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하면 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산호하사갱출산山好何事更出山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踪蹟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스님이시여 청산이 좋다는 말 마오,
산이 좋다면 왜 다시 산을 떠나오.
두고 보오, 이 다음의 이내 자취를,
한 번 청산에 들면 다시 나오지 않으리니.
라고 한다.
스님이 산이 좋다하여
푸른 산으로 들어갔지만,
그 산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다시 산을 떠나
속세로 내려가고 있다.
이러한 스님의 행동을 본 최치원은
한 번 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산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는 이 시를 통하여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가 되면
사회 질서가 바로 서지 않는다.
사회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면
관리가 부패한다.
관리들이 부패하면
일반 서민들이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서민들의 삶이 불안할 때
사회는 혼란으로 빠지고 만다.
최치원이
이 가야산으로 들어온 때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그가 이 산으로 들어온 것은
그의 나이 40세(896년)(1)
전후해서이다.
필자는 최치원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
이 가야산 일대를
지금까지 수십 번 왕복하였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신라로 돌아왔을 때는
나라가 안정되지 않고
혼란한 시기였다.
세상이 온통 거짓과
부패 속에 빠졌을 때,
사람은 현실에 굽히고
들어가는 것 외에
세 가지 방법으로 처세할 수 있다.
하나는 거짓 세상을 버리고
세상 저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진실 속에 은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을 진실된 것으로
뜯어고치도록 현실 속에
행동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초월의 관점에서 세상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그는 처음에
두 번째의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때의 상황이 너무나
엄청났기에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첫 번째의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바로 번뇌망상煩惱妄想의
세상을 버리고,
그 너머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자연에 귀의하게 된 이유가
더욱 잘 나타나 있는 것은
<가야산 독서당에 붙임
(題伽倻山讀書堂)>이라는
시인데 그 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광분첩석후중만狂噴疊石吼重巒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고교류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돌 사이 세찬 물결에 온 산이 울리니,
사람의 말 곁에서도 알아듣기 어렵네.
언제나 시비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 감싸게 했다네.
이 시는 지금
홍류동 계곡의 바위 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최치원이 이 시를 지은 뒤에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시에 차운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 시 결구結句의
‘농산籠山’이라는 말을 따서
그곳에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을
‘농산정籠山亭’이라 했다.
천년 넘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발자취가
완연히 남아 있다.
위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아직도 그가 처한
현실세계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세상에 대해서 애착은 있지만,
현재의 여러 가지 상황이
자기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현실을
피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산을 울리는 거센 물소리가
사방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시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물 흐르는 소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그는 자연에 의탁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달래려고 한다.
그가 항상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에서 서로 옳고 그르다고 하는
다투는 소리이다.
이러한 다투는 소리가
물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으니
그로서는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만약에 서로 다투는 일이
없었다면 그는 그대로
현실세계에 참여하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내면적으로
강하게 현실에 대해서
참여하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읊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한 번 속세를 떠나고
난 뒤에는 다시는 환속하지 않았다.
그는 고국에 돌아온 뒤에
환로에 나갔으나,
정치 현실의 비리에
혐오감을 느꼈다.
자신이 실현하려고 했던
나라의 안정, 또는 융화融和는
당시 권력자들의 반발로
수포로 돌아갔다.
그와 같은 지식인이면서,
또 당나라에까지 유학한
최언위와 최승우는 지조를 버리고
후백제 또는 고려에 귀화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세계를 실현하는 것이
벽에 부딪히자
고독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지향하고자 하는 공간,
즉 자연에 대해서
그는 자신의 고통을 달래주는
안식처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욕利慾에 얽매인
정치현실 속에는 시비가
많았기 때문에,
그가 그러한 것들을
대하고 있노라면
혐오감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따라서 그는 오직 평범한
자연 속의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치원이 살다 간 것이
천년의 세월이 더 지났지만,
지금 이 세상은 어떠한가?
날마다 신문이나 방송에는
사건·사고 아니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다투는 소리[是非聲]뿐이다.
이 세상에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이러한 현실을 얼마나
안타까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