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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껭:성스러움의 상징과 사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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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뭐꼬 - 법진 / 해인강원 강사 2004년 10월 272호
타일러나 프레이저, 그리고 프로이드는 종교를 초자연적인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해하였지만, 뒤르껭은 이들과 사뭇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원시인들은 문명이 발달된 사회에서 종교적인 사람들이 구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연적이거나 초자연적인 두 가지 다른 세계를 생각하지 않았다. 현대인들은 과학의 전제조건과 자연적인 법칙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으나, 원시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시인들은 기적적인 것이든 일반적인 것이든 모든 현상을 동일한 종류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신에 대해서도 복잡한 개념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예컨대, 불교도들은 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의례를 일상적으로 행한다.
뒤르껭이 보기에, 종교적인 믿음이나 의례의 특징은 초자연적인 요소에 있지 않고 ‘성스러움’에 있었다. 대개 종교적인 사람들은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명확하게 이분법으로 구분되지 않지만 굳이 두 가지 부류, 즉 성스러운 것과 속스러운 것으로 나누고자 한다. 성스러운 것은 언제나 우월하고, 강력하며, 일반적인 접촉이 금지된, 그리고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이었고, 속스러운 것은 그 반대의 개념을 가진 것이었다. 종교의 주된 관심사는 주로 첫 번째에 있었다. 뒤르껭의 정의에 따르면, 종교는 성스러운 것과 관련된 믿음과 행위의 통일된 체계였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것을 믿고 신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뒤르껭의 두 번째 정의가 된다. 이러한 종교적인 행위는 교회라고 하는 하나의 도덕적인 공동체를 결속하게 하고 그리고 그들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성스러운 것은 전체 집단의 복지 등 항상 거대한 것과 관련되어 있고, 속스러운 것은 일상의 작은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성스러움과 속스러움을 구분하는 것이 도덕이라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성스러운 것은 좋고, 속스러운 것은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스러운 것과 속스러운 것이 동시에 선과 악일 수 있다. 성스러운 것은 언제나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고, 속스러운 것은 개인적인 그리고 개별적인 관심사와 관련되어 있다.
뒤르껭 이전의 학자들에서도 공동체적인 어떤 것과 성스러움을 관련시키는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주술과 종교는 동일한 바탕에서 나온 것이었다. 둘 다 세계가 운용되는 법칙을 설명하고자 했고, 그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통제될 수 있었다. 인간은 먼저 주술의 법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점차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뒤르껭이 보기에 종교가 주술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종교와 주술은 모두 동일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술은 대개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종교적인 의례와 믿음은 어떤 집단의 관심이 주요한 것일 때 생겨난다. 따라서 주술과 종교는 나란히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는 개인적인 것의 자리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측면의 자리를 위한 것이었다. 주술사를 찾는 고객은 언제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회당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이론들:자연숭배와 애니미즘
모든 종교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능에서 나온 것인가.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건 인간은 자신들이 부닥친 세계에 대해 매우 논리적인 믿음의 체계인 종교를 만들어냈다고 믿는다. 이들 이론 가운데 가장 두르러진 것으로 막스 뮐러의 자연숭배와 타일러의 애니미즘을 들 수 있다. 뮐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태양이나 하늘, 그리고 폭풍 등 자연이 가지는 거대한 대상이나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타일러는 신에 대한 믿음이 영혼(애니마)에 대한 개념 때문에 생겨났다고 보았다.
뒤르껭은 이들 두 종교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인간 사회가 너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인간이 가진 사상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가능한 일일까. 뒤르껭이 보기에, 종교에 대해 과학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면, 역사의 여명기에 인간이 어떻게 사고했을까를 연구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종교가 의지하고 있는 ‘항존하는 원인’과 모든 시간과 장소에 걸친 종교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인 방식으로 믿고 행동하게 하는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억지로 먼 과거에 대해 추측하는 것보다 현재 사람들 사이에 신앙되고 있는 실재 종교가 어떤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뒤르껭은 현존하는 가장 단순한 사회를 표본으로 종교의 ‘기본적인 형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호주의 부족 종교:토테미즘
지난 19세기를 전후하여 많은 인류학자들은 호주의 먼 외딴 지역에 거주하는 원시 토착 부족들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볼드윈 스펜서(Baldwin Spencer)와 길렌(F. J. Gillen)의 연구, 독일인 칼 스트렐로(Karl von Strehlow) 등은 원시적인 공동체가 어떤 사회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소개하였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원시인들의 종교는 토테미즘이었다.
뒤르껭이 보기에, 호주의 원시사회에 대한 연구는 어떤 것도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적절하게 지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토테미즘이 원시문화에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정 부족민들이 자신들을 다른 부족 집단과 배타적으로 구분하고 있었고, 여러 씨족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토템 동물이나 식물을 통해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긍정할 수 있었지만, 토테미즘이 성과 속의 개념을 아주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뒤르껭이 보기에, 원시 사회에서는 토템 이외의 동물들이 속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고 대개 원시인들의 사냥감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토템 동물은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계획된 의식의 일부로서 의례적으로 희생되거나 먹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생이 엄격히 금지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토템이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 -씨족-도 성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었고, 토템 동물의 표상 즉 로고(logo)는 단순히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의 온전한 예로 간주되었다.
토테미즘을 연구했던 초기 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예언적인 방법론에 의지하였다. 예를 들어, 타일러는 토템 풍습이 애니미즘으로부터 나왔다고 보았고, 어떤 학자들은 자연 숭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이저를 비롯한 또 다른 학자들은 토템 관습이 종교나 주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뒤르껭이 보기에, 이러한 종교 이론은 모두 잘못된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토테미즘보다 앞선 시기 또는 보다 근본적인 어떤 것을 찾고자하는 노력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단순한 원시사회에서 발견되는 토테미즘은 그것 자체로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이며, 그리고 종교의 원래 형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종교들은 토테미즘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토테미즘이 어떤 종교의 기본적인 개념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다른 모든 종교적인 숭배가 -영혼이나, 신, 동물들, 행성들, 그리고 별들을 막론하고- 생겨나게 된 근원적인 것이었다.
뒤르껭이 종교를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전에 비인격적인 힘에 대한 관념이 토템적인 원리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념이 원시 사회의 토템 숭배의 핵심이었다. 뒤르껭이 보기에, 멜라내시아(Melanesia)인들의 마나(mana), 미국 인디언들 가운데 와칸(wakan), 마니토우(manitou) 그리고 오렌다(orenda) 등도 비인격적인 권위, 또는 강력한 힘에 대한 종교적 형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 원주민들에게서 발견되는 토템적 원리와 동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종교를 설명하는 데에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숭배하는 신이나 영혼에 대한 표면적인 믿음 이상의 것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서 토템적 원리의 숭배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실재는 무엇인가.

사회와 토템
토템은 씨족민들에 의해 숭배된 토템적 원리의 상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를 토대로 뒤르껭은 토템을 확실하고 가시적인 이미지로 이해하였다. 미국 독수리나 성조기(Old Glory, Stars and Stripes) 또는 엉클 샘(Uncle Sam)이 미국에 대한 가시적인 표상인 것과 같이, 그 이미지는 토템의 깃발이고, 표시 또는 로고이며, 상징 그것 자체이다. 토템이 어떤 신이나 사회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들은 동일한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씨족의 신, 즉 토템의 원리는 토템으로 사용되는 동물이나 식물의 가시적인 형태로 상징되는 것들은 인격화된다. 동시에 신과 씨족은 참으로 하나인 것이기 때문에 토템은 신과 씨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시 사회에서 전체 공동체가 씨족이나 부족의 일반적인 전례에 모여 장엄한 의례를 행할 때에 사회 통합은 일어난다. 장엄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참여자들은 씨족에 대한 그들의 임무를 확인한다. 의식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 그리고 찬송과 무용으로 감정적인 흥분이 거칠게 일어나게 되면, 개인들은 다수의 군중 속에서 자신들을 잊게 되며,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자아를 잃고 씨족이라고 하는 거대한 단일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격정적인 의식을 치르는 동안에 참석자들은 공동체적 감정을 얻게 된다. 그들은 개인적인 특징들을 버리고 씨족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단일체에 스스로 합치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의식에서, 개인들은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그리고 이기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대신 소위 위대한 그리고 보편적인 영역으로 모이게 된다. 그리하여 개인들은 성스러움이라고 하는 장엄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뒤르껭은 이와 같은 단체 의식의 흥분에서 생겨나는 감정에 대해 깊이 천착하였다. 이들 감정들은 에너지와 열정, 기쁨, 무아지경, 그리고 완전한 어떤 것으로 가득 찬 의례에서 얻어지는 것들이었다. 종교적인 아이디어는 흥분된 사회적인 환경과 흥분 그 자체로부터 생겨났다. 그러한 순간에 세속성은 사라지고 단지 성스러운 것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토테미즘의 적용
종교가 어떻게 발생하였는가에 대한 답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나온 것이어야 했다.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의 근원문제도 간단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단순한 토테미즘으로부터 복잡한 전통을 가진 것으로 점차 발전하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신앙과 의례를 통하여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 중요성을 인정하며, 그 힘을 느끼고, 영원한 안락을 위해 개인적인 기쁨을 희생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므로 종교의 역할은 ‘세상 밖에’ 대한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창조가 참인가, 신이나 내세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의 참목적은 지성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종교는 능력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공동체와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상징과 의례를 제공하는 사회적인 정서의 전달체계이다. 종교가 이러한 역할을 하는 한에 있어서는, 종교는 또는 그것을 대체하는 어떤 것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종교는 “사회의 영혼”을 제공하고 보호하는 것으로서 진정한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