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해인사답게 하거나 지탱하는 두 기둥을 들라면 하나는 한국 최대의 수행도량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의 수호와 보존 노력은 해인사를 가늠하는 거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해인사 개산 달을 맞이하여 대장경판 보존의 현재와 내일을 점검해보는 것이 뜻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문화재 보존 실책 -비오레르 드
19세기 초부터 서구에서는 현대적 국가 발전과 때를 같이 하여 문화재는 국토내 강산과 계곡같이 국민의 성격을 형성하고 사회조직의 안녕과 밀착된 목숨 같은 중요한 국가적 보물로서 중요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살다간 ‘비오레르 드 (Viollet-le-Due)’라는 인물은 애국심이 강한 프랑스인으로 그는 그의 조국인 프랑스 영내의 역사적 기념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앞서 조직적 복원 공사를 시도한 선구자적인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주 자국의 문화재를 복원함에 있어 임의로 구조물의 첨가와 모양을 바꾸는 손질을 해서 원형을 변형하고 위작하는 범실을 초래하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행한 문화재 보존 노력의 총결산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었고 유적 기념물의 원형이 모호하게 되어 자국의 문화재가 과거로부터 미래로의 영속성에 큰 훼손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문화재 보존 작업에 있어 그의 이름을 딴 비오레르 드 식 보수방법은 과학적, 고고학적인 보수·보존 처리방법과 애국주의적 ‘부활’주의가 뒤섞인 사고방식에서 유래된 유명한 예로서 이러한 문화재 보존 실책은 오늘날 소위 ‘비오레르 드 이론’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보존 철학과 원칙 제창 -윌리엄 모리스
반대로 같은 시기에 살다갔으면서도 현대적 보존방법에 있어 진수가 되는 여러 철학과 원칙을 분명하게 제창한 최초의 인물은 단연 윌리엄 모리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장인이자 예술가였으며 시인이었는데, 당시 대영제국의 중요한 예술 유산들을 처리함에 있어 단장식丹粧式 보수로 초래되는 파괴적 결과 때문에 받는 문화재의 훼손을 크게 우려하였습니다. 그가 외친 중요한 한마디를 예를 든다면 “우리의 고대 건축물(대부분 수도원)이 단순히 교회의 완구가 아니라 국민의 번영과 희망의 성스러운 기념물임을 각성하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문화재의 보존 노력에 성보로서의 가치(예경의 대상인 신앙물로서의 가치)가 우선시되어 비유하자면 나이 든 할머니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실책을 해 왔음을 상기해 볼 때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고려대장경의 보존노력의 방향에 있어 유산의 상속자가 아니라 과도적 관리자적 입장에서 철학과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이라 함은 소위 우리가 해인사 대장경에 대해서 자주 말하는 “법보 신앙의 꽃” “겨레의 혼과 불심이 깃든 민족 최고의 보배”라는 성보와 국보라는 가치기준에서 더욱 승화된 인류의 유산이요 인류 문화의 보배라는 가치로 바라보고 보존 노력에 임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대장경판의 보존 작업에 임함에 있어 불제자로서 신앙적 성보요, 민족적 국보라는 가치를 자의적으로 업up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는 싶지 않습니다. 다행히 해인사 대장경판에 대한 보존 작업은 극히 미약하고 초기 단계에 있기에 이러한 선례들을 앞으로 진행될 보존 작업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대장경판의 보존 노력
직접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의 보존 노력은 최근의 일이며 지난날의 경판 관련 보존 노력은 보존 작업이라는 말보다는 방범적 경판 수호에 최선의 힘을 쏟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보존 노력을 살펴보면 1990년 초에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시작한 ‘대장경 전산화 사업’이라는 경판 보존과 다른 분야로 인하여 해인사에 봉안된 대장경판의 보존인식을 크게 확대시켜 스님들에 의해 보존에 대한 기획이 추진되어 정부에 대한 건의로 이어지는 등 보존대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1995년 2년여에 걸쳐 연구소와 이태녕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조사한 <경판 및 판전에 관한 기초 자료>는 대장경판 보존에 관련된 과학적인 최초의 귀중한 자료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존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해인사와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히 논의되어 1998년부터 “고려대장경판 기초조사 및 디지털 영상화작업”이라는 해인사의 대장경판 봉안 이래 최대의 보존 계획이 수립되어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대장경판의 보존 현황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요, 국보임에도 불구하고 경판 한 장 한 장에 대한 사진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경판 한 장 한 장에 대한 각종 제원이나, 여러 항목의 경판 상태를 조사한 경판 기초조사가 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에 경판의 변화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없으며, 그 동안 부분적으로 보수한 경판의 부위와 현재의 상태를 기록한 자료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문화재청의 예산으로 해인사가 실시하고 있는 경판 보존 작업이 “고려대장경판 기초조사 및 디지털 영상화” 작업입니다. 이러한 작업으로 인하여
※경판의 영상물과 경판의 각종 제원 및 수치가 조사·기록됨으로서 경판의 원형을 컴퓨터에 영구히 보존하게 되고, 앞으로 경판의 원형 복원에 필요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 작업은 경판을 사람으로 비유해서 말하면 ‘호적정리’와 ‘건강진단서’에 해당하는 작업으로 앞으로 경판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가능합니다.
※네티즌을 통해 해인사 대장경판의 각종정보를 공유하게 되어 경판의 보존 관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법보 신앙물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됩니다.
※경판의 영상물을 통해 대장경판의 정교함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끝으로 이제 경판의 나이도 750살이 넘어갑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경판에 대한 방범적 수호 차원과 더불어 이제 과학적인 보존의 노력이 추가되는 나이를 의미합니다. 경판을 자세히 관찰하노라면 경판들은 과학적인 보존의 손길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에 해인사에서는 경판 보존과학에 뜻있는 스님들을 발굴하여 지원해야 합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수호와 보존에 있어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해인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입니다. 그리고 대장경판은 해인사를 지탱하는 수레의 한바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