 이 시대의 발원을 담기 위해 동판팔만대장경 간행을 추진하고 있다. 분명 동판대장경은 대장경에 관련된 다양한 가치 중에서 동판대장경만이 지니는 몇 가지 중요한 장점이 있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대해 접근할 때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고 종합적인 모든 측면을 고려해서 접근해야 하며 어느 한 측면만을 부각하여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고려해볼 수 있다. 첫째는 목판대장경의 보존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대장경의 다양한 활용의 측면이며, 셋째는 대장경 연구의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해볼 수 있는데 동판대장경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해인사팔만대장경의 보존이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보배인 팔만대장경을 잘 보존하여 길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팔만대장경의 보존을 위해 해인사 차원에서는 24시간 순찰활동, 보존실을 통한 연구와 관리, 전문가의 연구조사 등 보존 노력이 있어왔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나름대로 보존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보호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는 못하다. 그동안 몇몇 전문가에 의해 팔만대장경의 보존에 대한 연구가 있어왔는데, 앞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보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야할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목판대장경의 자연적인 훼손은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보존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사항은 목판이 쉽게 훼손될 수 있는 외적인 요인을 차단하는 것이다. 장경각이나 팔만대장경이 목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적인 연구를 한다 해도 화재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 역사는 대구 부인사에 봉안된 고려의 초조대장경이 몽골병에 의해 일순간에 소실된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 요즘처럼 광적인 이교도들에 의해 국가의 중요문화재가 있는 사찰이 방화되고, 무지한 사람에 의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맹목적으로 저질러진 대구지하철화재 참사 같은 사건을 볼 때, 우리의 정신적 지주인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안심하며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목재의 자연적인 훼손을 최대한 늦추고 오랜 보존을 위해 과학적인 연구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보존대책도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관람객들의 무제한적인 출입으로 나타난 화재위험과 유해한 환경조성 등 외적인 요인들은 팔만대장경의 보존에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중요한 국가문화재는 철저한 통제를 통하여 그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듯이, 관람객의 장경각 출입제한은 팔만대장경의 보호를 위한 가장 일차적인 대안이라 할 것이다. 동판팔만대장경 간행은 장경각 출입통제를 원칙으로 대장경 보존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대장경의 폭넓은 활용이다. 해인사팔만대장경은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측면과 살아 있는 대장경으로서의 다양한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유산의 철저한 보존도 매우 중요하지만, 아울러 문화적이나 종교적, 학문적으로 활용도가 매우 높은 팔만대장경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대장경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법보의 상징으로 불상과 같이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경전을 인쇄하는 인쇄매체로서의 기능을 가진 법보이다. 그러나 목재로 된 경판은 마모, 균열, 휨, 뒤틀림 등의 변형의 우려 때문에 더 이상 인쇄 기능을 감당하기 어렵다. 전자출판문화가 고도로 발달된 오늘날 동판대장경 역시 인쇄기능에 있어서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10년에 걸친 연구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성과물인 고려대장경 시디롬은 대장경이 모두 전산화 입력되어 인쇄매체와 정보 활용 측면에서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다고 이 시디롬으로 신행활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판팔만대장경은 그동안의 대장경연구소의 전산화성과물을 반영한 것으로 목판대장경의 보존과 목판대장경을 대신한 법보신앙으로서의 신행활동이 고려된 것이다. 인경印經의 주된 기능이 과거에는 인쇄매체로서의 역할이었지만 현대에는 사경寫經의 의미로 이해되어 불자들의 중요한 신행활동으로서의 측면이 더 높다. 이러한 신행활동은 보존상의 이유로 목판에는 접근이 제한되나 동판대장경은 직접 만져보고 얼마든지 경전을 직접 인경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우리 불자들에게는 가정에 불상 모시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는데, 가정에 동판 팔만대장경의 보급은 가정에서 법보의 상징인 경판을 모시고 자연스럽게 신행활동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며, 불교인이 아닌 경우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유산을 소장하는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동판대장경은 매우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이 대장경을 공유하게 되어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셋째 대장경 연구의 활성화이다. 현재 팔만대장경의 주요 연구기관으로는 대장경의 전산화로 널리 알려진 고려대장경연구소와 대장경의 한글번역을 이끌어온 동국역경원 등이 있으며, 기타 전문적인 불교 학술연구기관에서 대장경을 비롯한 불교학술연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동판팔만대장경의 완성은 대장경 연구의 활성화를 포함 대장경과 관련된 모든 기능들을 종합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팔만대장경에 대한 접근은 목판팔만대장경의 보존, 대장경의 활용과 민족문화의 계승, 대장경 연구 활성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느 한 측면이 대장경을 위해 절대적일 수는 없다. 동판팔만대장경 간행사업 역시 대장경에 관련된 많은 기능 중에서 목판대장경의 보존과 대장경의 활용 등 몇 가지 중요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장경을 위한 각자의 독특한 기능들이 서로의 부족한 기능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해인사가 추진하고 있는 동판대장경 간행 사업은 민족문화의 보존차원에서 그리고 정신문화의 계승차원에서 종교를 초월하여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어 추진하고 있다.
동판팔만대장경 간행사업은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대장경에 관련된 모든 기능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립하게 되어 법보종찰 해인사를 굳건히 세우는 큰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