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부부

다음 게시물
산설세설 - 성전 2004년 10월 272호
해제를 한 도반의 전화를 받고 삼척에를 갔다.
한 철 정진을 마치고 나온 스님의 모습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존재의 모습을 나는 그를 만날 때 마다 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늘 끊임없이 사유로 깊어지고 사랑으로 넓어지는 그의 모습은 내게 삶과 사람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한다.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걸어 우리는 차를 한 잔 마시기 위해 스님이 알고 있는 찻집 아닌 찻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은 의외로 멀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두충나무 숲 속에서 가물거리는 빛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목적지였다. 집은 폐가를 수리한 것이었다. 낡은 집을 수리한 그 집에는 어여쁨이 배어 있었다. 바닥도 창문도 그리고 집 둘레에 깔아 놓은 나무판까지 모두 사람들이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가난한 집 주인은 장식을 해 놓은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부부가 손수 고안하고 시설했다는 그 집은 나그네가 하룻밤을 묵어가기에는 족한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하룻밤 피곤한 몸을 누인다면 아주 예쁜 꿈을 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내는 떨어진 민방위 모자를 실로 단정하게 꿰매어 쓰고 늦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남편은 늦은 일을 마치고 방금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이 몸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땀 냄새가 배어 나왔다. 거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나는 그들 부부를 보았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내가 집을 이렇게 고치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자 남편은 자기보다는 아내가 더 많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남편은 항상 아내의 공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했다. 사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젊어서는 이렇게 살면 되고 나이가 좀 들면 절에 가서 절일을 하는 처사와 공양주로 살면 되지 않겠느냐며 부부는 웃었다. 참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소박한 삶의 모습이었다.
부엌과 이어져 있는 식당 겸 차실에는 아주 많은 음악 판들이 있었고 썩 좋아 보이는 오디오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 부부의 전 재산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숙박객을 유치하기도 하지만 그들 부부와 뜻이 맞지 않으면 그 집에서 머물 수는 없다고 했다. 객을 가리는 것이다. 그들 부부와 함께 소박한 삶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없다면 그 집의 객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이면 다 통하는 세상에서 가난하지만 그들의 소박한 삶의 영역을 지켜 나가려는 자세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늦은 시간 찐 가지와 호박잎 그리고 된장찌개만으로 된 저녁을 먹으면서도 웃음짓는 부부를 보며 나는 그들이 참 자유로운 이 세상의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오직 현재만이 있다는 말이 그들의 가난한 저녁상에는 성찬으로 놓여져 있는 것만 같았다. 가난한 밥상 앞에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들 역시 그 성찬의 의미를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이 세상의 여행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두충나무 잎들이 바람을 따라 길을 나서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