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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고 모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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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을 일구는 이야기 - 이영일 1995년 05월 159호
해마다 여름이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비에 얽힌 국민의 한숨이다.
어느 때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지는 바람에, 도회지가 물에 잠기는가 하면 많은 재산이 바다로 이사를 간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해에는 가뭄에 들어 땅이 갈라졌다는 둥 수돗물을 아끼자는 등 온 나라가 야단법석을 핀다.
너무 많이 와도 걱정, 너무 안 와도 걱정, 괜시리 죄 없는 하늘만 원망의 표적이 된다.
치산치수사업은 적어도 수백 년은 이어 온 국가적 사업일 텐데 어째서 여름철마다 수선을 피워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환경 문제로 말미암아 지구 곳곳의 기후가 엉망이라고 한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한쪽에서는 물난리가 나서 걱정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것이 타들어 간다고 아우성이다. 대륙만한 크기의 빙산이 녹는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이웃나라가 바다에 잠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문명의 코 앞에는 풍요가, 그 등뒤에는 폐허가 펼쳐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자연의 현상이 이렇게 넘치고 또 모자라는 데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에 때로는 큰 고통이 닥쳐온다.
그러나 자연만 사람들의 생활을 혼들어 놓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도 넘치고 모자라는 데에 따라 그 폐해가 얽히고 설켜 가며 커진다.
사람끼리의 원한에 의한 연쇄반웅이나 문명의 두 얼굴 가운데 어두운 쪽이 그것을 증명한다.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시소는 아이들에게 신체 발달의 균형에도 도움을 주지만, 그와 동시에 형평의 원리를 저절로 익히게 한다. 이를테면 맞은 편에 몸집이 큰 어른이 탈 때 같으면, 이 쪽에서는 친구가 둘이 함께 타거나 혼자라면 시소 끝으로 물러나 앉아 몸을 잔뜩 뒤로 젖혀야 무게가 어울리게 된다.
같은 또래의 친구끼리는 웬만하면 알맞게 시소를 즐길 수 있다.
알맞음은 어느 경우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쉽게 맞추지 못하기 일쑤이다. 어떤 철부지 어린이가 길을 가다가 낯모르는 어른에게 혀를 내밀며 놀리는 시늉을 한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다가가 주먹을 휘두르는 어른은,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면, 아마 없을 것이다.
또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을 국가는 범죄자라 하여 붙잡아서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킨다. 그런데 그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요즘에는 꽤 흔한 듯하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그런 유의 사건은 대부분이 과격한 감정의 발로이거나 지나친 욕심이 빚어낸 것이다.
옛날 중국의 어느 나라에 조과鳥菓 도림道林 선사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다. 그 스님은 마치
새처럽 나무 위에서 선정에 들기를 즐기셨다.
하루는 한 선비가 스님을 찾아왔다.
ꡐ스님 , 왜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계십니까?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ꡑ 스님이 답했다.
ꡒ나는 여기서 떨어져도 땅 위로 떨어지겠지만, 그대는 지금 땅위에 서 있으니 거기서 떨어지면 땅속으로 갇힐 터. 곧 지옥地獄이 아니겠는가 나는 자네가 더 위험해 보이네 그려.”
우리네 일상이 그저 살다 보니 살아가는 것같이 그렇게 미적미적 살 일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중생들 삶이란 것이 어차피 매우 서투르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자랑할 일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가운데서도 갈 길을 찾아가야 할 일이다. 드넓은 하늘과 바다에도 비행기와
배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다.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가장 바르고 알맞은 길은 흔히
중도의 원리라 불린다. 거문고를 잘 타던 소나 비구는 정진을 열심히 해도 그다지 효험이 없자 정진을 포기하려 했다 부처님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거문고의 비유로 말씀하신다.
“거문고 줄은 너무 팽팽해도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중도는 결코 중간의 입장을 뜻하는 게 아니다. 오직 지혜로 살피는 가장 바른 길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것은 필요자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른 길이다. 불교의 여넓까지 바른 길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요즘 세상에 유행하는 말 가운데에 ‘실세’ 라는 말이 있다. 세상 일이란 것이 힘 있는만큼 힘을 쓰게끔 되다보니 힘 있는놈이 ‘장땡’ 이라는 식이다. 그래서 다투듯 권력을 잡으려고 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인생사가 되었다. 어쩌다 재수 좋게 힘을 가지게 된 사람은 마구 힘을 휘두르고, 힘이 부치는 사람은 그 힘에 빌붙어 작은 힘이나마 얻고자 하며, 아예 힘이 없는 위인은 억누르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투덜대며 그렇게들 산다.
그러나 교불삼년 驕不三年 권불십년 權不十年이라고 했다.
거들먹거려 보았자 삼 년을 못가고 권세 또한 십 년을 넘기지 못한다. 힘이란 항상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니까. 힘이 정의가 아니다. 정의야말로 힘이다. 바른 삶만이 바른세상을 열기 때문이다.
삶을 휘청거리게 하는 것은 비단 자연의 재해뿐만이 아니다. 나를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또
물건을 다룰 때, 넘치고 모자라는 나의 대응이 일파만파로 우리네 삶을 어렵게 한다. 우리가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노력할 때 , 이 세상을 어둡게 하는 인재 人災들의 범람은 사라져 갈 것이다.
내가 지금 나의 배우자에게, 나의 동료에게, 나의 이웃에게, 내가 다루려고 하는 물건들에게 ꡑ그리고 나 자신에게 선택해야 할 가장 최선의 길은 어떤 것일까?
좀 까다롭더라도 우리는 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순간에서부터 우리의 수행은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