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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법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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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04년 10월 272호
봉암사 시절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 스님을 비롯한 청담ㆍ자운 스님 등이 주동하여 출발한
한국불교의 선禪 결사운동이었다. 봉암사 결사는 단순히 참선에 대한 결사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실제로 부처님 법대로 수행하며 선불교의 중흥을 이루겠다는 다짐이었고
한국불교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대승불교운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 왜색불교의 영향으로 계율이 파괴되고 선이 몰락한 상황에서 선풍을 지키고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되었던 봉암사 결사는 비록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으나
뒷날 정화운동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 또한 정화운동이 마무리된 이후
종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측면에서도 한국불교사에 의미가 깊다.
스님이 봉암사에 갔을 당시에는 성철 스님을 비롯하여 청담·종수·청안·응선·성수·향곡·
혜정·혜연·혜명·도우·보안·자운 스님 등 스무 명의 수좌들이 있었다.
많을 때는 사십여 명이 넘었다고 하나,
대부분은 까다로운 규칙과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떠난 뒤여서 반 정도만 남아 수행하고 있었다.
결사에 참여한 수좌들이 제정하고 실천에 옮긴 공주규약共住規約은
당시 봉암사의 수행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첫째, 삼엄한 부처님 규율과 숭고한 조사의 유훈을 부지런히 닦고 힘써 실행하여
구경究竟의 큰 결과를 원만히 빨리 이룰 것을 기약한다.
둘째, 어떠한 사상과 제도를 막론하고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 이외의 각자의 사견은 절대 배척한다.
셋째,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은 자주자치自主自治의 표지 아래에서 물 긷고,
땔나무하고, 밭에서 씨 뿌리며 또 탁발하는 등 어떠한 어려운 일도 사양하지 않는다.
넷째, 소작인의 세조와 신도들의 특별한 보시에 의한 생활은 단연코 청산한다.
다섯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은 12시를 지나지 않으며 아침은 죽으로 한다.
여섯째, 앉는 차례는 비구계를 받는 순서로 한다.
일곱째, 방안에서는 늘 면벽 좌선하고 서로 잡담을 엄금한다.

봉암사 수좌들은 이 규약을 철저히 지켰다. 스무 명이 한 방에 앉아 벽을 마주하고 삼매에 들면
태고의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고, 발우공양을 하면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엄숙했고 조용했다.
다함께 능엄주를 외울 때는 한 길을 간다는 도반애 때문이었을까, 스님의 마음은 환희와 신심으로
가득 차오르곤 했다. 능엄주를 단숨에 외울 만큼 한껏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아침 공양을 하기 전 하루에 한 번 꼭 마당을 쓸고, 오후에는 한 시간 정도 밭을 매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 게 일과 규칙이었다. 참선을 하고 나와서 밭을 매거나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내려올 때면 비로소 제 길에 접어들었다는 안도감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끔은 대중 모두가 지게를 지고 문경 가은면으로 나가서 배급쌀을 받아 삼십 리 길을 걸어오곤 했다.
화두 일념이 되지 않으면 배겨날 재간이 없을 만큼 일도 많았다.
하지만 공부는 공부대로 엄했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은 오히려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