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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또 하나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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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 - 진월 1995년 05월 159호
ꡒ현존하는 장애물들을 헤치며 (The Road to Peaceful Reunification:removing the Last Obstacles)ꡓ라는 주제로 열린 제4차 코리아 평화통일 심포지엄(Korea Reunification Symposium Ⅳ) 소식을 전하려 한다.
이 모임은 이 곳 버클리 대학 한국대학생들이 90년대부터 전개해 온 연차 사업의 하나로 해마다 4월 초에 남북한 대표들을 초청하여 벌이는 순수 민족통일운동의 일환인데 올해가 네번째이다. 한국 언론도 이 행사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보도한 듯한데, 이번 모임은 남북한 대표들 가운데 통일 관계 종사자들과 대학생 대표들을 초청한데 관심이 더욱 컸다. 서울대학교총학생회장과 김일성대학 학생 대표가 격의 없이 통일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열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적잖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대표들의 예고없는 불참으로 이러한 기대가 무너지고 남한 대표자만으로 아쉬움 속에 치러졌으나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행사였기에 그 전말을 돌아본다. 이 심포지엄은 버클리 대학 학부에 재학중인 한국인 학생서클인 ꡐ한국학위원회 (Committee for Korean Studies)ꡑ 가 중심이 되어 기획해 왔다. 진행의 독립성을 지키려고 경비 마련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관청이나 학교 당국 등 어떤 기관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한 주최자의 입장과 노력을 남북한 관계자들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공감해 온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남북 관계나 국제 정치적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재작년에는 남북 대표가 모두 참석하여 모처럼 호홉을 함께 한 고무적인 화합을 이루어냈지만, 작년에는 공교롭게도 북한의 핵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며 북한대표들의 불참 명분으로까지 비화된 탓에 한국과 미국 대표만 모여 통일과 핵정책에 대한 심포지엄을 가졌다. 올해에는 북한에서 권호응 김일성대학 학생 대표 최금춘 김일성대 교수(여자대표),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장, 한응식 조국통일연구원 원장이 참석을 알려와 미국 입국비자 발급과 항공표 발송이 완료되고 도착일까지 확정되어 행사 준비요원들이 공항에 영접하러 나갔다. 그러나 북한 대표들은 기다리는 주최측에 아무 예고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사에 알아보니 예약은 해 놓고 탑승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등 여러 경로로 전화 연락을 해 보았으나 저들은 그에 대한 한마디 변명도 없었고, 행사 뒤 불참에 대한 해명 요구의 서신을 띄웠으나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무례함을 이해할 수 없으나 아무튼 저들에게 긴급한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북한당국이 자체 불안정과 개방에
자신감이 없고, 학생 대표의 망명이나 귀국 후 자유 추구를 우려하여 돌연 출국을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첫날인 4월 7일 저녁, 준비위측은 전야제를 갖고 문화적 행사를 통해 통일에의 열정을 꽃피웠다. 학교 근처의 줄리아 모건극장에서 삼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작된 개식에 이어 한마당 풍물패의 통일굿과 한인청년문화원의 연극 “장벽ꡓ이 공연되었고, 노래터의 ꡒ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 “그날이 오면”, “철망 앞에서ꡓ, “갈 수 없는 고향”, “마지막 열쇠ꡓ, “통일이여 오라” 등 가곡을 계속해서 불렸다. “판굿ꡓ을 끝으로 세 시간쯤의 실내 프로그램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버클리 대학 정문까지 행진한 뒤 ꡒ우리의 소원은 통일ꡓ을 합창하고 해산하였다. 다음날 아침 버클리 대학 법대 강당에서 이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는데, 개식에 셜리 딘 버클리 시장이 참석하여 이 날(4월 8일)을 ꡐ한국통일을 위한 날’ 로 선포하였다. 이어 준비위의 학생 선언문 낭독이 있은뒤 곧바로 남한 대표자들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첫번째로 여성대표로 참석한 김윤옥 씨(한국여성단체연합 통일과 평화위원회 위원장)의 “통일의 장애 극복:여성과 평화”라는 발제에서 비폭력적이고 온유한 여성의 역할이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먼저 과거 군사주의, 획일주의, 가부장적 지배의식 등 독선적 발상에 기인한 “적대 의식ꡓ, 국가보안법이나 사회안정법 등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는 ꡒ법적 제도적 장애”, 무기대금 등 군사력 증강을 위한 “방대한 국방비ꡓ, 아직도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은 “휴전협정ꡓ 등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남북정치 지도자들의 화해와 상호존중을 위한 적극적 의식 전환을 주장했다. 그가 본 시급한 과제로서는 1993년에 이루어진 ‘남북합의서ꡑ이행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정상화, 평화협정체결, 군비축소, 남북정상회담
조속 개최 등을 들고, 결론적으로 다가오는 21세기의 새 민족 창조를 위해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두번째로 민족통일연구원 정책연구실장 박영호 박사가 ‘남북한 관계의 현안과 통일을 위한 우리의 과제’라는 발제에서 1992년에 합의 채택된 ꡒ화해와 교류 및 비핵화공동선언ꡓ 이행 저조와 남북정상회담 지연에 주목하고 경수로문제, 경제 협력 문제, 이산가족문제, 휴전협정 문제 등을 현안으로 꼽았다. 그는 통일에의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나 한반도 주변 상황은 호전되어감을 예견하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의 필요성과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상호신뢰 구축과 접촉 교류를 통한 긴장완화, 기존 합의협정 이행을 위한 남북한 체제 내부의 불합리 제거를 위한 자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세번째로 김태식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민족통일을 위한 청년 학생들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 대표들의 불참, 특히 김일성대학 학생 대표와의 회동이 무산된 데 대한 이쉬움은 컸지만 버클리 대학 학생들과의 인연만으로도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이만 서울대 학생 나아가 백만 남한 학생들의 통일 의지를 대변했다. 금년으로 분단 반세기를 맞으며 공유하는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진지하게 모색해 보자고 전제하고, 민족의 통일은 ꡒ어느쪽이 이기고 어느쪽이 지느냐ꡓ가 아닌, ꡐ모두가 이기는ꡑ 결과를 가져 오도록 노력하여 일방적 홉수 통일이나 어떤 한 체제의 승리로 인한 후유증이 없도록 상호 입장 존중과 배려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남북합의서 도출은 통일에의 큰 진전이지만 그 실천 의지와 노력이 문제라며 이행당국의 진취적 의식 전환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의지만 확고하다면 방법론상의 차이는 극복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통일의 과정을 칠천만 민중의 참여와 자결적 과정을 통해 남북한 사회의 대개혁을 이루어내는 과정으로 보고 수년 동안 지켜 온 서울대 총학생회의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먼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에로의 이행, 사상의 자유보장을 위한 관련법 개정, 상대체제 안정을 저해하는 시책 지양과 교류 협력 강화, 이산가족이나 비전향 장기수 등의 인도적 조치, 남북한 국제협력 강화, 합의서 정신 존중과 실천 및 통일 논의 개방과 민주적 참여 보장등의 추구이다. 그는 남북한 당국자들에게 남북문제 해결과 개선에 좀더 적극적인 개방된 자세로 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끝으로 민족사의 전환기에 처한 청년학생운동이 통일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냉전 사고의 혁신과 화해협력의 기운을 높이고 당국으로부터 자주적 입장 견지와 건설적 비판, 민간 차원의 국제협력지원의 역할을 들었다. 특히 버클리 대학생들의 활동을 대표적 예로 들며 주변 사대강국에 퍼져 살고 있는 한인청년학생들이 어느 일방에 치우침이 없는 민족화해의 가교 역할과 국제협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국내 학생들의 동참 의지를 확고히 했다. 네번째로 한국측 단장인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가ꡐ더불어 살아가는 민족공동체 건설ꡓ에 대한 발제를 가지고, 통일 단계로서 먼저 ꡒ화해와 협력 단계ꡑ, 다음으로 ‘공존공영단계’ 끝으로 ꡐ한민족 한국가 단계ꡑ를 제시하고 실천 가능한 부분부터 이루어 나가자는 점진론을 폈다. 발제가 끝나자 점심을 위한 휴회를 가진 뒤 오후에는 장시간 질의 응답과 토론이 있었는데 자유스럽게 다양한 견해를 나눌 수 있었다.
다음날 저녁에는 이 심포지엄을 헌신적으로 지원해 온 술츠 목사가 시무하는 학교 근처의 루터란 교회에서 한국평화통일을 위한 회년 예배가 있었고 남한 대표자들도 참석하였다. 문정현 신부(문규현 신부의 형)는 강론에서 임수경 씨와 문규현 신부 방북사건과 자신이 겪은 체험을 예로 들며 통일에 대한 엄청난 이론보다도 작으나마 구체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공식 행사를 끝낸 준비위측 인사들과 지역 유지들은 다음날 떠나는 초청 인사들과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민주화투쟁 과정의 체험담은 물론 통일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종교인의 역할과 사명도 언급되었다.
한 학생이 근래 가톨릭 최고 지도부에서 보이는 민권운동에 대한 보수적 태도와 불교계의 진보성향의 반향으로 “요즈음은 명동성당보다 조계사가 더 인기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였는데 이는 조계종단이 유념하고 지향해야 할 위상 설정에 참고할 바이다.